임효준 작가, 운디더힐러 [사진=더코리아저널]
[임효준 프리즘] “경도를 기다리며”
요즈음,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이 있다. 쌤이 날 만큼 그들의 ‘첫사랑’의 이야기가 멋지고, 젊음이 그립다. 지난 2025년 12월 6일부터 방송 중인 JTBC 토일 드라마 ‘경도를 기다리며’가 애틋하게 쉰 살을 넘긴, 생명력을 위로해준다.
지난 1년간의 내란정국 타령에, 오직 대한민국은 2개의 정당만 있고 모든 뉴스거리를 내뿜고 절망하게 했다. 특검·공천 파동과 돈 봉투에, 타 당 소속 장관지명에 따른 갑질 논란까지 모든 게 권력싸움을 통한 누군가를 죽이고 이익을 차지하려는 영화 속 이야기보다 잔인한 현실뉴스다. 치를 떨게 만든다. 누구를 위한 뉴스인가. 그럴수록 시민의 삶은 황폐해진다. 현실 뉴스를 바꾸는 데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시민은 그저 회색 빛깔 지난 1년을 안개 속을 걸어온 것 같다. 그런 무감각한 상태에서 ‘나’라는 놈은 미친 속도의 AI세상에서 다시 효능감에 쩔어 사고(思考)를 잃어버린 인간의 비극을 걱정하는 미친놈으로 전락하기 딱 좋은 때다.
그런 새해 병오년, 마치 붉은 말 등에 올라 타 조마조마 가슴 조이며 미칠 것 같은 그리움에 서로의 감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매번 어긋나서 상처받아도 다시 그 사람의 향기를 찾아 상념 속 그 목소리와 그 모습을 짝사랑했던 스무살 ‘첫사랑’.
기억의 힘이 또다시 그 때의 ‘나’에서 지금의 ‘나’에게 용기를 준다.
특히 과거 그리움만 안고 살던 경도가 선배 결혼식에 왔던 지우를 술의 힘에 의지해 어렵게 연락해 만나 떠나간 이유를 듣고 했던 말이 벅차다.
“우린 고작 스무살이었어”
울부짖던 경도와 울음을 터뜨린 지우, 그들을 감싸 안고 싶었다. 또 다른 내 모습이었기에.
지난해 ‘삶의 시’ 문학 송년회 행사 때 읊은 시가 있다.
말로 하는 사랑보다도
글로 쓰는 그리움보다도
한번 찾아가 보는 게 낫다
마주 선 미소 하나가 낫다
첫사랑이 준 시집 속 시 인데 누구의 시인지도 모른다. 잊어버렸다. 아팠기에, 고작 스무살의 짝사랑이었으니까.
SNS 시대, 메일도 아닌 인스타 DM으로 연결되는 시대. 카톡 모임방에서는 엄청 좋은 말과 그림이 넘쳐난다. 그런데 왜 세상은 이 모양일까.
2026년을 살아내는 청년들을 보니 애처롭다. 생명력 가득한 ‘첫사랑’ 만남보다도 미친 속도의 AI시대 직장구하기 걱정에 피를 말린다.
신입을 대처해 AI로 업무환경을 바꿔버리니 일을 배워야할 그들에게서 경험을 쌓을 미래마저 빼앗아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그들을 위로하고 싶다. 편해진 답과 알고리즘으로 파악되는 쉽게 읽히는 세상에서 아픈 경험. 특히 첫사랑 같은 미숙하고 실패하는 만남에서 고귀한 인간의 ‘상처안기’ ‘상처의 힘’ 등 고통의 시간에서 ‘나’로서 존재하기를.
아름다운 말로 ‘사랑’을 이야기해도 온갖 예쁜 그림이 ‘그리움’을 추억해도 지금 당장 찾아가 만날 수 있는 “행동이 있어야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마주보는 그 용기’로 다음 단계로 이어갈 수 있는 소중한 변혁을 가져야한다. ‘질문의 힘, 문제제기’가 당신 내면의 힘이 되는 세상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것에 주저하지 말자.
우리는 실수하는 미숙한 인간임을 쉰 살이 넘어 ‘경도를 기다리며’, 그 첫사랑의 그 이름 모를 시인의 ‘시’로 어쩌면 지난 반백년을 살아 내나보다.
다시 하워드 진 미국 학자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는 책을 읽다가 꽂힌 말이 있다.
‘내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나는 희망을 고집한다!’
“경도와 지우야, 경도를 찍어라”
백살이 되어서도 기어서라도 다시 찾아가서 만나리라. 세상이 어둡고 탁해질수록 인간의 첫사랑을 찾아가리라. 희망을 고집하리라.
***임효준 약력 추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언비트 매거진 객원 에디터
외교부산하 공익법인 평화통일연구원 대외협력위원장
국제신인류문화학회 청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