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학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소욕지족(所欲知足)

#1 소욕지족(所欲知足)의 지혜가 행복의 기술입니다.

“입으로는 말을 줄이고, 위장에는 밥을 줄이고, 마음에는 욕심을 줄이라.” (김석종, <마음살림>)

욕심이란 성취하면 할수록 더 큰 욕심으로 확장되기 마련입니다. 본래 욕심이란 놈은 만족이 없기 때문에 욕심이란 단어로 굳어진 것이지요.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소욕지족(所欲知足)의 지혜가 행복의 기술입니다.

더 바랄 것 없다는 천상세계인 도솔 지족천은 무엇이건 바라는 것을 다 갖춘 곳이 아니라, 반대로 모든 욕심을 비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일 것입니다.

부자란 모든 것이 갖추어진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필요한 것이 별로 없는 사람도 부자이긴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난 부자입니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고 하시며, 단지 자기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게 인생이라고 하시는 법륜 스님의 새해 다짐입니다.

1. 무엇이든지 방긋 웃으며, ‘예’하는 사람이 된다.

2.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3.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는 사람이 된다.

4. 도움받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다.

5. 의지하기보다는 의지처가 되는 사람이 된다.

6.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된다.

7.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8. 좋은 일은 손해를 보면서도 기꺼이 하는 사람이 된다.

9. 실패가 곧 성공의 길이 되는 사람이 된다.

10. 모르면 묻고, 틀리면 고치고, 잘못하면 뉘우치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라 인사합니다. 그러면 나날이 새 날이 되겠지요. 새해는 매일 뜨는 해이지만 특히 새롭게 뜨는 해인 것 같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지면 날마다 새해 ‘새날’이지요.

#2 거이(居易),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이 말은 중국의 옛 시인 백거이(白居易)라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중용』 제14장에 나오는 "군자거이사명(君子居易俟命, 군자는 평범한 자리에 살면서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의 거이(居易)를 따온 것이다. '거이'는 거할 거(居)+평범할 이(易)가 합쳐진 말이다. 그러니까 '평범한 곳에 거한다'는 뜻이다.

또 그의 자가 낙천(樂天)이라 한다. 이는 『주역』의 <계사편>에 나오는 "낙천지명고불우(樂天知命故不憂,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사고로 생활했기 때문에 중앙정치 무대의 격심한 당쟁에 휘말린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시인은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지향하면서, 다가오는 명이 어떤 것이든 그에 맞는 가장 최적의 인생 방법을 찾아낸 고수라는 생각이 든다.

유능한 인재가 산림에 은거하면 소은(小隱), 혼잡한 시정 속에서 담담하게 살아가면 중은(中隱), 관직에 있되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것, 그걸 대은(大隱)이라 했다. 백거이는 관직에 있으면서도 ‘속세로 나온 듯 초야에 묻힌 듯, 바쁜 듯 한가한 듯 살겠노라’ 천명하면서 그것을 중은이라 명명했다. 오늘 그 시를 읽는다.

중은(中隱) - 은둔 속에서/백거이(白居易)

大隱住朝市(대은주조시): 제대로 된 은자는 조정과 저자에 있고

小隱入久樊(소은입구번): 은자입네 하는 이들 산야로 들어가지만

丘樊太冷落(구번태냉락): 산야는 고요하나 쓸쓸하기 짝이 없고

朝市太囂喧(조시태효훤): 조정과 저자는 너무 소란스럽네.

不如作中隱(불여작중은): 그 둘 모두 한직에 있는 것만 못하니

隱在留司官(은재유사관): 중은(中隱)이란 일 없는 직에 머무르는 것이라.

似出服似處(사출복사처): 출사한 것 같으면서 은거한 것 같고

非忙亦非閑(비망역비한): : 바쁜 것도 그렇다고 한가한 것도 아니라네.

不勞心與力(불노심여력): 몸과 마음 힘들어 할 까닭도 없고

又免饑與寒(우면기여한): 추위와 주림도 면할 수가 있으며

終歲無公事(종세무공사): 한 해가 다 가도록 해야 할 일 없지만

隨月有俸錢(수월유봉전): 다달이 녹봉은 꼬박꼬박 나온다네.

君若好登臨(군약호등임): 그대 만약 산에 가길 좋아한다면

城南有秋山(성남유추산): 성 남쪽에 아름다운 가을 산 있고

君若愛游蕩(군약애유탕): 그대 만약 노닐기를 좋아한다면

城東有春園(성동유춘원): 성 동쪽에 봄마다 풍경 좋은 곳이 있고

君若欲一醉(군약욕일취): 그대 만약 술이라도 생각나는 날이면

時出赴賓筵(시출부빈연): 때때로 술자리 손님이 될 수도 있으며

洛中多君子(낙중다군자): 낙양에는 군자입네 하는 이들 많으니

可以恣歡言(가이자환언): 한 데 섞여 온갖 말 나눌 수 있네.

君子欲高臥(군자욕고와): 그대 만약 편히 누워 조용히 지내고 싶으면

但自深俺關(단자심엄관): 다른 것 말고 대문만 닫아두면 될 테니

亦無車馬客(역무차마객): 찾아오는 귀한 손님 있을 리 없고

造次到門前(조차도문전): 대문 앞이 소란하고 바쁠 일도 없네.

人生處一世(인생처일세): 사람으로 태어나 한평생을 살면서

其道難兩全(기도난양전) : 두 가지 모두 보전키가 쉽지 않으니

賤即苦凍餒(천즉고동뇌) : 천해지면 추위와 배고픔을 겪게 되고

貴即多憂患(귀즉다우환) : 귀해지면 걱정과 환란 그치지 않네

唯此中隱士(유차중은사): 오직 하나 힘이 없는 관리가 되면

致身吉且安(치신길차안): 그 몸이 복되고 편안해질 터이니

窮通與豊約(궁통여풍약): 막힌 것과 터진 것 넉넉함과 모자람

正在四者間(정재사자간): 그 네 가지 사이에서 살게 되리라

이 시에서 눈길이 가는 문장이 맨 마지막 "窮通與豊約(궁통여풍약): 곤궁과 달통, 풍요와 검약"과 "正在四者間(정재사자간): 그네 가지 사이에서 산다"는 거다. 공자는 살면서 '시중(時中)'을 제일 어렵다고 했다. 때와 상황에 따라 바르게 처신하는 길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답이 정해진 길은 없다. '중은' 역시 하나의 길이다.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이라는 말이 있다. '적당한 거리 두기'를 두고, 길조든 흉조든 세상이 넓든 좁든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법이다.

#3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내려라." <<이솝 우화>>에 나오는 말이다. 상황을 탓하지 말고 처한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한 허풍 장이가 로도스섬에서 올림픽 선수처럼 잘 뛰었다고 허풍을 치자, 이를 듣고 있던 사람이 "그렇다면 여기를 로도스섬으로 생각하고 뛰어보라"고 했다. 꼭 로도스섬이어야만 잘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을 꼬집은 것이다.

이 말을 헤겔이 <<법 철학>> 서문에서 인용하였다. 핑계 대지 말고 바로 이 자리에서 실력을 보여주라고 할 때,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실력을 보여주는 사람이 진정한 실력자라 할 수 있는 거다.

[사진=박한표]

#4

나는 나름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내가 할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건 틈나는 대로 <인문 일지>를 쓰는 일이다. 그 일이 벌써 10년 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 주제별로 나누어 이-북을 만들고 있고, 제1권 <<삶의 틈새>>는 업로드 했다.

이렇게 쓰다 보니 발산(發散)이 되고, 그 양만큼 수렴(收斂)하는 시간이 요구된다. 그만큼 독서와 관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또 그 양만큼 안목과 시선이 높아지고, 세상에 대한 문해력이 늘어난다. 이게 일상의 소소한 기쁨으로 이어진다. 이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아는 사람은 또 그만큼 세상을 좀 더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고 마음도 평화로워진다. 더 나아가 사소한 일들이 쌓여서 인생이 되는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기쁨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나만의 임무를 깨닫게 되고 초조함과 조급함이 사라진다.

이게 삶의 성숙이 아닐까? 과거는 해석에 따라 바뀐다. 미래는 결정에 따라 바뀐다. 현재는 지금 행동하기에 따라 바뀐다. 바꾸지 않고 고집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목표를 잃는 것보다 기준을 잃는 것이 더 큰 위기이다. 인생의 방황은 목표를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기준을 잃었기 때문이다. 인생의 진정한 목적은 무한한 성장이 아니라 끝없는 성숙(成熟)이 기준이다.

[사진=박한표]

#5 그래봐야, 우리는 모두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새해는 그냥 형용사에 방점을 찍어 '새로운 해'가 아니라, 동사에 방점을 찍어 '새롭게 하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새해 첫 기적/반칠환

황새는 날아서

말은 뛰어서

거북이는 걸어서

달팽이는 기어서

굼벵이는 굴렀는데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우리의 삶은 본래부터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어떠한 인연에 의하여 세상에 빈손으로 벌거벗고 왔다가, 세상을 떠날 때도 빈 몸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다. 본래부터 혼자 왔다가 혼자 가기 때문에 부부든, 부모 자식이든, 형제든, 친척이든, 친구든, 인연이 있어 잠시 만났지만, 인연이 다하면 자연히 혼자 떠나는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나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은 이 세상의 진리이다. 그리고 떠날 때는 어떠한 사람도 가족도 재산도 가져가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오직 우리들이 평소에 지은 행위, 즉 업(業)이다. 업은 반드시 가지고 간다. 업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karma)라 하고, 뜻은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이라고 한다. 선업이던 악업이던 그 지은바 업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서 반드시 되받는다.

새해에도 우리는 새롭게 주어진 365개의 하얀 도화지에 부지런히 점을 찍으며 어떤 상황에 서든지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그러면서, 우리는 존재적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갖도록 노력하는 거다. 올해도 매 아침마다 참 주인공으로 멋있는 하루를 만들어 나가자. 하늘에는 해와 달 그리고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 맑은 물이 흐르는 시냇물, 푸른 숲 등, 삼라만상의 자연 현상도 우리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지금 현재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지은 바인 업이 다르기 때문에 천차만별 모든 것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우리 인생은 본래 그러하기에 고독하고 외롭다. 그러나 고독의 진실을 바로 알면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다. 우리가 없는 이 세상과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가 우주의 주인이며 세상의 주인이며 인생의 주인이다. 영화나 드라마(drama)에 나오는 잠시 주인공이 아닌 우리 인생에 진짜 주인공이다.

그러니 초조해 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자. 그래 봐야, 우리는 모두 "한 날 한 시 새해 첫날에 도착"한다.

착하고 멋지고 예쁜 나의 페벗 선생님들께 우선 새해 복많이 받으시고 가정에도 부와 명예와 기쁨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새해 병오년에는 선생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이 시와 노래가 되고, 힘찬 걸음걸음마다 그 발자국이 그대로 건강한 재물과 황금이 되고, 닿는 모든 시선과 손길이 누군가의 슬픔을 위로하는 희망의 함성이 될 것입니다.

투자한 주식 그래프가 보는 족족 푸른 빛의 오름화살표로 바뀌어 주식이 천정부지 마구 오르고, 짝사랑하는 대상이 드디어 마음을 열게되고, 자녀들은 시험 보는대로 합격이고, 벼락같은 천생배필을 만나 예식 치르고, 아픈 곳이 언제 그랬느냐 깨끗이 낫고, 집안의 크고작은 우환이 모두 다 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여기 다 쓰지 못한 기적의 소망들은 선생님께서 소리내어 기도하는 순간, 그 즉시는 좀 힘들고, 올해 안에는 분명히 꼭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하튼, 새해가 밝았습니다.

시간은 을사와 병오의 경계에서 우리에게 다시 묻습니다. 무엇을 지켜왔는가, 무엇을 놓쳤는가, 그리고 무엇을 새롭게 시작할 것인가. 이 질문에 응대하는 태도가 한 개인과 공동체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지난 한 해 우리는 격변의 시대 한가운데를 지나왔습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균형은 흔들렸고, 확신보다는 불안이, 연대보다는 분열의 언어가 더 크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란 언제나 혼돈 속에서 방향을 찾았고, 문화와 예술은 그 과정에서 사회의 심장을 지켜온 마지막 언어였습니다. 예술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시대를 성찰하고 공동체의 상상력을 복원하는 실천적 기제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의 과잉이 아니라 사유의 깊이이며, 구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찰입니다. 문화는 소비되는 이벤트가 아니라 축적되는 힘이고, 예술은 개인의 재능을 넘어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적 자산입니다. 이 점에서 새해는 결단의 해가 되어야 할겁니다. 변화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우리가 주체가 되어 나라의 미래와 문화의 방향을 설계하고 예술의 역할을 재정의해야 합니다.

새해에는 분열을 부추기는 소음보다, 차이를 품는 대화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속도와 효율의 논리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과 상상력이 후순위로 밀리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무엇보다 예술과 문화와 교육이 다시금 사회의 중심에서 질문하고 서로 연결하는 에너지로 작동하기를 기대합니다.

새해는 늘 희망을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준비된 공동체에게 새해는 기회가 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쌓아온 사유와 실천이 서로를 만나 새로운 관계와 질서를 만들어갈 때,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새해에도 각자의 삶과 현장에서 건강과 평안을 기원합니다. 사유하는 용기와 실천하는 지혜가 함께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묵은 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당신의 숨결로 첫 문장을 써 내려갈 완벽한 백지가 도착했습니다.

당신이라는 존재자와 그 존재의 묵향이 세상에 가장 아름답게 번지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진=박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