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 한뿌리사랑세계모임 대표 [사진=더코리아저널]
[더코리아저널 전주현 기자] 이 산이 진짜 태백산, 백두산이다 !
기고/ 김탁Kim Tak(한뿌리사랑 세계모임 대표Representative of the World Association of the Han(韓) root lovers)
'赤峰'은 우리말로 붉달, 밝달이다.
환인의 서자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중앙 아시아 천산산맥(天山山脈)의 천산 아래 환국(桓國)을 떠나 음산산맥(陰山山脈)을 타고 동진하였다. 내몽골 오르도스와 대청산(大青山)을 지나서 음산산맥과 대흥안령 산맥이 마주치는 내몽골 적봉시(赤峰市) 일대에서 나라를 열었다. 이곳이 한민족 역사의 본향이다. '赤峰'은 우리말로 붉달, 밝달이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기원전 8천년 신석기시대부터 기원전 2천년 초기청동기 문명에 이르기까지 돌성곽, 석기, 대형제단, 적석총, 옥기, 집터 등 수많은 홍산문명의 유적은 환웅과 배달국의 존재를 웅변으로 '실증'한다. 남한면적에 필적하는 방대한 땅이 온통 홍산문명 유적지이다.
대표적으로 적봉시 오한기 지역의 집터에서 발견된 5300년전으로 확인된 상투머리를 튼 도소남신상((陶塑男神像), 흙으로 구운 남신상과 올림머리를 한 여신상이 출토되었다. 영락없는 한민족의 모습이다. 상투머리는 한민족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중국 언론들은 “5300년 전의 조상 발견”, “중화조신(中華祖神) 찾았다”는 내용으로 발굴성과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그런데 상투머리를 튼 중국인 조상도 있었더냐??
중국 고고학회가 측정한 유물의 연대는 5300년전으로 판명되었다. 5300년은 <환단고기>에 기록된 배달국 시기와 일치한다. 서기 2026년 + 2333년(단군기원)+1565년(배달국 신시역년)=5,924년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 시대에 불을 사용하여 토기를 구웠다.
단군은 일족을 이끌고 내몽골 적봉시를 떠나 연산산맥((燕山山脈)의 남쪽으로 내려가 태행산맥(太行山脈)의 동쪽 땅, 하북의 천혜의 요지에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이것은 배달국의 주류세력이 남쪽으로 이동한 결과이며 고고학적으로 홍산문명 후기의 유물이 연산산맥 이남지역에서 발견되어 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되었다.
전국시대 말기에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하여 연나라 자객 형가가 가지고간 지도를 '독항(督亢)'의 지도라고 한다. 독항은 진시황이 탐을 냈다는 하북의 요지인데 바로 단군이 개국한 곳이다. 그 땅이 하북성 중북부의 태행산맥(太行山脈) 북단에 서있는 갈석산(태백산)의 동쪽에 발해를 끼고 있는 땅이다. 역사책은 이곳을 '발갈지간(渤碣之閒)', 혹은 요동, 요서라고 한다. 고구려 평양이 위치한 평주 노룡현 지역이다.
이곳 태행산맥 북단의 중심에 높이 2,096미터의 장엄한 백석산(白石山)이 있다. 주척선이 7킬로에 달하며 81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힌색의 대리석 산체로서 장백산(長白山)이란 이름에 손색이 없다. 전국시대에는 연나라와 조나라를 나누었고 북송과 거란이 이 산을 경계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백석산에서 동쪽으로 60킬로 지점의 동쪽 기슭에는 태백산(太白山)이 있다. 이 산이 지금 낭아산(狼牙山, 높이 1,105미터)이다. 산 정상부가 힌돌을 가지런히 세워놓은 듯하여 이리의 힌 이빨과 같다고 하여 낭아산이라고 한다. 낭아산(狼牙山)은 5坨 36봉으로 구성되어 산세가 수려하여 '장암낭아(壯若狼牙)'라고 부르는 하북의 명산이자 성산이다.
이 산이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 태백산(太白山)이다. 한민족이 하북을 잃어버리고 만주 한반도로 이동하면서 장백과 태백의 이름이 백두산으로 이동되어 장백과 태백을 혼용하였다.
낭아산(狼牙山)이 전국시대 말기에 한중경계선이었던 갈석산(碣石山)이다. <산해경>에는 불함산(不咸山)이라고 했으며, 한민족의 성산이라고 하는 태백산(太白山)이다. 고대에 진시황이 올랐고, 조조와 당태종이 올라 창해를 바라보고 시를 지었다는 명산이다.
최남선 선생은 '불함문화론'에서 불함산을 지금 백두산에 잘못 비정하고 백두산=불함산이라고 주장하셨다. 백두산이 민족의 영산이 된 것은 불과 600년전 조선왕조 개국후 하북의 요동을 잃고 부터이다. 역사시간에 배웠던 공민왕의 요동정벌을 기억할 것이다. 고려는 마지막 순간까지 5만명의 군대를 파견하고 명나라로 부터 태백산(갈석산)과 요동을 지키기 위하여 몸부림쳤다. 위화도회군으로 물거품이 되었다.
<산해경(山海經)> 대황북경(大荒北經)에 이르기를,
"넓고 큰 황야에 산이 있으니 이름하여 불함이다. 숙신의 나라가 있다."
<원문> 大荒之中(대황지중) 有山(유산), 名曰不咸(명왈불함), 有肅愼氏之國(유숙신씨지국).
여기서 대황(大荒)은 함경도 개마고원이 아니다. 하북과 산서를 가르는 길이 600킬로, 폭 250킬로에 달하는 태행산맥을 이른다. 有山(유산)은 갈석산, 즉 하북성 보정시 역현에 서있는 낭아산이며, 고대의 한민족은 태백산이라고 불렀다. 숙신(肅愼)은 중국 고대사서에 보이는 한민족의 '별종(別種)'이다. 큰 활과 화살을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다른 중국사서에는 '백산말갈(白山靺鞨)'이라고 하였다. 백산은 태백산이며 곧 갈석산이다. 말갈(靺鞨)은 숙신의 후신이므로 '백신말갈'은 '불함숙신'이라고 한 <산해경>의 기록과 일치한다.
"갈석산 동쪽에 조선과 대인국이 있다"
중국 『회남자(淮南子)』 시측훈(時則訓)에 "오위(五位)는 동방의 끝으로 갈석산(碣石山)으로부터 조선(朝鮮)을 지나 대인(大人)의 나라를 관통하여 동쪽으로 해가 뜨는 부목의 땅에 이른다. 푸른 땅 수목의 벌판이다."고 하였다.
東方之極, 自碣石山, 過朝鮮, 貫大人之國, 東至日出之次, 榑木之地. 青土樹木之野
<회남자>에 '푸른 땅 수목의 벌판(青土樹木之野)'는 한국사서에 나오는 청구국(靑丘國)을 이른다.
"청구국은 (군자국의) 북쪽에 있으며 거기 사람은 오곡을 먹고 비단을 입으며 거기 여우는 네 다리에 아홉 꼬리가 있다."
靑丘國 在其北 其人 食五穀 衣絲帛 其狐四足九尾.
『산해경』, 「해외동경」
청구국 사람은 '오곡을 먹고 비단을 입었다(食五穀 衣絲帛)'고 중국인이 썼다. 오곡으로 밥을 지어먹고 비단 옷을 입었으니 문명이 발달하였다는 이야기다.
고조선은 호랑이가 담배 피우고 풀옷을 입고 다니던 1만년전 석기시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우를 언급한 이유는 고대에 여우털이 귀중품이었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여우, 호랑이, 담비 등 귀한 털을 제공하는 짐승이 많았다.
서기전 7세기 저작인 <관자>에 제나라 환공과 재상으로 있던 관중과의 대화중에 "천하의 보물 가운데는 발조선(發朝鮮)에서 나오는 문피(호랑이 가죽)가 있다"고 하였다. 중국사서에 최초로 국명이 나오는 발조선(發朝鮮)은 밝조선이며, 밝달조선이다.
"조이는 가죽옷을 입고 갈석산의 오른쪽을 끼고 바다로 들어간다."
鳥夷皮服(조이피복)。夾右碣石(협우갈석),入于海(입우해)。
<사기(史記)> 夏本紀(하본기) 冀州(기주)
중국 하(夏)나라 우왕때 기록이다. 북방의 조이(鳥夷)는 가죽옷을 입고 갈석산을 돌아 황하로 들어가 중원의 하(夏)나라로 짐승가죽을 가지고 왔다는 뜻이다. 조이(鳥夷)는 새를 족단의 토템으로 삼았던 동이계 은나라 상족(商族)을 의미한다. 이들이 갑골문을 창안하고 황하문명을 일으킨 주역이었다. 한민족은 서기전 2천여년 부터 하북의 갈석산, 즉 태백산을 중심으로 생활하였다는 사실이 중국사서 기록을 통해서 입증된다. .
*아래 사진은 하북성 보정시 역현 서부의 태행산맥 동록에 위치한 한민족의 성산인 태백산, 지금 낭아산이다. 태백산(太白山), 도태산(徒太山) 등 여러 이명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