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렌즈세상] 2025 홈리스추모제,
“같이 살 권리를 보장하라! 관리가 아닌 권리다!”
해마다 밤이 가장 긴 동짓 날이 되면 서울역광장에서는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다.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동자동사랑방,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등 50개 단체가 연합한 공동기획단'에서 여는 추모제다.
올해로 25년 째인데, 내가 동자동에서 함께한 지도 벌써 열 번째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듯이, 바뀌어도 몇번이나 바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많은 국회의원은 물론 관련 단체장 얼굴 한 번 내민 적 없고, 말초적인 방송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방송사에서 온 적도 없다. 약자 편이라 여겼던 이재명대통령은 왜 모른척하는가?
이 ‘홈리스추모제’는 한 해 동안 거리나 쪽방, 고시원 같은 열악한 곳에서 세상을 등진 빈민들을 추모하며, 그들의 존엄한 삶을 요구하는 자리다. 올해 서울에서 죽어 간 무연고자는 435명으로, 이 숫자도 시민단체에서 파악한 비공식 집계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조사한 435명 중 427명이 무연고 사망자라는데, 왜 정부는 무연고 사망자의 숫자 파악조차 손을 놓고 있는가? 비참한 주검이 당사자라면 어떻겠는가?
지난 22일 오후 7시, 2025 홈리스 추모제가 열린 서울역 광장에는 300여명의 추모객이 모였다. 추모제의 사전 행사로 마임 예술가 이정훈씨의 망자의 넋을 기리는 슬픈 몸짓이 숙연하게 만들었다. 먼저 떠난 동료를 향한 추모 말이 이어졌다.
지난달 세상을 떠난 고 김순철 씨는 동자동 쪽방주민이었다. ‘동자동사랑방’의 정대철씨가 나와 “김순철과 저는 오랫동안 한 건물, 같은 층에 옆방처럼 가깝게 살았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아픈 내색도 안 하고 술만 드셨다. 그가 쪽방 화장실 복도에서 쓰러진 날, 저는 몸을 다쳐 방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인사할 틈도 없이 돌아가셨다”고 슬퍼했다.
용산텐트촌 주민이었던 이진복씨의 고 김춘삼 씨에 대한 추모 말이 이어졌다. 이태원에서 노숙했던 김춘삼씨는 30년 지기로, 종로3가와 용산 일대를 떠돌았다고 한다. 김춘삼씨는 딸이 둘 있는데, 딸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찾지 않은 딸을 그리다 떠났으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리고 그는 ‘형제복지원’의 악몽이 떠올라 “노숙자시설에 들어가라”는 말을 제일 싫어했다고 한다. “이제 정부에서 형제복지원 피해자에게 보상을 준다는데, 춘삼이가 없어 이를 어쩌냐”며 아쉬워했다.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은 권리선언문을 통해 △홈리스 퇴거정책인 금주·금연구역 지정 중단 △홈리스가 눕거나 앉지 못하도록 조치한 시설물 철거 △홈리스 무단촬영 등 혐오콘텐츠 예방하는 법·제도 △정신병원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지원 △양동 쪽방촌 임대주택 해든집 입주권리 보장 △동자동 쪽방 공공주택 사업 즉시 시행 △노숙인 진료시설 제도 폐지 △비용만 지원하는 임시주거지원이 아닌 적정 수준의 주거를 제공하는 주거지원 실시 △무연고자 유골마저 섞는 합동장례가 아닌 존엄한 공영장례 실시 등을 요구했다.
추모제에는 아랫마을홈리스야학 합창교실에서 나온 합창단을 비롯하여 ‘동자동사랑방’에서 온 정대철, 김호태, 선동수, 최갑일, 김창헌, 전도영씨 등 반가운 모습도 여럿 보였다. 예전에는 추모제에서 동지 팥죽을 나눠 줘, 노숙인들도 더러 참가했으나 다들 지하도에 죽치며 추모제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기록해 준 사진가 최인기씨를 비롯한 봉사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고단한 삶이셨습니다"고 적힌 현수막을 앞세워, 한 손에는 국화를 한 손에는 피켓을 들고 서울역 주변을 행진하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부디 차별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