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기 담담담) 戀慕
판소리 고수의 북채는 25 센티 탱자나무입니다.
단단하기 때문인데 박달나무 도장나무가 대신
쓰이기도 합니다.
중국고사에 귤이 위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기후나 토질의 변화
때문이라 짐작되지만 인간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는 곳이 바뀌면 선한 사람이 악인이 되기도 하고 그 반대도 생깁니다.
척박한 북유럽의 바이킹이 노르망디에 정착한 뒤 유럽의 대표적 교양인이 되었고 잉글랜드 왕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일부 부랑자나 죄수가 미국과 호주로 이주해 본국을 압도하는 신세계의 주역이 되지 않았습니까.
심지어 우주의 혜성도 태양을 만나면 궤도를 상실한
뒤 태양을 따라다니면서 떠돌이 신세를
벗어나기도 합니다.
송곳처럼 억센 가시를 가진 탱자나무는 중범죄인을
가두는 위리안치에 쓰였습니다.
연산과 광해 영창대군이 탱자울타리 안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고수의 북채로 쓰일 때는 소리꾼의 숨소리까지 지휘하고 안내하는 등대역할을 합니다.
고수와 명창에게 북채는 마음입니다.
판소리는 백성의 간난신고를 위로해온 가장 한국적인
공연예술입니다. 17세기 숙종조 어간에 생긴
12 마당 가운데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등
다섯 마당이 전해지고 있습니다.그중 춘향가가 으뜸입니다.쑥대머리 귀신형용의 춘향을 지탱시킨 것은 이도령을 향한 사랑의 서사였습니다. 춘향의 연모가 바위같은 절개를 낳았습니다.연모가 세상에 존재하는 한 춘향가는 영원한 고전일 수 밖에 없습니다.
동리 신재효의 30년 헌신 덕분에 구전되던 판소리가 재정리돼 제자리를 잡았습니다. 숱한 명창과 고수들이 길러졌습니다. 여명창이자 예술적 연인을 대원군에게
빼앗기는 애통한 일도 있었습니다. .
고창의 동리 사랑채에는 열강에 휘둘리는 조선의 현실을 탄식하는 인사들도 수없이 드나들었습니다.시국담을 나누던 인사들이
후일 동학혁명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2천석을 했던 동리의 사재는 늘 이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동리에 이어 인촌 김성수나 호암 이병철도
판소리의 든든한 후원자였습니다.
2008년 판소리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습니다.
케이컬쳐의 원단이 된 것입니다.
옛부터 일고수 이명창이라 했습니다. 소년명창은
있어도 청년고수는 없다고도 했습니다. 득음도 어렵지만 고수의 길도 멀고 험했습니다.
합죽선 소품 하나인 단순한 무대에서 펼처지는
절묘한 하모니는 지독한 고통수반이
필수였습니다.그래야 박동진 명창의 춘향가 8시간 완창이 가능했습니다. 호흡이 산맥처럼 길고
우렁찹니다.여느 대중음악과는 급이 다른 경지에
판소리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폭풍처럼 내지르고 때로 노도같은 탁음의 쇳소리를 토해내는 판소리는 독일어 웅변을 연상케 합니다.
내용은 거칠거칠하기가 라 마르세유와 비슷합니다. 프랑스 국가이자 군가인데 발음은 쟁반의 옥구슬이지만 비속어 가사내용을 보면 판소리와 흡사합니다. 미국의 재즈와도 유사점이 있습니다.아련한 애수나 향수의 비감이 그러합니다.
중국은 경극이 대중의 사랑을 받습니다.춤과 노래
무술의 복합적인 공연물입니다.우리에게는 영화 패왕별희를 통해 잘 알려졌습니다.
판소리와 아리랑,전통혼례음악 등 101가지가 조선족 고유의 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김치나 한복처럼 자칫하면 판소리도 자신들 것이라는 주장이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반도체나 조선 그리고 철강은 한국이라는 육신을 지탱하는 주요자산입니다.
판소리와 같은 무형문화재는 나라의 영혼입니다
멋이고 기품입니다.
정신이나 얼이 허전하면
나라가 강건해지기 어렵습니다.
김상기(전 mbc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