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작가, 크리에이터 [사진=더코리아저널]


[이홍석 컬쳐인사이트] 뒤샹의 변기에서 AI의 프롬프트까지: 기술적 복제 시대를 넘어선 ‘생성’의 예술론

“예술은 망막(retina)의 즐거움이 아닌, 정신(mind)의 봉사에 복무해야 한다.”

100년의 관성과 새로운 균열

그림 Duchamp smoking in front of Fountain, Pasadena Art Museum, 1963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1917년,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소변기에 ‘R.Mutt’라는 서명을 하고 《샘(Fountain)》이라 명명하여 기성 제품인 ‘레디메이드(Ready-made)’를 미술관에 들여놓았을 때, 그것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었다. 그것은 ‘망막적 즐거움(Retinal Pleasure)’에 머물러 있던 미술의 기능을 뇌의 영역, 즉 ‘개념’의 영역으로 강제 이주시킨 사건이었다.

그는 예술가의 ‘손기술’이 지니던 신성한 아우라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선택’과 ‘개념’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채워 넣었다.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시각적 쾌감이나 미적 만족을 넘어, 예술이 인간의 지성, 감정, 사유에 깊이 관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예술 비평의 중요한 관점이었다. 뒤샹의 이 획기적인 실험 이후, 20세기 미술은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1940~1950년대), 팝아트(Pop Art, 1950~1960년대), 미니멀리즘 (Minimalism, 1960년대), 개념미술(Conceptual Art, 1960년대 후반~197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다원주의(Postmodernism & Pluralism, 1980년대 이후)로 뻗어나가며 끊임없이 ‘무엇이 예술인가’를 질문해 왔다.

그러나 뒤샹의 혁명이 있은 지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 미술계, 그리고 특히 한국의 예술계는 기묘한 정체에 빠져 있다. 뒤샹의 후예를 자처하던 현대미술은 거대 자본과 결탁하여 또 다른 권력이 되었고, 난해함은 대중을 소외시키는 무기가 되었다. 아서 단토(Arthur Danto)가 예언한 ‘예술의 종말’처럼, 더 이상 새로운 충격은 존재하지 않는 듯한 지루한 관성 속에서 상업주의에 물든 예술은 박제된 짐승처럼 숨만 쉬고 있을 뿐이다.

그림 Warhol & Brillo Boxes at Stable Gallery – photo by Fred W. McDarrah

단토의 ‘예술의 종말’은 예술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예술의 정의와 역할에 대한 거대한 서사(모더니즘의 이상)가 끝났다는 선언으로,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전시를 계기로 예술이 더 이상 재현이나 미적 탁월성에만 갇히지 않고, 아이디어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무엇에 관함(Aboutness)’으로 확장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곧 ‘예술계(Artworld)’라는 그의 개념 도입에서 어떤 대상을 예술로 규정하는 역사적 텔로스(Telos, 목적)가 종결되고, 예술의 다원주의 시대가 열렸음을 선언한 것이며, 이후 예술은 자유롭게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는 인식이다.

그리고 현대 예술이 자본과 결탁하여 관성에 젖어 있는 바로 이 시점에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해일이 덮쳐왔다. 이것은 뒤샹의 변기보다 더 강력하고, 19세기 사진기의 발명보다 더 파괴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전위적이어야 할 예술가들, 그중에서도 기술적 진보의 가장 큰 수혜자였던 ‘사진가’들이 이 새로운 도구에 가장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며 스스로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빠져드는 것은 별로 달가운 장면은 아니다.

사진가들은 과거 자신들의 매체가 전통 회화로부터 배척받았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가 기술 발전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기술적 진보에 가장 개방적이어야 할 집단이 가장 폐쇄적이라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궁금하다.

물론 모든 작업자가 AI라는 새로운 기술을 반드시 사진 작업에 써야 한다는 대전제는 없다. 아무리 오래된 수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작가 고유의 영역이고 존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AI를 새로운 예술의 실험 영역으로 끌어들여 작업하는 작가들에 대해서도 그들은 열린 자세로 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망막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뒤샹이 ‘손기술의 아우라’에서 ‘선택’과 ‘개념’으로 옮겨놓은 정신에 봉사하는 예술의 태도가 될 터다.

그림 귀환, 300×200cm, 워터 솔벤트 프린트, 2025, 오승환, [강동문화재단 제공]

다게레오타입의 악몽과 회화의 해방: 위기는 어떻게 혁명이 되었나

역사는 반복된다. 1839년,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Jacques-Mandé Daguerre)가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는 최초의 실용적인 사진술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공표했을 때, 당대의 화가 폴 들라로슈(Paul Delaroche)는 이렇게 외쳤다. “오늘로써 회화는 죽었다(From today, painting is dead!)”

당시 화가들에게 사진기의 등장은 일종의 재앙이었다. 수천 년간 화가의 존재 이유는 대상을 정교하게 모방하고 재현하는 능력에 있었기 때문이다. 기계가 인간의 손보다 더 빠르고 완벽하게 현실을 복제해 내는 순간, 화가들의 기술적 숙련도는 그 가치를 상실할 위기에 처했다.

특히 초상화가들은 사진이 더 빠르고 저렴하게 인물을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생계 위협을 느끼며 그 공포는 빠르게 확산하였다. 프랑스의 저명한 시인이자 예술 비평가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는 사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그는 1859년 살롱전(Salon) 리뷰에서 사진을 ‘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고 부르며, 사진이 예술의 영역을 침범하여 대중의 취향을 저속하게 만들고 예술적 상상력을 빈곤하게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19세기 중반의 예술계는 지금의 AI 논쟁처럼 이처럼 공포와 비난으로 들끓었다.

그림 시가의 항아리, 90×90cm, D-pigment Print, 2024, 이홍석, [강동문화재단 제공]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사진이라는 ‘위기’는 회화의 역사에 진정한 ‘자유’를 선물했다. 사진이 현실 재현(Documentation)의 의무라는 것을 가져가 버리자, 화가들은 더 이상 대상을 똑같이 그리는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비로소 카메라가 찍을 수 없는 것, 즉 인간의 내면, 순간의 빛,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인상주의(Impressionism)이다. 모네와 르누아르는 사물의 형태가 아니라 빛의 떨림을 그렸고, 이어 등장한 고흐와 고갱은 내면의 감정을 색채로 폭발시켰으며, 마티스의 야수파(Fauvism)와 피카소의 입체파(Cubism)에 이르러 미술은 재현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순수 조형의 세계로 나아갔다. 사진기의 발명이 없었다면 현대 추상미술은 존재하지 않았거나 훨씬 늦게 도래했을 것이다. 기술은 예술을 죽인 것이 아니라, 예술을 ‘재현 기술자’의 위치에서 ‘창조적 사상가’의 위치로 격상시킨 것이다.

사진의 배신: 전위에서 기득권으로

그렇다면 21세기의 사진을 보자. 19세기 회화가 사진을 배척했듯, 오늘날 사진은 대체로 AI를 배척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사진계에서 이러한 현상은 두드러진다. 과거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던 2000년대 초반, 한국의 수많은 원로 사진가는 “필름의 물성(Chemical reaction)이 없는 디지털은 영혼이 없는 가짜”라며 디지털카메라를 힐난했다. 그들은 암실에서의 현상 과정만이 진정한 예술 노동이라 주장하며 디지털의 편의성을 경멸했다. 손기술과 영혼의 관계가 어떤 철학적 기반을 근거로 하고 있는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지금 그 누구도 디지털카메라 없이 작업하는 환경을 상상할 수 없다. 디지털 혁명은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들었고, 사진 예술의 폭발적인 대중화를 가져왔다. 당시 디지털을 거부하고 비아냥거렸던 이들은 도태되었거나, 슬그머니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뒤에서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그들이 AI 앞에서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사진(Photography)은 어원 그대로 ‘빛(Photo)으로 그리기(Graphy)’다. 하지만 AI 이미지는 ‘데이터(Data)로 그리기’다. 그들은 “빛이 닿지 않았으므로 사진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AI를 예술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려 한다.

그림 늑대의 미술관 #01, 60×12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5, 임안나, [강동문화재단 제공]

이것은 명백한 자기기만이며 역사적 퇴행이다. 사진이야말로 19세기에 가장 기술 의존적이고 기계적인 매체로 출발하여, 회화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예술의 지위를 쟁취한 전위적인 장르였다. 초창기 사진이 회화계에 던졌던 충격과 논쟁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오늘날 사진계가 새로운 기술의 발전을 ‘전통’과 ‘순수성’이라는 명분으로 배척하려는 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사진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기성 예술계의 태도를 연상시킨다. 스스로를 혁신의 주체에서 새로운 시대 패러다임의 이방인으로 고립시키는 이 어리석음은 훗날 예술사에 부끄러운 한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서양 철학의 기원인 플라톤은 현실 세계의 모든 사물이 완벽한 ‘이데아’의 불완전한 모방이므로, ‘예술(모방의 모방)’은 진정한 원본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AI 이미지나 사진 모두 현실의 특정 대상을 직접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반사나 데이터 알고리즘을 통해 ‘재현’하는 과정일 뿐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물리적 현실 자체는 예술 작품의 원본이 될 수 없으며, 작품은 언제나 현실의 반영이거나 해석일 뿐이다.

사진가는 눈앞에 펼쳐진 현실이라는 ‘시각적 레퍼런스(Visual Reference)’를 특정 구도와 빛으로 해석하여 포착한다면, AI는 인터넷상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레퍼런스(Digital Reference)’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로 포착한다는 차이 정도다. 두 세계는 사실 인간이 지각하는 하나의 세계다. 19세기적 ‘손기술의 아우라’가 이미지에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로 사진 예술을 따지고 있다면 이는 참으로 민망한 21세기의 촌극이다. 두 과정 모두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거나 경험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미지를 생성한다는 것에서 원본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재해석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1936년 에세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을 다시 펴 들어야 한다. 벤야민의 앞선 통찰은 AI 시대의 혼란을 예견한 예언서와 다름없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분위기, 즉 ‘아우라(Aura)’의 개념을 제시했다. 아우라란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것의 일회적 현현”으로, 원본이 지닌 ‘시공간적 현존성(hic et nunc)’을 의미한다. 과거의 예술(회화, 조각)은 ‘제의적 가치(Cult value)’에 기반을 두었기에 소수만이 독점하고 숭배하는 대상이었다.

그러나 사진과 영화라는 기술적 복제 수단의 등장은 이 아우라를 붕괴시켰다. 복제되는 순간 원본의 권위는 사라진다. 벤야민은 이 ‘아우라의 상실’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아우라의 붕괴가 예술을 제의적 감옥에서 해방시켜 대중에게 돌려주는 혁명적 계기가 될 것이라 보았다. 예술의 가치가 ‘제의 가치’에서 ‘전시 가치(Exhibition value)’로 이동함으로써, 예술은 소수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이 향유하고 비평하며 정치적으로 각성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는 것이다.

그림 인간수분자증후군, Pigment Print, 73×97cm, 2025, 사타, [강동문화재단 제공]

AI는 벤야민의 논의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AI 예술에는 애초에 ‘원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터의 바다에서 생성된 이미지는 0과 1의 조합이며, 무한히 변주되고 재생산된다. 이것은 ‘아우라의 완전한 소멸’인가? 아니다. 이것은 ‘창작 주체의 완전한 민주화’다.

벤야민이 사진을 통해 이미지의 소비가 민주화되는 것을 보았다면, 우리는 AI를 통해 이미지의 생산이 민주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사진이 예술 작품을 복제하여 대중에게 배달했다면, AI는 대중 각자에게 예술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쥐여준 셈이다. 이는 벤야민이 꿈꾸었던, 예술이 엘리트의 손을 떠나 대중의 삶 속으로 침투하여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단계의 진정한 완성이다.

요제프 보이스의 확장: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의 기술적 실현

독일의 현대미술 거장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는 “모든 사람은 예술가다(Everyone is an artist)”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그림을 잘 그리거나 조각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창의적인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라는 거대한 조각품(Social Sculpture)을 만들어가는 주체로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창조적 행위를 할 수 있다는 철학적 선언이었다.

그러나 보이스의 시대까지 이 선언은 다소 관념적인 구호에 머물러 있었다. 누구나 예술가적인 사유를 할 수는 있었지만, 누구나 예술가적인 ‘결과물’을 내놓기에는 기술적 장벽(드로잉 실력, 자본, 도구)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림 Generated Vanitas - Jacques de Gheyn Ⅱ #01, 50×70cm, Archival Pigment Print, 2024, 정현목, [강동문화재단 제공]

AI는 보이스의 이 선언을 비로소 물리적 실체로 누구나 구현할 수 있게 했다. 이제 그림을 그리는 손기술이 없어도, 비싼 카메라와 조명이 없어도, 상상력과 언어(Prompt)만 있다면 누구나 높은 수준의 시각적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AI라는 도구(Apparatus)는 소수의 훈련받은 전문가들이 독점하던 ‘표현의 권력’을 해체하여 대중에게 이양하고 있다.

내가 AI를 옹호하고 활용하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공정함(Fairness)의 문제다. 과거 디지털카메라가 대중들에게 “당신도 당신의 가족과 추억을 아름답게 기록할 자격이 있다”는 권리를 주었듯, AI는 대중들에게 ‘당신도 당신의 머릿속 상상을 시각화하여 세상에 내놓을 자격이 있다”는 권리를 부여한다.

예술은 더 이상 특정한 엘리트 집단이 고상한 척하며 향유하는 과거의 성배가 아니다. 예술은 인류 공통의 언어이며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 가치다. AI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창작의 기쁨을 맛보고, 그렇게 생산된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대중이 새로운 미적 취향을 발견하고 토론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요제프 보이스가 꿈꾸었던 ‘사회적 조각’의 완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두려움을 넘어 새로운 캔버스 앞으로

결국 세상은 변한다. 붓에서 카메라로, 암실에서 포토샵으로, 그리고 이제 프롬프트 창으로 도구는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그때마다 기득권 예술계는 저항했지만, 역사는 단 한 번도 러다이트(Luddite, 기계 파괴 운동)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지금 한국의 사진가들과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은 AI를 향해 어설픈 비판이나 일삼으며 낡은 장벽 뒤로 숨을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그랬듯, AI가 가져온 충격을 자양분 삼아 사진이나 그림이 도달할 수 없었던 새로운 미학의 영토를 개척해야 한다. 뒤샹과 같이 기성관념을 비틀고, 벤야민의 통찰처럼 기술을 통해 대중과 더 넓게 호흡하며, 보이스의 말처럼 만인이 예술가가 되는 세상을 긍정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확장시켜 줄 가장 강력한 파트너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전환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이것이 과연 예술인가?”라는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이 강력한 도구를 통해 우리는 어떤 새로운 미학적, 윤리적 지평을 열어갈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

모든 진정한 혁신은 익숙하고 관성적인 과거와의 필연적인 불화에서 시작되었다. 뒤샹의 변기가 그랬고, 19세기 사진기의 등장이 그러했다. 역사는 언제나 두려움을 떨쳐내고 새로운 변화의 파도에 기꺼이 몸을 실은 자들에 의해 쓰인다. AI라는 거대한 기술의 해일이 전통적인 창작의 영역을 덮쳐오는 지금, 예술가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배타적인 방어 태세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항해사가 되겠다는 용기 있는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