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사진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조문호 렌즈세상] 가을은 가난한 쪽방 촌에도 온다.

이른 아침 '남대문사우나'에 가려고, ‘서울로’로 올라가니, 붉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다. '서울로' 뿐 아니라 남산 길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새꿈공원도 추색이 완연하다. 가을이 왔다는 것은 추운 겨울을 예고하는 것이라 결코 반갑지 만은 않다. 쪽방이라도 있는 사람은 모르겠으나, 노숙하는 사람은 죽을 지경이다.

지난 18일은 볼일이 많아 녹번동 있던 차를 동자동으로 끌고 왔다. 동사무소에서 김장 김치를 나눠주고, ‘동성교회’에서 반찬을 갖다 주는 날이기 때문이다. 차를 끌고 오면 주차할 곳이 없기도 하지만, 다리가 아파 차 안에서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차창을 우두커니 내다보니, 점심시간이라 젊은 회사원들이 줄을 잇는다. 다들 커피 잔을 들고 종종 걸음 치는 사이로 쪽방 사람들의 곤궁한 모습도 끼어 있다.

동자동 살면 많은 교회에서 도시락이나 먹거리 도움을 주기 위해 자주 찾는데, 고마움보다 성가실 때가 많다.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라고 해도, 일방적으로 기도하는 바람에 난감할 때가 많다. 그러나 ‘동성교회’는 다르다. 몇 년 동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 달에 두 번씩 반찬을 갖다 준다.

쪽방 전체 주민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식생활을 해결하기 어려운 분만 골라 주는데, 올 때마다 주는 세 가지 반찬은 집에서 만든 반찬처럼 맛깔스럽다. 무엇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성이 반찬 속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교회처럼, 한 번도 기도를 하거나 억지 전도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을 믿지 않는 내 마음까지 흔들리는데, 이런 것이 올 바른 전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동성교회’에서 찾아오시는 분이 4층까지 올라오는 것이 송구해 입구에서 기다리는데, 약속한 오후 1시 무렵이면 어김없이 도착한다. 빈 반찬 통을 돌려주는 것이 미안해, 즐겨 먹는 콜라 한 캔을 넣어두는데, 매번 콜라를 준다며 반색한다. 그 날은 운전하는 분까지 차에서 내려, 같이 기념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들이 떠난 후 김치를 받기 위해 '후암동사무소'로 차를 끌고 갔다. 전체 주민에게 다 주는지, 김장 박스가 산처럼 쌓여있고, 타러 온 주민들도 줄줄이 섰다. 줄 서는 것은 질색이기도 하지만, 다리가 아파 동사무소에 앉아 한가해질 때를 기다렸다. 그런데, 김치 타러 온 한 젊은이가 갑자기 쓰러지며 숨을 헐떡이는 다급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마침 동사무소에 간호원이 있어 응급 처치하고, 119를 불러 응급실로 실어 보냈으나,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이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다들 사는 게 곡예사 처럼 아슬아슬하다.

이주빈 시인의 싯귀를 빌어 그들에게 기도한다.

봄 바다에 아지랑이 피듯 / 세상에 잘 깃들고 살아야 할 텐데 / 겨울 바다에 눈 내리듯 / 그대 마음에 편히 스며야 할 텐데...

[사진=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