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메타포] 조각가가 버리는 데 목적을 둔다?
계륵이다.
鷄肋은 결국 닭갈비다.
심장이 되지 못한다.
알면서도 혹시나 나중 필요치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버리지 못한다.
그런 내 강화도 8년동안의 찌꺼기가 작업실 옮기는 동안에도 쫒아왔다.
이십여일간의 작업실 이사준비와 트럭 2대로 수십차례의 운송.
나는 평소 조각을 무게가 있는 詩라 했거늘.
앞으로 이런 표현을 안하고자 한다.
정말 시인, 음악가가 부러웠다.
그들 작업의 형식과 작업 후의 부산물은 얼마나 단촐할 것인가?
그들에게 필요한 건 연필과 노트,
악기 하나면 충분할듯.
그들이 떠난 자리는 스님의 방과 같지 않았을까?
위 아래, 3개층의 공간에 빼곡히 쟁겨있던 것들 풀어놓으니 끝도없다.
거기서 나온 작품들 보며 언제 내가 저렇게 만들어 냈지?
하다가도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재료와 도구들,
작품의 부산물인 끝없는 쓰레기들 보며
나는 조각, 조각가로서 나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싶질않았다.
옮기는 과정중에 트럭 4대분량을 버렸다.
이후의 내 목표는 더 좋은 작품, 또 다른 작품을 만들어 내야겠지만
앞으로 일년동안 트럭 열대분량을 더 버린다는 데에 방점을 두고자 한다.
창작을 한다는 조각가가 버리는 데 목적을 둔다?
모순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만들면서 끊임없이 비어내려는 모순.
숙명이다.
이번 작업실 옮기며 얻은 소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