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역사학자, 시인, 국립사마르칸트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사진=더코리아저널]
[윤명철 역사미학] 사마르칸드에서
#1
안녕하십니까?
저는 새벽 2시에 학교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너무나 힘들게 왔습니다.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가 이제야 일어났습니다. 잊기 전에 꼭 할말이 있어서 잠시 씁니다.
우린 이 곳까지 오면서 우즈벡 사람들한테서 크고 작은 도움과 친절을 받았습니다.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세상에 이러한 사회가 남아있다는 사실이 희망을 줍니다. 사람들이 자주 묻습니다. 왜 거기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가? 저는 글로, 칼럼으로, 방송으로 여러번 답변했습니다.
저는 기억하는 우리 어릴적의 삶이 있습니다. 또 역사가 만들어 본성의 한 부분으로 물려준 인류의 꿈이 있습니다. 이 것들은 거의 부서져 나갔지만, 재생되야 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의 학문적인 모델을 우리 고대역사에서 찾는 일이 저의 평생 과제였습니다.
그런데 관념이나 이론이 아닌, 구호가 아닌 실현가능성이 높은 모델이라면 현재도 구현되거나 증거가 의 남아있어야 합니다. 제게는 그 현재의 모델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저 자신도 확신을 가져야하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을 설득시켜야 하거든요.
저는 소위 세계의 '오지'라는 터에서 자주 체취를 맡고, 간헐적으로 체험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년을 하고, 마침 초청을 해 준 이 곳에 온 것입니다. 벌써 3년 반이 넘었습니다. 히말라야 같은 오지에 계시는 김규현 선생님같은 분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들의 삶과 조금은 몸과 마음을 섞어 온 것이지요. 어제도 한 밤 기차역에서 부터 학교 숙소에 오기까지 겪은 이들의 도움과 인품에 또 한 번 감격했습니다. 제 생각과 모뎰어 확신을 더 했습니다.
나이가 들었고, 회의와 더불어 능력의 한계도 때때로 느끼지만 다시 힘을 내고, 또 존재할 이유와 의미를 확인했습니다. 오늘은 쉬면서 짐정리를 하고, 오랫만에 티무르영묘도 다녀 올겁니다. 그리고 내일 강의준비를 할겁니다.
여러분 건강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십시요.
사마르칸드에서 윤명철 드림.
추. 삼프로 등 유투브에서 제가 전하는 내용들에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2 독야청청.
다른 채소나 나무들도 그렇지만 호박은 정말 특별합니다. 맛이야 야 기막히지만 형태도,색깔도 변해가는 과정이 아릿아릿 예쁩니다. 그런데 진짜 묘미가 있습니다. 애호박을 찾아내야 맛나는 반찬으로 해먹을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도통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넝쿨이 장글을 이룹니다. 저는 유적 유물을 잘 찾는 능력이 있거든요. 그런데 오죽하면 보물찾기가 아니라 호박찾기라고 불렀겠습니까?
서리가 한번 내리고 나니 다 죽어가고, 너무 자라거나, 채 덜익은 호박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옵니다. 몇일 후 텃밭에 오니 이렇게 안쓰러워서 놔둔 덜익은 호박 하나가 덩그러니 앉아 있습니다. 나 아직 안죽었노라. 독야청청.
역사학자로서는
이 호박의 삶과 선택이 바른가는 가늠하기 힘듭니다.
여러분
푹 익어가는 가을날 귀하게 누리십시요.
윤명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