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의학박사, 클래식 애호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민석 뮤직박스] 슈만: 유령 변주곡 E flat장조 Anh. F39
▶근육이 만든 호르몬, 이리신이 해마를 살린다
2012년 하버드대학 연구팀은 운동 중 근육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단백질을 발견했습니다. 이름은 ‘이리신(irisin)’. 근육 속 단백질 FNDC5가 운동에 의해 분해되며 생기는 물질로 이리신은 몸속에서 백식 지방을 갈색 지방처럼 바꾸는 역할을 합니다.
갈색 지방은 열을 내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조직이어서, 이리신은 ‘운동이 살을 빼는 생화학적 이유’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연구가 이어지면서 이리신이 단순히 지방 대사뿐 아니라, 심혈관계, 뼈, 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운동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이유, 단순히 혈액순환 때문만은 아닙니다. 근육이 움직일 때 분비되는 이리신이 혈류를 타고 뇌로 들어가 신경세포의 생존을 돕고 염증을 줄이기 때문입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이리신이 뇌의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세포 생성을 촉진하고, 알츠하이머의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베타를 분해하는 효소를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사람에서도 이리신이 실제로 뇌 구조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명확한 증거가 없었습니다.
호주 선샤인코스트 대학 연구팀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65세 전후의 건강한 노인 74명을 대상으로 운동량, 혈중 이리신 농도, 뇌 MRI 영상을 함께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운동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혈중 이리신 수치가 높았고, 이리신이 높을수록 해마의 부피가 컸습니다.
특히 기억력과 신경 재생에 중요한 해마의 CA1, CA3, CA4 부위에서 그 관계가 가장 뚜렷했습니다. 반면 운동량 자체는 해마 부피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모든 효과가 ‘이리신’을 매개로 나타났습니다.
운동이 해마를 보호하는 과정에는 ‘운동 → 근육의 이리신 분비 → 해마 자극’이라는 경로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근육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기관이 아니라, 신경을 보호하는 내분비 기관처럼 작동한다는 개념이 현실로 확인된 셈입니다.
이리신은 일종의 ‘운동호르몬’으로, 근육과 뇌 사이의 메신저 역할을 합니다. 운동할 때 분비되는 이리신은 뇌의 신경세포를 지키고, 해마를 젊게 유지합니다. 나이가 들어 기억이 흐릿해질수록,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약보다 강력한 처방이 됩니다. 운동할 때 흘리는 땀 한 방울이 기억을 살립니다.
▶슈만: 유령 변주곡 E flat장조 Anh. F39
SCHUMANN: Geistervariationen in E flat major Anh. F39 12:39
오늘 들으실 곡은 슈만의 ‘주제와 다섯 개의 변주’, 흔히 ‘유령 변주곡’이라 불리는 작품입니다. 이 곡은 단순한 변주곡이 아니라, 슈만의 삶이 서서히 무너져 가던 시기의 깊은 내면이 담긴 음악입니다.
작곡 당시 그는 이미 심각한 청각 장애와 정신적 불안을 겪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꿈속에서 천사가 내려와 자신에게 ‘영혼의 주제’를 들려주었다고 믿었고, 깨어나자마자 그 선율을 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천사의 선물’이라 여긴 이 주제는 사실 본인이 이미 여러 작품에서 썼던 멜로디였습니다.
예전에 현악 4중주와 어린이를 위한 노래집, 그리고 바이올린 협주곡의 느린 악장에서 등장한 바로 그 선율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는 이 주제를 신성한 것으로 여기며 조심스레 변주를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앞의 세 변주에서는 주제 자체를 거의 건드리지 않습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변주는 단지 반주의 리듬만 바꾸었고, 두 번째 변주는 주제를 엄격한 캐논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마치 신성한 선율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듯, 슈만은 그저 주위를 맴돌 뿐입니다. 네 번째 변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주제의 선율이 조금 변하지만, 그조차 매우 절제되어 있습니다.
조용히 머무는 화음들, 거의 움직이지 않는 선율 속에서 음악은 점점 하나의 추모곡처럼 들립니다. 그 무렵 슈만의 정신은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는 라인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려 했지만 구조되어 목숨을 건집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마지막 다섯 번째 변주를 완성합니다. 이 변주에서는 주제가 점점 숨겨지고, 다른 음형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끝내 선율은 완전히 희미해지고, 음악은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여운만 남깁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천사에게서 들었다는 주제가 실은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던 것 같습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슈만은 마지막까지 음악으로 자신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유령 변주곡’을 들으며, 슈만이 음악 속에서 어떻게 자신을 기록했는지 조용히 느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피아노)의 1983년 연주입니다. 행복한 한 주 시작하세요.
슈만: 유령 변주곡 E flat장조 Anh. F39
SCHUMANN: Geistervariationen in E flat major Anh. F39 12:39
김민석 올림
2025년 11월 10일 슈만: 유령 변주곡 E flat장조 Anh. F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