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작가, 크리에이터 [사진=이홍석]


[이홍석 컬쳐인사이트] 무(蘿蔔)에 대한 오마주

쌀쌀한 바람이 제법 앙칼지게 뺨을 스치는 저녁, 코끝이 시큰해지는 날씨에 역시 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냉장고 문을 열기 전, 먼저 시장 채소가게에 들려야 한다. 희고 단단한 무 하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네 시장 골목의 채소가게, 흥정 소리와 활기가 넘치는 곳. 나는 채소가게 주인 남자에게 무 한 개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남자, 어딘가 능글맞게 건들거리며 시든 무 하나를 슬쩍 내민다. 겉은 푸석하고 속은 물렀을 것이 분명한 그 무를 보며, 나는 순간 울컥했다. 게다가 무를 가로지르는 허리에 생긴 지 오래되어 보이는 금까지 가 있다.

“내가 살림을 잘 모를 남자라고 이 시든 무를 팔려고 하시오? 지난주에도 보았던 무인데 이 시든 무로 무엇을 하란 말이오!” 낮게 깔린 목소리로 꾸짖자, 남자는 그제야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한다. “에이, 손님도 참. 싱싱한 건데 그러시네.”

나는 그의 허튼 손동작을 주시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새 무로 하나 꺼내주시오.” 쭈뼛거리던 남자는 마지못해 싱싱하고 단단한 무 하나를 꺼내왔다. 2천 원을 건네고 싱싱한 무를 받아서 들자, 그제야 내 마음에 소소한 기쁨이 밀려들었다. 소박한 무 하나를 사는 일에도 이렇듯 신경전이 오가다니. 씁쓸함 반, 그래도 제 것을 샀다는 뿌듯함이 반이었다. “거기 대파 한 단과 두부도 한 모 주시오.” 기분 같아선 옆 가게로 가고 싶었으나 나머지 것들도 그냥 능글맞은 남자 가게에서 샀다. 사내가 저렇게 나이가 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렇게 소소한 실랑이 끝에 획득한 무를 트로피처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 흙을 털고 물에 씻자, 희고 단단한 무 하나가 나의 소박한 주방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저 흔하디흔한 채소라 여겼던 무. 하지만 오늘 저녁, 나는 이 소박한 무 한 덩이로부터 위로와 치유를 얻을 참이다.

칼을 대자 아삭,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뽀얀 속살이 드러나고, 알싸하면서도 시원한 향기가 콧속을 간질인다. 이 작은 한 조각이 내 몸속의 쌓인 체증을 시원하게 뚫어줄 ‘다이스타아제(diastase)’와 ‘아밀라아제(amylase)’를 품고 있다니. 기름진 음식에 더부룩했던 속을 말끔히 씻어내고, 소화 불량으로 고생하던 이웃의 미간을 펴주던 조상들의 지혜가 바로 이 무 한 조각에 담겨 있었으리라. 과연, 이 쌀쌀한 계절에 등장하는 무는 묵묵히 제 할 일을 다하는 ‘세상에 던져진 존재’와 같다.

무의 매운맛은 또 어떤가. 톡 쏘는 듯 올라오는 ‘시니그린(sinigrin)’의 맛은 얼핏 차갑게 느껴지지만, 이내 따뜻한 기운으로 목구멍을 타고 내려와 막혔던 기관지를 시원하게 열어준다. 켜켜이 쌓인 가래를 삭이고, 콜록대던 기침을 잠재우는 그 청량감이란. 마치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피어나는 한 줄기 따뜻한 숨결과 같다. 감기에 걸려 훌쩍이던 날,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뭇국의 따스한 온기가 새삼 그리워지는 맛이다.

사실 써놓고 보니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의 어머니가 뭇국을 끓였던 기억보다 우리 집에서 숙식하며 가사를 돌보던 ‘식모(食母) 누나’가 끓여준 뭇국 맛이 더 기억에 남는다. 가난하게 살던 시절 한 입이라도 줄이기 위해 남의 집으로 딸을 보냈던 시대상이 그러했지만, 나는 철모르는 아이였던 그 당시에도 ‘식모’라는 이 괴이한 호칭에 약간의 반감과 모종의 슬픔을 느끼곤 했다.

무(蘿蔔)에 대한 오마주(Feat. 김수민의 주병과 술잔), 2025, 이홍석

그리고 이어서, 숙취로 고통받던 다음 날 아침, 무는 또다시 고마운 손길을 내민다. 차가운 무즙 한 잔은 지끈거리는 머리와 울렁이는 속을 진정시키고, 간에 쌓인 독소를 말끔히 씻어낸다. 밤새 곤했던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베타인(betaine)’과 ‘아스파라긴산(aspartic acid)’의 힘. 어쩌면 무는 사회와 직장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우리 삶의 고단함과 피로를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숨은 조력자가 아닐까.

뿐만이 아니다. 무를 포함한 십자화과 채소(브로콜리, 양배추, 고추냉이 등)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식물성 화합물인 ‘아이소싸이오사이아네이트(isothiocyanate)’라는 이름도 어려운 성분은 침묵하는 암세포를 경계하고, 무의 껍질에 풍부한 비타민 C는 무너진 면역의 벽을 다시 세운다. 역시 껍질 속에는 햇살을 머금은 칼슘이 단단히 박혀있어 뼈를 튼튼하게 하고, 칼륨은 답답한 혈관의 짐을 덜어준다. 무는 그야말로 흙 속에서 자라난 작은 보물창고이자 병원이고 약국이다.

오늘 저녁, 나는 얇게 써는 무 조각보다 조금 두툼하게 썰어 넣는 것을 선호하는데, 그런 무가 푹 익어 투명해진 뭇국 한 그릇을 마주할 것이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그릇 안에서 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준다. 투박하고 흔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생명의 힘과 위로의 맛이 가득하다. 혀끝을 감도는 시원하고 달큰한 맛, 그리고 이내 온몸으로 퍼지는 따뜻한 온기.

아, 겨울 문턱에서 나는 무수, 무시라고도 불리는 이 아름답고 야무진 무 한 덩이에 기대어 다시 한번 삶의 깊은 호흡과 생활의 진심에 마주한다. 화려함 대신 충실함을, 소란스러움 대신 묵묵함을. 무는 그렇게 말없이 우리에게 건강과 위로를 건네며, 차가운 계절 속 따뜻한 삶의 맛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러다 문득, 끝내 흙으로부터 드러나는 이 단단하고 정직한 모양의 무가 마치 하이데거가 말한 '세상에 던져진 존재'와 같다는 생각에 이른다. 어떤 거창한 목적이나 본질을 부여받기 전에 이미 여기, 존재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 존재 자체가 그 어떤 미사여구를 늘어놓은 본질보다도 앞선다는, 역설적이면서도 가장 기초적인 진리를 나는 이 따끈한 뭇국 한 그릇을 통해 복기한다.

글·사진 이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