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건섭] 길 위의 기도
수능 앞에서 우리의 아들딸들에게 / 장건섭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너는 오늘
스스로의 이름으로 걷는다
삼나무 그늘 아래
한때 작디작은 손이던 너
이제는 바람의 방향을 묻는다
세상이 네게
정답 대신
물음을 던질 때,
두려워 말거라
불안은 살아 있다는 증거,
떨림은 날개를 펼기 전의 예감이다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일어서는 법을
삶이 가르쳐줄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너의 손을 잡지 않으리
그 손이
스스로 빛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잡아주지 말고,
믿어주는 일로 사랑을 배운다
기도 또한
그 믿음의 또 다른 이름
아이야,
길 위에서 울지 말고
한 번쯤은 하늘을 올려다보아라
너를 위해
누군가의 마음이
매일같이 저 구름 뒤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다
그 믿음이
네 발밑의 길이 되고
네 마음의 등불이 되기를
오늘,
세상의 모든 부모는
한 문장으로 기도한다
"우리의 아이들이여,
반듯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
- 2025. 11. 13.
수능의 아침, 부모의 기도는 언제나 같다.
'점수'가 아닌 '사람'을 위한 기도,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아이들에게 전하는 오늘의 마음이다.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집을 떠나 삼나무 같은
부모의 그늘에서 멀어져 가는
우리의 아들딸에게
반듯하게 홀로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홀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더불어 나아갈 수 있음을,
그들이 스스로 깨닫게 하소서.
오늘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한 세대가 바뀌어도 이맘때면 여전히 부모들은 같은 기도를 드린다.
'좋은 점수', '원하는 대학', '무사히 시험 마치게 해달라'는 바람 속에는 사실 '내 아이가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속내가 숨어 있다.
입시의 계절은 마음부터 춥다. 수능 아침마다 불어오는 찬 바람은 부모와 자식 모두의 긴장과 설렘, 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인 바람이다.
아이들이 걸어야 할 길은 여전히 험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은 흔들리고, 역대 대통령들의 공약으로 내걸렸던 '반값 등록금'은 여전히 공허한 말뿐이다.
대학에 들어가도 등록금 걱정에, 졸업 후에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현실.
월급 한 푼 쓰지 않고 20년을 모아도
서울의 작은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어렵다는 통계는 오늘의 청춘이 맞닥뜨린 잔인한 진실이다.
그래서 부모들은 오늘도 기도한다.
"잡아주지 마시고, 홀로 설 수 있는 힘을 주소서."
그 말은 단지 독립을 바라는 주문이 아니다. 그들이 불안과 마주하고도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불안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불안한 사람만이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아이들이 낯선 갈림길 앞에서 주저할 때, 그때 필요한 것은 해답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찾는 지혜와 여유다.
부모의 역할은 점점 단순해진다. 지켜보는 일, 기다리는 일, 그리고 믿어주는 일.
잡아주고 싶은 손을 떼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인지 이제 부모가 먼저 배워야 할 때다.
아이들은 언젠가 우리보다 더 멀리 간다. 그 길에서 넘어질 수도,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넘어짐은 실패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로 일어서는 법을 배우는 시간임을.
오늘 시험장으로 향한 수많은 아이들,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세상의 어떤 기도보다도 절실하다.
하지만 그 절실함이 '점수'에 머물지 않기를, '사람'에 닿기를 바란다.
아이들이여,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 불안과 친구가 되어라. 아픔을 피하지 말고, 그 아픔 속에서 자신만의 빛을 길어 올려라.
그리고 부모들이여, 이제는 한 걸음 뒤에서 조용히 믿어주자. 그 믿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울타리다.
언젠가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서서 세상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 그날, 우리는 비로소 안심할 것이다.
그들이 반듯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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