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장건섭] 익어가는 시간의 얼굴
한때는 모두 푸른 숨이었다
햇살에 눈부시고, 바람에 설레던 날들의 언어
그러나 시간은 달다
그 달콤함은 기다림의 쓴 끝을 지나야만 얻는 맛,
붉게 물든다는 건
스스로를 오래 견뎌냈다는 뜻이다
주름은 기억의 결을 따라 생겨나고
그 주름마다 지난 계절의 숨결이 숨어 있다
빛나던 생의 표면이 안으로 말려 들어가며
시간은 그 흔적을 깊이 새긴다
빈집 마당,
대추나무 한 그루가 홀로 서 있다
어머니의 발소리를 기다리던 그 자리,
이제는 바람만이 가지를 흔든다
손길 닿지 않은 가지마다
벌레 먹은 상처와 바람의 자국이 얽혀 있지만
그 흉터마다 달콤한 빛이 맺혀 있다
삶이란, 결국
누군가의 보살핌 없이도
스스로 익어가는 일
햇살과 비를 견디며
자신만의 맛을 찾아가는 일이다
어머니의 손이 머물던 그 가지 끝에는
여름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다
그 온도는 이제 그리움의 빛깔로 변해
내 마음의 한켠에서 천천히 익어간다
나는 오늘
낙과를 주워 담으며 깨닫는다
완전하지 않은 것들이야말로
더 깊이 완성된다는 것을
벌레가 먹은 자리마다
세월의 단맛이 스며 있고,
터진 껍질 속엔
햇살이 남긴 문장이 숨어 있다
대추는 익으며 주름을 만든다
그 주름은 늙음이 아니라
시간이 쓴 시,
살아 있었다는 증거다
우리의 얼굴도 그렇다
견뎌낸 만큼 깊어지고,
그리운 만큼 단단해진다
익는다는 건
사라지는 일이 아니라,
자연으로 스며드는 일
대추처럼, 우리도 언젠가
자신의 달콤함으로 세상을 물들이리라
그리고 나는 오늘도
상처를 품고, 주름을 피워
내 안의 작은 햇살 하나를 지켜내며
천천히, 익어가고 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내 마음은 자꾸 고향 마당으로 향한다.
한때 사람의 발길로 분주하던 그 마당에는 이제 고요만이 깃들어 있다.
세월이 한 바퀴를 돌아올 때마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제일 먼저 대추나무부터 바라본다.
부모님 살아 계실 적 심으셨던 그 나무,
삶의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집안의 기쁨과 그리움, 그리고 기다림을 함께 품어왔던 나무이다.
올해도 그 나무는 여느 때처럼 붉은 열매를 달았다.
그러나 올해의 대추는 예전처럼 탐스럽지 않았다.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견디며 스스로 익어낸 열매들은 반쯤은 벌레가 먹고, 반쯤은 낙과로 떨어져 있었다.
가꾸는 이 없는 세월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는 묵묵히 제 일을 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인생을 닮았다. 누구의 손길도 받지 않아도, 삶은 어쩌면 그 자체로 완성되어 가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마당 한켠에 앉아 대추를 갈무리했다. 반은 터지고 반은 상처 입었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단맛은 그 어떤 해보다 깊고 진했다.
농약 한 방울 쓰지 않은, 그야말로 '시간이 빚은 맛'이었다. 그 달콤함 속에는 여름 내내 버텨낸 햇살과 비,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가 남긴 빈자리가 녹아 있었다.
그리움이 이렇게 달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어머니가 계셨다면 아마도 매일 아침 나무 아래를 돌며 벌레를 잡고, 가지를 다듬고, 햇살의 방향을 살피셨을 것이다.
그분의 손길은 언제나 섬세하고 따뜻했다. 그 손끝에서 대추는 유난히 반들거렸고, 가을의 어느 날이면 대야 가득 붉은 열매들이 마루에 놓였다.
그때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대추는 참 사람 같아. 매 맞고도 더 달아지는 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삶도 그렇지 않은가.
비바람과 상처를 견디며 조금씩 익어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인간의 숙명이다.
덜 익은 시간에는 초조하고, 지나치게 익으면 부서지지만, 그 사이의 어느 한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살아 있음의 맛’을 깨닫는다.
대추는 익어가며 주름을 만든다. 그 주름 속엔 한 계절의 고단함과 햇살의 흔적,
그리고 생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깃들어 있다.
사람의 얼굴도 그렇다. 나이 든다는 것은 단지 세월이 흐른다는 뜻이 아니라, 시간의 무게를 견디며 자기 안의 단맛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주름이 깊어질수록 삶의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
나는 오늘, 고향 마당의 대추나무 앞에서
익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익음은 단순히 완성의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와 결핍을 품은 채로 자연의 리듬 속에 자신을 맡기는 일이다.
벌레 먹은 대추도, 떨어진 낙과도, 모두 이 땅의 일부로 돌아가 새로운 생을 품을 것이다.
그 순환의 길 위에서, 나는 어머니의 손길 대신 바람의 손길을 느끼고, 그 바람 속에서 내 삶 또한 조금씩 익어가고 있음을 안다.
대추를 한 알 베어 물면 그 속살에서 햇살의 온기와 함께 세월의 향기가 퍼진다.
그 맛은 어머니의 미소 같고, 또한 지나온 나날의 기억과도 닮았다.
비록 올해의 수확은 많지 않았으나, 그 안에는 세월의 진액이 응축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남기신 나무, 그 나무가 해마다 내게 일깨워주는 진리.
삶은 결국 '잘 익어가는 시간의 얼굴'이 된다는 것.
세월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그 대추나무 앞에 선다.
어머니의 빈자리에서 자라난 그리움이
이제는 나를 가꾸는 뿌리가 되었다.
대추처럼, 나도 언젠가 햇살과 비, 바람을 견디며 스스로의 단맛을 만들어가리라.
익어간다는 것은 늙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오늘, 마당의 붉은 대추 몇 알을 바라보며 나는 다짐한다.
삶이 허락한 시간만큼 천천히, 그러나 깊게 익어가자.
그리하여 언젠가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달콤한 시간의 얼굴로 남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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