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렌즈세상] 백일홍이 활짝 피어 설레게 만든다
작년에 이어 올 해도 '백암길사람사진관'에 백일홍이 활짝 피어 설레게 만든다. 백일홍은 100일 동안 피어 있어 수명도 길지만, 야단스럽지 않고 소담스러운 자태에 정영신 동지가 유달리 좋아하는 꽃이다.
효성이 지극한 딸이 아버지 병을 치료하기 위해 약초를 구하러 다니다 안타깝게 죽은 자리에 피었다는 슬픈 전설과 ‘행복’이라는 꽃말은 배치되지만....
백일홍과의 인연은 정선 만지산 ‘사진굿당’때 부터 시작되었다. 그곳이 불 타 사라지며 꽃마저 잊고 살았는데, 지난 해 아산 ‘백암길사람사진관’을 준비하며 집 주변에 여러 가지 꽃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백일홍, 코스모스, 채송화, 나팔꽃 등 좀 촌스러운 꽃만 심었더니, 설치 사진을 감싸며 주변을 아름답게 수놓아 주었다.
올 봄에는 작년에 떨어진 꽃씨가 다시 돋아나는 것이 고마워, 연약한 모종 주변에 퇴비를 뿌려 주었더니, 꽃의 크기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연약한 애처로움에서 통통한 풍요로움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해 꽃씨 사올 때 이름도 생소한 '메리골드'란 꽃씨도 딸려 왔는데, 구석에 핀 몇 몇 송이가 한 해 사이 장미화단을 점령해 버리는 강한 번식력에 주눅 들게 만들었다. 이름을 몰라 국화 변종 쯤으로 여겼는데, 어느 날 울산 우영일씨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페북에 올린 사진 중에 ‘메리골드’가 있다며, 그 꽃으로 꽃차를 만들면 몸에 좋다”는 것이다. "루테인, 지아잔틴 성분이 많아 시력감퇴에 탁월하고, 항염, 소화개선, 피부건강에 좋아 비싸게 팔리는 약재" 라며,꽃을 보내주면 차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야 꽃차를 좋아하지 않지만 약으로 쓴다는데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메리골드’가 핀 화단을 정리하기 위해 꽃송이 부터 잘라 냈는데, 예쁜 꽃 모가지를 가위로 싹둑 싹둑 자른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 어차피 시들어 죽을 몸, 죽기 전에 건강에 이바지하는 것도 좋은 일이라며 위안했다.
그 날 저녁 농장 식구들이 찾아 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사단법인 ‘땅 사람 생명’ 창립에 따른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수막 설치 사진이 퇴색하여 바꿀 때도 되었지만, 창립에 맞추어 정영신의 ‘촌사람’ 사진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그리고 전시가 시작되는 날, 사단법인 발기대회도 겸하기로 했다. 또한 내년 2월 중에 열릴 창립총회에서는 여러 작가들이 참여하는 기획전 ‘땅 사람 생명’전을 인사동에서 열기로 했다.
술 한 잔 마시며 우영일씨 덕에 알게 된 '메리골드' 꽃 이야기를 꺼냈더니, 선우가 꽃보다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는 '메리골드' 꽃말을 더 좋아한단다. 그리고 김창복씨가 갖다 놓은 선인장에서 애기 버선 같은 신비한 꽃이 피어났다. 좀처럼 만나기 힘든 길조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오는 10월 25일부터 열릴 "땅 사람 생명" 발기 설치전 정영신의 ‘촌 사람’을 기대하시라. 백일홍과 국화가 어울리는 꽃 잔치에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아름다운 가을을 만끽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