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작가, 크리에이터 [사진=더코리아저널]
[이홍석 컬쳐인사이트] 21세기 종이 보증서의 완전한 변신 NFT
얼마 전 ‘호카(HOKA)’에서 트레일 러닝화를 구매했다. 앞서 사용하던 운동화의 마일리지가 이미 1,000km를 넘겨 험로를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기능이 다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한 러닝 열풍과 더불어 거친 험지와 산에서 달리는 좀 더 마니아적인 트레일-러닝도 점차 인기를 더하고 있다.
최근 러닝·마라톤·트레일-러닝의 열기는 경제 불황의 시대에 관련 제조 산업과 유통망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덕분에 운동화를 구매할 때마다 성능이 검증된 인기 있는 일부 러닝화들은 출시되자마자 매진되어 구매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힘들다. 심지어 정상가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뒷거래에서 판매되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이들 전문 러닝화를 약삭빠르게 중국 등지에서 겉만 그대로 복제한 가품들이 온라인 판매에 넘쳐나는 웃픈 현실은 말할 것도 없다. 러닝을 오래 한 사람들은 가짜 운동화를 비교적 쉽게 구분하지만, 이제 막 달리기에 입문한 사람들은 깜빡 속을 정도로 정교한 복제품들이 온라인 판매에 즐비하다.
심지어 해외직구를 통해 정품보다 가격이 싸면 가짜일 거라는 의심을 피하려고 당당하게 정품과 유사한 가격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분명히 기업이 평생을 바쳐 이룬 고유의 기술과 법으로 보장한 특허를 훔치는 일이고, 소비자의 주머니를 약탈하는 행위다. 신중한 소비자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더욱 지능화 되어가는 ‘제조와 유통에 기생하는 범죄자들’에게 여차하면 당하기 십상이다.
여기서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진품 여부와 그 성능이나 품질을 보장하기 위한 보증서를 발급하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는 너나 할 것 없이 그동안 기업이 발급하는 보증서를 관행적으로 믿어왔다. 하지만 지금은 종이와 도장 또는 제아무리 홀로그램을 이용한 보증서라 하더라도 정교하게 복제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 관리자마저 속을 정도로 정교하여 가품과 가짜보증서를 진짜로 착각하고 이를 받아서 보증수리해 주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기존 종이로 만들어진 보증서의 제작과 발급 과정을 보면, 외주 인쇄업체가 제조업자로부터 의뢰받은 제품의 보증서를 디자인하고 이를 수천수만 장을 찍어서 기업에 납품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한 번 찍으면 디자인 수정이 어렵고 또한 보관하고 있는 수량이 많아서 위변조에 대한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다. 또 시리얼 넘버를 수기로 관리하는 탓에 잘못 기재하거나 분실과 위변조의 문제에도 취약하다. 또한 보증서로써 제품 정보전달의 비효율성과 잔여 보증기간 확인의 불편함과 양도의 어려움도 있다.
하지만 도둑이 영리해지면 이를 지키려는 자들 또한 발전하는 법이다. 여기에 대응할 새로운 디지털 보증서의 등장이다. 종이 보증서가 가진 기존의 한계와 문제를 해결했다. 디지털 보증서는 제조사가 언제라도 디자인을 쉽게 바꿀 수 있게 되었고 미리 보증서를 인쇄해서 창고에 쌓아 둘 필요도 없다.
그리고 보증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정품 인증’을 영구적으로 위변조할 수 없는 블록체인상에 발행하게 되었다. 바로 ‘NFT 보증서’가 기존의 위변조에 취약했던 종이 보증서를 대체할 새로운 수단이다.
그림 NFT 보증서를 상징적으로 그린 AI Nano-Banana, Dr. COB, 2025
NFT(Non-Fungible Token)는 블록체인에서 각각 고유한 식별 값을 가지므로, 특정 NFT를 발행한 블록체인에 참여하고 있는 전 세계의 모든 ‘노드(Node)’가 동시에 값을 바꾸지 않는 한, 위조하거나 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거래를 검증하고 블록을 생성하는 핵심 참여자인 ‘노드 검증자(Node Validator)’가 24시간 네트워크의 안전성과 신뢰성을 유지하며, 거래 유효성을 확인한다.
이를 통해 제품의 진품 여부를 보증할 수 있으며, 위조품 시장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NFT를 통해 해당 제품의 소유권을 명확하고 투명하게 증명할 수 있고, 구매자뿐만 아니라 제조사도 이를 통해 제품의 이력을 관리할 수 있다.
NFT 보증서는 블록체인에 기록되어 있어, 보증기간과 소유권이 자동으로 확인되며 소유자가 번거로운 서류 작업이나 구매 내역을 증명할 필요 없이 신속하게 보증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만든다. 보증기간이 정해져 있는 경우, NFT에 ‘소멸형’ 기능을 적용하여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만료되도록 설정할 수 있어서, 이는 제조사의 보증기간 관리를 자동화하여 업무 효율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이점은 중고 거래에서 소유권 이전의 편의성을 갖추게 된 것인데, 중고 거래 시 NFT를 구매자에게 전송하는 것만으로 보증서의 소유권이 함께 이전된다. 기존의 중고 거래에서 보증서의 효력이 상실되거나 불명확해지는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NFT를 통해 제품의 이력(구매일, 소유자 변경, 수리 내역 등)이 투명하게 기록되므로, 중고 거래 시 구매자는 더 신뢰할 수 있는 제품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제품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밖에도 기업의 측면에서 보면, NFT 보증서는 단순한 기능적 혜택을 넘어, 브랜드의 기술력과 혁신성을 보여주는 요소가 된다. 소비자에게 특별한 디지털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NFT 소유자에게만 제공되는 한정판 상품 구매 기회, 특별 이벤트 초대 등 추가적인 혜택과 연동하여 VIP 고객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다.
기업의 효율성 증대 차원에서, NFT 보증서는 종이 보증서의 제작, 보관 및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보증 절차가 자동화되므로 고객센터 운영 비용까지 절약할 수 있다. 기업은 블록체인에 기록된 제품 이력 데이터를 활용하여 고객들의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케팅 전략을 개선할 수도 있다.
이번에 트레일 러닝의 명품으로 이름난 ‘호카’에서 트레일 러닝화를 구매하면서 ‘NFT 보증서’를 발급받았다. 2024년에 동일 브랜드에서 러닝화를 구매할 때 제공되었던 간단한 태그 형태의 보증서나 귀찮은 영수증과 달리 제조사의 혁신이 느껴진다.
한 켤레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이 브랜드의 운동화는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가품들이 넘치고 있어서, 소비자도 기업도 골머리를 앓았다. 해당 브랜드 매장을 여기저기 직접 가보기 이전에 비교적 신중한 소비자라 여겼던 나조차 처음엔 진품과 가품을 구별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공홈마저도 의심이 갈 정도였는데, 이번에 NFT 보증서의 발급과 함께 정품에 대한 불신이 사라졌다.
그림 호카(HOKA)에서 발급한 디지털 보증서와 NFT ID, Dr. COB, 2025
현재 해외 브랜드 중 호카(HOKA)를 포함하여 루이비통(Louis Vuitton), 구찌(Gucci), 까르띠에(Cartier),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티파니(Tiffany) 등이 직접 NFT 보증서를 발행하거나 NFT 패션 아이템으로 실물 제품을 간접 보증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국내 패션 기업에선 LF몰과 SSG닷컴이 명품 상품 구매 고객에게 NFT 보증서를 적용하는 ‘개런티 서비스’를 시작했다. 중고차 시장에 최초로 ‘디지털 보증서 및 NFT’를 도입하여 자동차의 소유권과 이력을 투명하게 관리하는 업체도 등장했는데, 매물 사기가 많은 중고차 시장에 건전한 거래 질서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때 미술품 공동 구매 서비스로 NFT를 활용한 조각 투자 상품이 있었으나, 지분을 증명하는 NFT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지만 유동성이 불분명한 미술품에 조각 투자한다는 발상 자체가 정상적 금융투자가 아닌 기망에서 시작되었기에 결국 문제가 불거졌다. 게다가 실제로 그런 미술품이 거둬들인 투자금으로 정확히 사들였는지 아닌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였고, 관련자들은 결국 사기 혐의로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어쨌든, NFT 보증서는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던 창작의 툴(tool)이 누구에게나 자유로워지고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것들도 복제가 쉬워진 최근의 경향을 들여다보면, 특허권과 저작권을 더욱 체계적으로 보호받게 만들고 위작이나 복제품 그리고 ‘짝퉁’이라 일컫는 가품들이 활개 치는 시장을 정화하는 데에도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글·그림 이홍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