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작가, 크리에이터 [사진=더코리아저널]
[특별기고 이홍석] [특집] 관세, 대약탈의 시대 2부
- 고대의 통행세에서 21세기 문화와 예술까지 넘나드는 관세의 그림자
• 문화예술이라고 안전할까 - 관세는 교양이나 지성이 없는 생물
관세는 오래전 성문을 지나는 통행료로 시작했지만, 시대를 거치며 국가 간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지표로 진화했다. 동아시아 항구 국가들이 관세 행정을 일찍 정비했던 것처럼, 관세는 경제적·정치적 의지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근대 제국주의가 관세를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삼았듯이, 21세기에는 무역·안보·디지털 규제가 복합적으로 결합해 문화·예술까지 압박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무기’로 재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사례는 중요한 경고다. 한류는 단순한 수출 품목이 아니라 국가의 ‘소프트 파워’와 사회적 자본이다. 경제적 보복과 관세 무기의 재등장은 한류 산업과 미술시장을 직접 겨냥할 수 있으며, 그 파급은 기업의 수익을 넘어 국가 브랜드·외교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교·무역·문화 산업 정책의 통합적 재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국제 규범의 적극적 활용, 시장 다변화, 문화산업의 자립과 완충 체계의 확충이 핵심이다.
관세는 기술적으로는 ‘세율표 하나’이지만, 정치적 맥락에서는 ‘칼날’이 된다. 국가 간 신뢰가 약화된 시기일수록 그 칼날은 경제와 문화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은 한류라는 귀중한 현재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경제·외교·문화 전략을 통합적으로 재편해야 한다. 문화는 교역 품목이자 동시에 국가 정체성과 외교의 ‘완충재’이다. 관세 전쟁의 불똥이 한류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도록, 지금이야말로 준비하고 분별하며 대처할 때다.
• 시장의 경고는 때때로 현실이 되어
미술품·골동품은 오랫동안 여러 국가에서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정 범위에서 관세·통관 예외를 받아왔다. 특히 미국의 관세 코드(Harmonized Tariff Schedule, HTS) 상에서 ‘미술품’은 전통적으로 특별 처리를 받아온 사례가 많다. 그러나 최근의 일방적·광범위한 관세 조치는 미술·골동품 시장에 불확실성을 불러왔다. 경매·전시의 연기, 비용 증가, 수입 결제의 보류 등 실무적 혼란이 발생했고, ‘어떤 항목이 면제 대상인가’에 대한 법적 해석이 분분해지면서 딜러·수집가·박물관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업계 보도와 전문 분석은 “미술품 전반이 관세·관행 변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특히 골동품·가구·디자인 오브제 등은 관세 적용 대상이 되어 비용이 급증할 가능성”을 경고한다.
미술품에 대한 관세는 미국의 영악한 세리(稅吏, tax collector)들이 얼마든지 과거에서 그 레퍼런스를 가지고 올 수 있다. 로마 시대의 상류층은 그리스 조각상과 이집트 미술품을 수입했는데, 이때 항구에서 통과세(portoria)를 냈다. 미술품은 사치품으로 간주되었고 ‘일반 곡물이나 철기’보다 더 높은 세금이 붙는 경우도 있었다. 중세 이탈리아 도시국가(피렌체, 베네치아)는 회화·조각·직물·공예품 등 예술품을 수·출입할 때 각각 길드 세(guild dues)와 관세를 따로 부과했다. 당대에 유명했던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예술 후원자였지만 동시에 금융가로서 예술품을 해외에서 들여올 때 관세가 얼마나 높았으면 세금을 면제받거나 낮추는 특권을 요구했을 정도다.
관세를 부과하는 관리와 근심하는 작가들, Dr. COB, 2025 [그림=이홍석]
17~18세기 절대왕정 시대, 근대 유럽의 프랑스와 영국은 미술품을 포함한 사치품에 특별세를 부과했다. 루이 14세 시절, 해외에서 수입된 이탈리아 회화와 조각은 ‘국가 재정 확보’와 ‘국내 장인 보호’를 이유로 높은 관세가 붙었고, 이는 사실상 예술품을 통한 문화 권력의 통제를 의미했다. 19세기 미국은 독립 후 자국 미술시장이 취약했기 때문에 유럽 예술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20세기 초 부유한 컬렉터(금융 재벌 JP 모건, 철강산업 헨리 프릭)들이 등장했고 그들의 압력으로 ‘100년 이상 된 예술품은 면세’라는 규정이 도입되어, 이는 오늘날 미국 박물관에 유럽 명화가 풍부하게 들어온 배경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대부분 국가에서 고미술품(antique, 100년 이상) 은 관세 면세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현대 미술품, 조각, 판화, 사진 등은 여전히 관세 대상이며, 국가별 세율은 제각각 다르다. 중국은 해외 미술품에 6~17%의 관세를 부과, 미국은 일반적으로 무관세지만 특정 무역분쟁 상황에서 언제든지 미술품에도 보복 관세를 적용할 수 있다. 또한 자금세탁방지 규제와 결합하여 미술품은 고가의 이동 자산이기 때문에 최근에는 관세보다는 수입 신고, 원산지 증명, 자금 추적 규제가 더 강화되는 추세이다. EU는 미술품 거래 시 관세와 더불어 AML(자금세탁방지·Anti-Money Laundering) 규정을 적용하고 있어, 단순한 무역 품목이 아니라 금융자산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은 미술품 수출은 규제가 비교적 적고, 1945년 이후 제작된 작품의 해외 반출 규제도 완화되었다. 원작 미술품(회화, 조각 등) 및 'unique artwork'로 분류되는 경우, 수입 관세는 거의 면제된다. 생존 작가의 작품이나 6천만 원(약 4만 3천 달러) 미만의 미술품에는 세금이 면제되거나 매우 낮게 적용된다. 이 기준을 초과하는 고가 작품에는 22%의 양도소득세가 제한적으로 부과될 수 있다. 박람회, 전시 목적으로 반입·반출되는 미술품은 역시 관세가 면제된다. 디자인 가구나 사치품(보석 등)이 결합한 미술품에는 별도의 소비세 20%가 부과될 수 있다.
• 트럼프 관세가 미술시장에 드리울 그림자
만약 미·중 갈등이 심화하여 현대 미술품에도 보복 관세가 적용된다면, 세계 경매시장(뉴욕·런던·홍콩)의 흐름이 뒤틀릴 수 있다. 중국 컬렉터들은 서구와 미국의 작품을 들여오기가 비싸질 것이며, 중국 내 자국 작가들 작품의 수요가 인위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세계 미술시장에서의 큰손인 중국 컬렉터들이 크리스티와 소더비 그리고 바젤과 같은 대형 미술시장에서 사라질 것이다.
한편으로는 코로나 팬데믹 때에 반짝 등장했다가 시들해진 NFT 시장을 주목해 볼 일이다. 물리적 국경과 통관 절차가 없는 디지털 아트(NFT)는 관세 적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이는 관세 제도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예술품이 디지털로 이동하는 속도를 더 가속화시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또한, 특정 국가가 미술품 수출입에 관세나 규제를 걸면, 이는 단순한 세금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차단(cultural sanction)으로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서방 갈등 시 러시아 작품의 이동이 제한되었듯, 관세 정책이 예술 외교에도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다.
미술시장에서의 관세는 단순한 세금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로마 시대에는 사치품 과세, 르네상스에는 문화 권력 통제, 근대에는 보호무역의 무기, 그리고 오늘날에는 금융·외교적 수단으로 진화해 왔다. 21세기의 관세는 미술시장에서 여전히 투자 흐름, 경매 지형, 국가 간 문화 영향력을 뒤흔드는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따라서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단순히 작품의 예술적 가치만이 아니라, 관세·무역 정책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까지 읽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제2, 제3의 ‘케데헌’은 지속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일반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관세에 의한 뒤틀림 문제는 미술시장보다 더 광범위하게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트럼프의 과도한 관세와 3,500억 달러의 투자 압박에서 이를 거부하거나 만일 보복 관세로 대응할 경우 한·미 경제 갈등은 문화 전반으로 번질 우려도 있다. 정부 차원의 압력으로 미국이 한국산 문화 콘텐츠에 세금·규제(저작권, 플랫폼, 유통)를 강화할 수 있다. 민간 여론을 의도적으로 악화시키고 정치적 갈등을 문화 콘텐츠로 옮겨 ‘K-pop 불매’ 같은 소비자 불매운동과 같은 움직임을 발생시킬 수 있다.(중국에서 사드 갈등 당시 한국 드라마·가수 차단 사례를 떠올려 본다면) 아울러 미국 내 한국 콘텐츠 배급사나 플랫폼이 정치적 부담을 우려해 투자·유통의 규모를 줄일 수도 있다.
예측할 수 있는 피해는 케이팝의 경우 미국이 최대 소비처 중 하나인데, 미국 음반사, 공연 기획사의 협력이 위축되어 투어·공연 일정이 축소되거나 취소될 수 있고, 트럼프 지지층 내 ‘미국 우선주의’ 정서가 케이팝을 외국 문화의 침투로 규정할 가능성도 있다. 케이드라마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 글로벌 OTT가 한국 드라마에 대규모 투자 중이지만, 그 규모가 위축되거나 제작이 중단될 수 있다. 한국 제작사들에 직격탄으로 돌아올 것이다. 케이푸드 역시 식품 수입 관세 인상 가능성이 높아서 인기를 끌고있는 김치, 라면, 김밥, 소스류 등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미국 내의 소비가 위축될 것이다. 게임·웹툰 그리고 ‘케데헌(K-pop Demon Hunters)’과 같은 애니메이션과 크로스오버 콘텐츠들은 미국 유통망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투자나 개봉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강대국의 약탈적 관세 전쟁에 직면하여 일정한 경제적 양보를 통해 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문화 교류가 오히려 동맹의 상징으로 더 강조될 수 있는 길을 찾는다는 것, 쉬워 보이는 일이 아닐 것이다. 닥쳐올 일들에 대응 전략을 모색하여야 한다. 한국 정부와 민간은 힘을 모아 ‘문화는 정치의 장벽을 넘어서는 가치’라는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확산시켜야 하고, 동시에 미국 중심의 한류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동남아·중동·남미 시장을 강화해야 한다. 민간외교 차원에서 제작사나 문화 종사자들이 미국 내 팬덤과 직거래 라인을 만드는 것도 방안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문화산업의 흥망을 해외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한국 내 OTT·음악·게임 플랫폼의 경쟁력을 강화해서 그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경제적 압박은 언제든 문화 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트럼프의 과도한 관세와 투자 요구가 단순히 무역 이슈로 끝나지 않고, 한국 문화예술 - 특히 K-pop, K-drama, K-food - 까지 불똥이 튀게 된다면, 한류는 ‘글로벌 사랑받는 브랜드’에서 ‘정치적 희생양’으로 전락할 수 있다.
• 백범 김구의 문화강국 – 전 인류의 행복이 돌연 한국의 관세 대응 행보에 달렸다면
한국 문화예술은 지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더 이상 놀라울 일도 아니게 되었다. 케이팝은 빌보드 차트를 점령했고, 케이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가정에 스며들었으며, 케이푸드는 글로벌 마트의 선반을 채우고 있다. 한국의 문화는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닌 세계 문화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 - 백범 김구 <나의 소원> 中
그러나 이 빛나는 성취도 국제정치의 거센 파도 앞에서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하며 다시금 ‘관세 무기화’를 들고나왔다. 그는 이미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동맹국에까지 부과하며 동맹을 ‘경제적 거래 관계’로 환원한 전례가 있다. 최근 거론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한국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한 압박에 가깝다. 만일 한국이 이 요구를 거부하거나 보복 관세로 맞선다면, 그 불똥이 문화 분야로까지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적 갈등은 곧 문화적 마찰로 이어진다. 중국의 사드 보복 당시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이 중국 방송과 무대에서 사라진 것은 뼈아픈 교훈이다. 같은 일이 미국에서 재현된다면 어떨까. 미국 음반사와 공연 기획사가 K-pop 아티스트와 협력을 꺼리고,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가 한국 드라마 투자를 줄이며, 한국 식품에 고율의 수입 관세가 매겨져 케이푸드가 ‘비싼 사치품’으로 전락할 수 있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한류는 순식간에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한류가 가진 ‘소프트 파워’의 본질적 성격이다. 음악과 드라마, 음식은 단순한 상품을 넘어 한국의 이미지와 가치, 세계 시민과의 공감대 그 자체다. 한국이 이루어 낸 높은 문화의 힘이, 이 국민적 자산이 정치적 갈등에 휘말려 흔들린다면, 그 피해는 단순한 수출 감소가 아니라 한국 문화 브랜드 전체의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고 세계 강대국이며 한때 동맹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미국의 불의한 겁박에 굴복하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세계사에 있어 엎어지든 깨지든 5천 년의 역사를 지키고 현대국가로 존재하는 나라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보복 관세와 같은 맞대응을 피하기 어렵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문화와 정치의 경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는 외교 무대에서 “문화는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라는 원칙을 강조해야 하며, 기업과 창작자들은 미국 의존도를 낮추고 유럽·동남아·중동·남미로의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 동시에 K-pop 팬덤과 글로벌 시청자와의 직접 소통을 강화해 정치적 갈등을 초월하는 범인류적 지지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
한류는 한국 경제와 외교의 보이지 않는 방패이자,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나게 하는 얼굴이다. 그러나 관세 전쟁과 투자 압박의 불똥이 이 얼굴에 그을음을 남기게 해서는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라, 문화의 힘을 지키려는 전략적 외교와 산업적 자립이다. 한류가 정치적 희생양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한 세계에서 한국의 가치를 지탱하는 진정한 힘으로 남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마저도 힘겨워하는 민주주의를 몇 번이라도 지켜내고 기필코 높은 문화의 힘을 지닌 빛나는 아시아의 국가 한국을 지금 전 세계는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한국의 합리적 사고와 선택 그리고 집중이 동맹국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무도한 관세 폭탄에 시달리는 세계를 이성적 판단으로 이끌 수 있다. 한국은 더 이상 작은 국가가 아니며 세계 10위(2025년 12위 추정)의 경제 대국이자 세계 5위의 군사 강국이다.
21세기 한국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모든 인류의 꿈이고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세계를 향한 한국 국민의 선의를 임기 3년을 남긴 트럼프 관세 따위가 억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맹의 신의를 저버린 미국이 마주할 미래는 적어도 그들에게 지성이 남아있다면 부끄러움뿐일 것이다. 높은 문화의 힘과 합리적 이성을 갖춘 대한민국, 이제 세계의 질서는 그런 국가들과 함께 다시 개편되어야 한다.
글 · 그림 이홍석,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