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석 작가, 크리에이터 [사진=더코리아저널]
[특별기고 이홍석] [특집] 관세, 대약탈의 시대 1부
- 고대의 통행세에서 21세기 무역 무기화까지, 역사·지역·산업을 넘나드는 관세의 그림자
관세(tariff)는 인류 무역의 시작과 함께 태어났고, 시대에 따라 ‘국가 재정의 기초’이자 ‘산업 보호의 도구’, 때로는 ‘제국의 약탈적 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오늘날 패권주의의 재등장과 국가 간 갈등 속 관세로 인한 혼돈의 장은 단순한 수출입 과세를 넘어 문화·예술·소프트 파워까지 흔들며 정치·경제적 전쟁에 불을 붙이며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본지는 관세의 기원과 동아시아 특수사례, 제국·식민지 시기의 악용, 현대의 정책·논쟁(특히 미국의 관세 정치), 미술시장과 한류(케이팝·케이드라마·케이푸드 등)에 미칠 파급까지, 가능한 한 빠짐없이 살펴보고자 한다.
• 서양 관세의 기원 – 성문을 지나는 통행료에서 시작된 제도
관세의 역사는 인류가 국경과 교역을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2000년경, 유프라테스강과 나일강을 따라서 오가던 상인들은 국경 도시의 성문을 지날 때 일정한 조세를 납부해야 했다. 이 관세는 단순히 왕실 재정을 채우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타국 상품의 유입을 관리하고 상업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원시적 정책이었다. 이후 로마 제국은 국경을 따라 ‘포르토리아(portoria, 항만세)’라 불린 일종의 관세를 매겨 국가 재정을 유지했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봉건 영주들이 다리나 강의 교역로를 통과하는 상인들에게 직접 세금을 부과했다.
결국 관세는 “국가 권력과 교역의 경계선”에서 태어난 제도라 할 수 있다. 중세·근대를 거치며 관세는 점차 복잡한 보호무역의 수단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관세는 ‘세금’이자 ‘무역 규율’의 초석으로 기능해 왔다.
• 동아시아의 관세 - 항구·관문에서 제도화된 무역 관리
동아시아에서는 바다와 육로를 통해 교역이 발달하면서 관세·항구 관리 체제가 일찍이 정비되었다. 중국은 춘추전국 시대에 국경세가 처음 제도화되었고, 한나라는 소금과 철 전매제를 통해 관세와 유사한 독점적 세제를 운영했으며, 실크로드를 통한 출·입국세로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이후, 당·송을 거치며 관세 행정의 제도화가 본격화되었다. 특히 광저우 등 주요 항구에 설치된 ‘시박사(市舶司)’는 외국선과 무역을 직접 통제·관리하고 세금을 징수하는 관청으로 기능해 청대(淸代)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인도·중동과의 해상무역을 관리했다. 이는 동아시아 해상무역 질서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한국은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에 바다와 육로를 통한 교역이 활발했는데, 특히 중국과 일본, 만주 일대와의 무역에서 국경세·항구세를 부과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신라가 일본 사신을 맞이하면서 특정 항구를 통한 교역만 허용하였고, 그 과정에서 조공(朝貢)을 거둔 기록이 남아있다. 넓은 의미에서 조공을 해석하자면 이는 무역 통제와 동시에 관세의 성격을 지닌 제도였다. 통일신라와 발해는 당나라와의 교역에서 국가 주도의 무역 관리를 강화했고, 사무역을 금지하고 공식 관문을 통해서만 교역하도록 했다. 이때 징수된 세금은 일종의 통관세로 볼 수 있다. 발해 또한 당과 일본과의 교역에서 상인들에게 세금을 부과했으며, 이것이 국가 재정의 중요한 일부를 차지했다.
고려는 송나라, 요나라, 일본과 무역을 했는데, 해상 교역로에서 항구세, 시장세를 부과했다. 개경과 벽란도는 국제 무역항으로 유명했으며, 이곳을 통해 들어온 외국 상인들에게 입항세와 거래세를 징수했다. 조선은 명나라와의 조공·책봉 체제 속에서 무역이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공식적으로 교역 물품을 들여오고 세금을 부과했다. 대외 무역이 엄격히 제한되었지만, ‘왜관(倭館)’을 통해 이루어진 일본과의 교역에서도 관세 성격의 무역 통제 비용이 부과되었다. 1876년 일본과 체결된 강화도 조약에서 조선은 부산, 원산, 인천 등 세 항구를 개항하며 일본이 조선에 요구한 무관세를 수용했다. 그 결과 한동안 일본 상인들이 무관세의 혜택을 누리며 한반도의 상권을 장악해 나갔다. 조선은 뒤늦게라도 무관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1883년 일본과 ‘조일통상장정’을 체결하면서 다시 관세를 부과하였다.
일본은 아스카·나라 시대에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했는데,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관문세·시장세 제도를 도입했다. 헤이안 시대에는 해상무역이 활발해지면서 항구를 통한 교역에서 통행세와 입항세를 징수했다. 사찰이나 지방 영주가 독자적으로 세금을 걷는 경우도 많았는데, 이는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했음을 보여준다.
정리하면, 한국을 포함한 고대 아시아 국가들의 관세는 국경과 항구를 통과하는 교역 관리에서 시작되었으며, 국가 재정 확보와 무역 통제라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녔었다. 특히 중국 당나라의 시박사 제도는 한국과 일본의 무역 관리 방식에 영향을 주어, 동아시아 전체 관세 제도의 기초를 제공했다.
• 관세와 제국주의 - ‘불평등 조약’과 식민지적 약탈
근대 제국주의 시대, 관세는 노골적인 경제적 지배 수단으로 악용되었다. 19세기 제국들은 식민지의 산업을 억압하고 본국 상품의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관세·무역 규칙을 설계했다. 청나라가 ‘1·2차 아편전쟁(1839~1860)’ 이후 무려 여섯 차례나 근대 열강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은-난징1842(영국), 후먼1843(영국), 왕샤1844(미국), 황푸1844(프랑스), 텐진1858(영·미·프·러시아), 베이징1860(영·프·러시아)-관세 자주권과 항구 통제권을 빼앗겼다는 점에서 경제적 주권 상실을 의미했다. 심지어 영토주권과 사법주권까지 심각하게 침해되었다.
한편, 영국은 인도 등에 대해 관세·무역 규제로 현지 직물 산업을 고사시키고 자국 제조업을 보호·확장했던 역사적 사례가 있다. 영국은 인도산 면직물이 영국 시장에서 자국의 면직물 산업과 경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업혁명 이후 인도산 면직물에 70~8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다가 최고 100%까지 이르렀다. 반면, 영국은 자국에서 기계화로 인해 대량 생산된 값싼 면직물을 인도에 쏟아부어 인도의 내수시장까지 장악하게 했다. 이는 인도의 전통적인 면직물 수공업의 몰락을 가져왔다. 심지어 일부라고는 하지만 인도의 숙련된 면직물 직공들의 손가락이나 손목을 잘라 면직물 생산을 방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식민지 경쟁으로 약탈당하던 아프리카는 더욱 심각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를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조약들이 체결되었다. 이는 당시 아프리카 국가들의 주권을 침해하고 경제적 착취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신들의 관세 결정권을 포기하고 유럽 국가들의 관세 정책에 종속되도록 강제하는 조약들이 존재했으며, 이러한 조약들은 아프리카 경제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었다. 현재 43개 당사국과 11개의 다른 서명국이 있는 ‘아프리카 대륙자유무역지대(African Continental Free Trade Area, AfCFTA)’와 같이, 아프리카 국가들 스스로 경제 통합을 이루고 관세 장벽을 철폐하려는 노력은 이러한 과거의 불평등한 유산을 극복하고 자립적인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중요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관세는 이처럼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오만하고 악의적인 제국적 권력의 도구로 역사에 종종 등장하기도 했다. 과거 관세는 합리적 세금이 아니라, 식민지 주민들의 삶을 옭아매는 경제적 사슬이었다. 근대화에 앞섰던 제국은 총칼로 영토를 빼앗고, 관세로 시장을 약탈했다. 과거에서 현재를 배울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 현대국가의 관세 - 보호인가, 무기인가
20세기 초중반의 고관세 시대, 1930년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보호무역의 위험성을 경고했었다. 현재의 트럼프 관세를 이해하기 위해선 95년 전에 미국이 만든 이 법안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당시 법안은 미국의 보호무역 조치로, 미국 농민과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2만여 개 품목에 대한 수입 관세를 20%까지 대폭 인상한 사건이었다. 대공황 기간 중 국내 산업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제정되었으나, 다른 국가들이 보복 관세로 맞대응하면서 국제 무역이 붕괴하였고, 이는 세계 무역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져 오히려 경제 침체의 심각성만을 더욱 가중시켰다. 세계 무역은 향후 5년간 수출입이 최대 65%까지 급감했으며 경제학자들은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대공황의 장기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널리 믿고 있다. 이 법안은 결국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으며 1932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큰 승리와 스무트·홀리 양측의 패배로 이어졌다. 이런 보호주의적 무역 정책이 무역 전쟁을 통해 더 깊은 경기 침체를 포함한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을 위해 다자간 국제 협력과 자유 무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이후 1995년 다자무역 체제를 지원하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등장하면서 국가 간의 관세는 점차 규범 속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일부 국가들은 관세를 중요한 정책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WTO는 공산품뿐만 아니라 농산물, 서비스 시장 등 무역의 전 분야를 포괄하여 개방을 강조하며 회원국 간의 통상 분쟁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사법적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특정 지역 또는 특정 국가 간의 FTA와 달리 다자간 무역 협상을 전제로 하며 전 세계 무역 규범을 형성하고 확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한국은 1995년 WTO의 출범과 함께 회원국이 되었다.
그러나 21세기 관세의 방향은 다시 보호무역주의의 부활과 함께 전 세계적인 무역 전쟁의 양상을 띠며,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관세 분쟁이 그 핵심에 놓여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를 시작으로 2020년대에는 중국, 캐나다, 브라질, 인도 등 여러 국가가 이에 맞서면서 관세는 주요 경제적, 정치적 갈등의 도구가 되고 말았다. 보호무역주의의 부활은 21세기 초반에는 개발도상국에서 대량 생산된 저렴한 외국산 제품의 수요 증가와 함께, 이를 막기 위한 관세 장벽이 세계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에서 등장했다. 2018년,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기술 문제와 희토류 수출 제한 등으로 확대되며 21세기 관세 분쟁에 신호탄을 던졌다. 2020년대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멕시코 등에도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 등의 보복 관세 부과로 인해 전 세계적인 '무역 전쟁(tariff war)'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21세기 보호무역주의와 관세 전쟁이 1930년대 대공황을 초래했던 ‘스무트-홀리 관세법’과 같은 역사적 폐해를 재현할 수 있다는 경고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무시한 세계 무역 질서엔 이미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과 달리, 현대국가의 재정 수입에서 관세의 비중은 감소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 산업 보호 및 무역 갈등의 주요 쟁점으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다. 현대의 복잡하게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에서 고율의 관세 부과 시 수입 부품에 의존하는 국내 제조업의 대다수가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관세는 전 세계 무역과 생산 체계를 교란하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적 관세의 특징은 점차 다기능화되어 재정·산업 보호뿐만 아니라 외교·전략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공급망 영향력에서 글로벌 가치사슬에 묶여 특정 품목 관세의 증가는 연쇄적인 비용 상승과 생산 차질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또한 비관세 장벽과 결합하여 정치적 규제, 안보 주장, 수입 절차 강화 등 실질적 교역 장벽을 만들기도 한다. (이 점은 최근 미·중 분쟁과 미국의 일방적 관세 조치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관세로 동맹을 흔드는 트럼프, Dr. COB, 2025 [그림=이홍석]
“관세는 고대 도시의 성문에서 시작해, 아시아의 항구에서 체계화되었고, 제국주의 식민지에서 약탈의 도구가 되었으며, 오늘날 세계 경제에서 또다시 불행하게도 정치적 무기가 되었다. 자국 보호의 이름을 빌린 관세는, 언제든 약탈로 돌변할 수 있다. 트럼프는 미국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약탈당했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정작 그 약탈자가 누구일지 역사에 바로 기록될 것이다.
<관세, 대약탈의 시대>라는 이번 칼럼의 제목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관세는 여전히 문명의 가장 오래된 세금이자, 가장 현대적인 전쟁 무기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자국만을 위한 무분별한 관세의 남용이 아니라, 공정한 교역 질서와 국제 협력을 통해 인류가 그런 야만적 약탈의 시대를 넘어서도록 만드는 일이다.”
• 미국의 관세 정치 - 트럼프와 국제적 파장
도널드 트럼프 전·현직 행정부는 ‘철강·알루미늄 25%·10% 부과(2018)’ 등 고율 관세를 안보 명목(Section 232)을 들어 시행했고, 이후 WTO 분쟁·상호 보복을 촉발했다. 이런 조치는 동맹국과의 관계 긴장, 글로벌 공급망 비용 상승, 그리고 일부 국내 지류 산업의 피해를 낳았다는 평가다. 최근(2025년) 재차 고율 관세를 예고·단행한 사례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웠다. 국제기구와 무역 상대국들은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관세 권한의 확대에 대해 법적·정치적으로 반발해 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관세는 종종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남용되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은 식민지에 차별적 관세를 부과하여 본국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영국은 인도에서 면직물 공업을 고사시킨 뒤, 자국의 산업 제품을 강제로 수입하게 했다. ‘관세’는 식민지 사람들에게 단순한 세금이 아니라, 경제적 족쇄이자 정치적 예속의 상징이었다. 오늘날 트럼프식 ‘폭거의 관세’는, 비록 총칼 대신 법령과 세율을 앞세웠을 뿐, 본질적으로는 과거의 ‘제국주의’와 닮아있다. 동맹국조차도 잠재적 식민지처럼 다루는 태도는 결국 국가 간 신뢰를 허물고, 국제 질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최근, 한국의 기업이 조지아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현지 공장을 설립하며 한국의 우수한 기술 인력들을 투입해 공장이 완성 단계에 있었으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민국을 내세워 한국 기술자 317명을 불법체포하고 강제 구금했다. ESTA(전자여행허가제), B1·B2(사업·관광), EDA(취업허가) 소유자까지 가리지 않고 체포하여 전원 잡아 가뒀다. 심지어 임산부인 기술자까지 체포하여 열악한 수용소에 가두는 야만을 드러냈다.
돌아온 한국 기술자들의 증언에 따르자면 열악한 환경과 처우는 말할 것도 없고 인종차별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 세계가 이번 조지아에 파견되었던 한국 기술자들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악의적인 수법을 지켜보았다. 이민국과 상무부가 서로 엇박자가 났다거나 뒤늦게 한국 기술자들이 현지에 남기를 바란다거나 다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는 그들의 여론몰이는 어쩐지 악어의 눈물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 강력범죄자나 노예처럼 쇠사슬에 묶여 끌려갔던 한국의 기술자들에게도 그를 지켜본 대한민국에도 사과하지 않았다. 마치 대다수의 세계를 잠재적 식민지로 대하듯 그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그들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민주적이라 할 수 없고 세계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질서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의하여 살펴봐야 한다.
결국 미국에 대한 투자의 불확실성은 나날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이면 합의가 있었는지 알 수는 없겠지만 성급하게 트럼프식 불공정한 관세 협박에 5,500억 달러(약 767조 원)를 현금으로 투자하겠다고 서명하고 발을 뺄 수도 없게 되어버린 일본은 지금 난감한 상황이다. 브라질과 인도는 트럼프의 고율 관세에 여전히 굽히지 않고 있다. 이 두 국가의 인구만 합쳐도 16억 2천6백만 명 정도이며 2025년 2월 기준 세계 인구 약 82억의 20%에 해당한다. 트럼프 관세에 맞서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의 인구를 합치면 2억 명에 가깝고 14억에 이르는 중국도 있다. 트럼프에겐 놀랍게도 그저 세계가 전용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을 위해 잘 정비된 골프장과 같은 놀이터인 모양이다. 1930년대 경제 대공황에서 미국이 치렀던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뼈아픈 폐해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
역사는 추억이 아니다. 역사는 ‘순환하는 현재’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역사는 그것이 아무리 어려운 것이라도 바로잡아야 하건만, 지도자들이란 존재가 그 잘못된 역사를 답습하고 있다는 것은 동서양을 넘어 참으로 위태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 한국에 던져진 약탈적 제안 - 국민적 합의 필요
트럼프가 FTA 한·미 협정도 무시하고, 한국에 요구한 25% 관세와 3,500억 달러(약 486조 원)의 투자 금액, 그리고 최근 조지아주에서 한국 기술자들이 대거 불법 체포·구금된 사태는 한국에 매우 복합적인 외교 및 경제적 도전을 던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산 자동차·반도체 등에 15~25%의 고율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압박하며, 이를 완화하는 조건으로 3,50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내 직접 투자와 추가 정책적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반도체와 의약품에 더 큰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며 연일 세계를 상대로 미국의 흥망을 시험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현금성 투자 요구는 한국 경제에 심각한 유동성 압박과 금융 시스템 불안,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와 같은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가 요구한 투자액은 한국 외환보유고의 84%에 달하는 규모이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거의 다 내놓으라는 것이다. 만일 이로 인해 한국이 다시 외환위기에 빠지면 기업들이 IMF 시절처럼 줄도산하게 될 것이고 미국은 이것을 헐값에 먹을 작정이라는 한탄이 주식시장에 파다하다. 차라리 25% 관세를 맞고 트럼프 남은 임기 3년을 버티자는 이야기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오죽하면 이것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너나’ 할 것 없는 분위기인 모양이다.
현재 미국 측은 투자금의 사용처와 수익 배분 방식까지 사실상 미국에 주도권을 넘기라는 입장이며, 한국 정부는 최소한의 경제적 합리성과 위험관리, 보증 및 수익 공유 구조에 관하여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국익이 먼저이고 조지아주에서 벌어진 한국 기술자들에 대한 모멸적 사태를 보면 동맹이라 자처하던 미국에 대한 괘씸한 감정이 앞서지만 그러나 이것은 냉정하게 풀어가야 하는 국제적 문제이다. 한국에선 대미 투자 대상을 미래 신산업, 한·미 협력 확대(조선, 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인프라)로 장기 이익 창출이 가능한 분야로 한정하며, 리스크 분산과 대외 신임도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 조건에 대한 국제적 공조-일본·EU 등 주요 동맹국과 공동 협상 구조를 마련해 미국 요구를 다자간 프레임으로 전환, 과도한 위험 요소를 상호 축소하는 방법도 모색할 것으로도 보인다. 미국에 한국의 장기적 투자와 기술 협력이 미국 경제와 ‘MAGA’ 프로젝트에 전략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한국 정부의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와 같은 아젠다 세팅(Agenda Setting)은 이미 상호 ‘윈윈’ 구조를 담고 있다. 더 이상 군함과 대형 선박을 제조할 기반과 기술이 없는 미국으로서도 거부하기 힘든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자국의 이익만 취하고자 한국의 부담을 과도하게 만든다면, 경제적 타당성 검토와 국민적 합의를 통한 부분적 수용 또는 단계적 투자안을 제안해 협상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위한 투명한 정보 공개와 사회적 토론의 확대도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이 무작정 한국의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믿었던 동맹국으로부터 선전포고를 받은 한국에선 이 당혹스러운 배신감과 ‘괘의’하게 새로운 세계 질서의 개편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충분히 거칠 시간마저도 그리 충분하지 않다.
한국의 대미 프로파간다는 제조업이 무너진 미국을 향해 한미 산업 협력에서 한국 기업·기술자들의 역할과 기여를 적극적으로 부각, 글로벌 협력의 본보기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고, 장기적 관점에서 외교·경제 네트워크 다변화(미국 중심에서 유럽·아시아 등 다자협력 강화) 및 위기 대응 시스템의 정비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하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전략적 협상, 다자간 연합, 국민적 신뢰 확보, 그리고 '상생'을 강조하는 외교 방향이 요구된다. 한국은 위기를 기회로 바꿀 지혜와 국제적 연대를 극대화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놓여있다.
글 · 그림 이홍석,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