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주 문예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만주 문예만보] 국립김해박물관 여름 음악회 <바다海로 가야加耶>
A Midsummer Night’s Concert at Gimhae National Museum, Sharing the Cultural Legacy of the Gaya Kingdom
이만주
한여름 밤의 꿈이었고 판타지였다. 국립김해박물관 야외 ‘용광로광장’에서 열린 한여름 밤의 콘서트 <바다로 가야>는 정겨웠다.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콘서트, 대중에게 다가가는 음악회였다.
이렇게 멋지고 즐거운 음악회는 고대 찬란했던 다문화 국가였던 가야, 그중에서도 김해를 중심으로 한 해양왕국 금관가야의 전통, 박물관을 참된 ‘커뮤니티 문화센터’로 이끄는 의식 있는 윤형원 관장, 포용성의 철학을 갖고 ‘서울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김희준 단장과 어떤 곡이든 수용, 소화하는 권주용 전임지휘자의 덕택이었다.
국립김해박물관은 2025년 특집전 <크리스탈(水晶) 가야(加耶)-선과 면, 빛으로 재해석한 가야의 보석>을 5월 20일에 시작하여 7월 31일까지 개최하는 중이다. 이번 음악회는 이 <크리스탈 가야> 전시회 도중인 7월 11일 밤에 열려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음악회는 매 레퍼토리마다 성악과 기악이 서울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음 소프라노 이지영이 넬라 판타지아(Nella Fantasia)를 불러 관객들을 한여름 밤의 환상 속으로 인도했다.
이번 음악회는 ‘바다’가 주제였다. 따라서 바다가 소재가 된 가곡들이 수 편 가창되었다. 그중에서도 가곡 <가고파> 완창을 들을 수 있었음은 뜻밖이었다. <가고파>는 이은상이 1932년에 발표한 시에 1933년 20세의 김동진이 작곡한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으로 국민 애창곡이 되었다. <가고파>는 본시 10연으로 되어 있는 시인데 처음 4연까지만 작곡되어 불리어져 왔다. 김동진은 1973년 나머지 5연에서 10연까지를 연가곡으로 작곡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통 4연까지만 애창된다.
- 5연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달음질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 6연 생략
- 7연
처자들 어미 되고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워라 아까워
- 8, 9연 생략
- 10연 (마지막 연)
거기 아침은 오고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깨끗이도 깨끗이
10연까지의 ‘이은상’ 시가 정지용의 시 <향수>와는 또 다르게 아름다워 모국어에 대한 긍지를 느끼게 한다. 이 <가고파>의 완창을 김동원 테너로 들을 수 있었음은 그 밤의 특전이었다.
정상급 성악가인 테너 임철호, 소프라노 이명희도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선율의 국내외 가곡을 불러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 밤, 음악회의 특별한 이벤트는 ‘제임스 정’이 한국 대중가요, ‘김목경’ 작곡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팬플루트(panflute)로 취주한 애절한 연주였다. 클래식 음악회에서 생각지도 못한 대중가요의 등장과 팬플루트의 공연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팬플루티스트에 하모니시스트이기도 한 그는 이스라엘 민요 <하바 나길라(Havah Nagila)>를 하모니카로 연주해 연이어 인기를 독차지했다.
이렇게 관현악단이 대중가요를 연주할 정도로 서울오케스트라는 열려 있다. 서울오케스트라는 물론 클래식 음악 연주를 바탕으로 하지만 재즈, 발레, 탱고,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장르와의 접목을 통해서 ‘관현악단의 대중에게 다가가기’를 시도한다. 2010년에는 한국 전래동요의 편곡을 공모하여 연주할 정도로 다양한 실험도 하고 있다. 또한 티켓의 30%를 문화적 소외 계층에게 기부할 정도로 자선과 독지의 철학을 실행한다.
한여름 밤인데도 그날따라 맑고, 섭씨 26도의 날씨로 선선해 음악회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용광로광장’은 툭 터진 것도 아니고 외벽이 가까이 답답하게 둘러싸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야외 콘서트 장소로는 최적이다.
여기에는 애석한 사연이 서려 있다. 건축가 김수근의 뒤를 이어 1986년부터 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가 된 후, 수많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설계하며 특히 국립대구박물관, 경기도립박물관 등 한국의 중요 국공립박물관 설계에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던 장세양 건축가는 국립김해박물관을 설계한다. 하지만 그는 그의 마지막 건축 걸작이 된 국립김해박물관의 1998년 준공을 보지 못하고 과로로 인해, 설계를 마친 1996년 49세의 나이로 갑자기 타계했다. 1947년생이니 살아있었더라면 올해 78세로 아직 건강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고, 자기가 설계한 김해박물관의 '용광로광장'이 이렇게 멋지게 야외 콘서트 장소로 활용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리라.
<바다로 가야> 후속 행사로 이튿날, 전국에서 모인 일행 40여 명은 가곡 <가고파>의 진원지라는 마산 앞바다에 있는 돝섬(돼지섬)을 찾았다.
배를 타고 건너간 돝섬에서 우리는 다시 <가고파> 완창을 들을 수 있었다. 윤형원 관장, 그의 친구인 대구남성합창단의 김영규 님, 전 국립고궁박물관장 소재구 님. 세 테너는 돝섬의 황금돼지 조각상 앞에서 파바로티, 도밍고, 카레라스, 빅 테너 스리(Big Tenor Three) 못지않은 솜씨로 <가고파>를 10연까지 완창했다.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작은 섬이지만 일행은 정상까지 올라갔다. 돝섬에서 건너다보이는 마산의 외진 산에서 권해경이 부른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 단풍잎만 채곡채곡 떨어져 쌓여 있네 ~~~~~”의 가사로 되어 있는 가요 <산장의 여인>이 탄생했다고 한다.
나는 갑자기 <산장의 여인>이 부르고 싶어졌다. 자원봉사 관광안내인에게 <산장의 여인>을 부르겠다고 자청했다. 바다와 섬이 이루는 분위기 때문인지 본시 노래를 잘 부를 줄 모르는 나이지만 의외로 노래가 잘 되어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