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 의학 박사, 클래식 애호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민석 뮤직박스] 베토벤: 환상곡 G단조 op. 77

1 지친 면역세포에 ‘에너지 주사’를 놓다

물리학이 뉴턴 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전환되었듯, 암 치료에도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최근 폐암 치료에서 주목받는 연구 하나가 발표되었습니다. 중국 연구진이 지친 면역세포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미토콘드리아 이식'이라는 흥미로운 전략을 선보였습니다. 이 방법은 면역력을 회복시켜 종양을 더 효과적으로 공격할 수 있게 합니다.

폐암은 암 사망률 1위이고 그중 85%가 비소세포폐암입니다. 현재 표준 치료는 '시스플라틴'이라는 항암제입니다. 문제는 이 약이 암세포뿐 아니라 면역세포까지 지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종양은 교묘하게 면역세포의 미토콘드리아를 훔쳐 에너지를 빼앗고 살아남는 데 써먹습니다. 그래서, 항암제 치료는 한계가 있었고, 면역항암제도 모든 환자에게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연구팀은 심장세포에서 건강한 미토콘드리아를 추출해 폐암 조직에 이식했습니다. 미토콘드리아 이식만으로는 암세포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시스플라틴과 함께 사용하자 놀라운 변화가 관찰되었습니다. 항암제의 효과가 배로 올라갔고, 암세포의 성장이 억제되었으며, 면역세포는 다시 활력을 되찾았습니다. 암세포는 더 이상 '무산소 호흡'에 의존하지 못하고, 정상 세포처럼 산소 호흡을 하도록 유도되었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식된 미토콘드리아가 T세포와 NK세포의 기능을 끌어올렸다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되찾은 면역세포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고, 종양 내부로 깊숙이 침투했습니다. 이식된 미토콘드리아는 단순한 에너지 발전소가 아니라, 암세포를 무장해제시키고 면역세포를 재무장시켰습니다.

이 연구는 기존의 항암제 치료를 보완하고, 면역치료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시도입니다. 아직 동물실험 단계지만, 암의 ‘에너지 전략’을 바꾸는 접근법이 향후 다양한 암 치료에 확장될 전망입니다. 앞으로 미토콘드리아가 단지 세포 소기관이 아니라, 치료의 핵심 파트너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 베토벤: 환상곡 G단조 op. 77

오늘 들으실 곡은 베토벤이 1809년에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G단조 작품번호 77번입니다. 당시 베토벤은 오랜 시간 방랑 생활을 마치고 처음으로 자신만의 ‘집’을 꾸리고자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정착의 욕망과는 어울리지 않게 이 곡은 마치 즉흥연주처럼 자유롭고 예측할 수 없는 흐름으로 가득합니다. 이 곡은 영국의 출판업자 무치오 클레멘티의 의뢰로 작곡되었고 1810년 런던에서 처음 출판되었습니다.

환상곡이라는 제목답게 이 곡은 전통적인 형식보다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이어지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제자였던 체르니는 이 곡을 “뒤섞인 형식의 변주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실제로 이 곡은 8개의 조성과 3번의 박자 변화, 수많은 템포 변화를 거치며 자유롭게 전개됩니다.

곡의 초반은 급격한 스케일과 극적인 템포 변화로 시작합니다. G단조와 A♭장조 사이를 맴돌다가, B♭장조로 이어지면서 첫 번째 주제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주제도 곧 흩어지고, D단조의 아르페지오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소재가 등장합니다.

그 다음은 양손을 오가며 연주되는 깨어진 옥타브 패턴,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선 악몽 같은 구간입니다. 이후 A♭장조의 아다지오에서는 반복음 위로 화성이 변화하는 분위기 있는 선율이 등장하고, 프레스토 구간을 지나며 D장조의 활기찬 부분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부터는 주제와 반주가 동시에 진행되며, 음악의 긴장감이 점점 고조됩니다.

다시 아다지오 주제가 나타나고, 이윽고 반음 위인 B장조에서 곡의 마지막 섹션이 시작됩니다. 마지막 부분은 앞의 아다지오 주제를 연상케 하는 알레그레토로 시작되며, 보다 활동적인 움직임을 보입니다. 이어지는 급한 구간과 연습곡 같은 부분, 베이스에서 등장하는 주제, 그리고 마지막의 화려한 전개까지 - 모든 것이 예측 불가하게 흘러가다가 결국 B장조에서 조용히 곡을 마칩니다.

이 곡은 베토벤의 즉흥연주적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무대 위에서 영감을 따라 피아노를 치듯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 자리에서 펼쳐낸 듯한 느낌입니다. 고전적인 형식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흘러가는 이 곡을 통해 낭만주의의 문턱에 선 베토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루돌프 제르킨 (피아노)의 1970년 연주입니다. 행복하세요.

베토벤: 환상곡 G단조 op. 77

BEETHOVEN: Fantasia in G minor op. 77 9:45

김민석 올림

2025년 8월 5일 베토벤: 환상곡 G단조 op. 77

[사진=김민석]
[사진=김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