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학자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행복을 바라기 전에 행운을 바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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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인문 일지> 화두는 '운(運)', 더 나아가 '행운(幸運)'이다. '행복을 바라기 전에 행운을 바라자'는 주장에 눈길이 간 것이다. 윈스턴 처칠이 건배를 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누구에게도 건강이나 부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행운만을 빌 뿐입니다. 왜냐하면 타이타닉호에 탔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했고 부유했지만, 그들 중 운이 좋았던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 고위 임원은 9/11 테러에서 살아남았다. 그날 아들의 유치원 첫 등교일이라 데려다 주느라 회사에 늦었기 때문이다. 또 한 남성은 도넛을 사러 가는 차례였던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어느 여성은 알람이 울리지 않아 늦잠을 자는 바람에 살아남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뉴저지 교통 체증에 걸려 회사에 늦었다. 어떤 사람은 버스를 놓쳤고, 다른 이는 커피를 쏟아 옷을 갈아 입느라 늦었다.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아 못 간 사람도 있었고, 집에 전화 받으러 되돌아갔던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유난히 느리게 준비해서 지각했고, 어떤 남성은 택시를 잡지 못해 결국 회사에 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날 새 신발을 신고 출근하던 한 남성이 있었다. 신발이 불편해 발이 부었고, 그는 약국에 들러 밴드를 사기 위해 멈췄다. 그 잠깐의 정지가 바로 그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그 이야기들을 읽은 이후로, 나는 세상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차에 갇혀 길이 막힐 때, 엘리베이터를 놓쳤을 때, 뭔가를 깜빡하고 되돌아가야 할 때, 아침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춰서 믿어보려 한다. '이 지연이 결코 ‘실패'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신의 시간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정확히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다음에 우리가 아침이 엉망이 되어버릴 때, 아이들이 늦장을 부리고, 열쇠가 어디 갔는지 안 보이고, 빨간 불마다 걸려서 짜증이 날 때, 화를 내지 말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 그건 어쩌면 ‘변장의 행운’ 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힘든 일은 남 탓이 아닌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남의 탓이라고 생각하면 우산위의 눈도 무겁고,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등짐으로 짊어진 무쇠도 가볍다."(김난도) 남 탓을 하면 당장은 위로가 된다. 그러나 상황은 지속적으로 악화될 뿐이다. 내 몫이라고 생각하면 당장은 힘겨울 수 있다. 그러나 점진적으로 상황은 개선되고, 나는 더욱 더 강한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어떤 길을 갈 것인지 내가 결정한다.

행운은 눈이 멀지 안 했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을 찾아온다.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걷는 사람만이 나아갈 수 있는 이치와 같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행운이 찾아온다. 원하는 것도 인생의 목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행운은 그들에게서 아무 의도도 발견할 수 없기에 그들 곁을 지나쳐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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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에 감사하자. 나 스스로 행운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면 먼저 지금껏 내가 이룬 것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것에 감사해야 한다. 건강, 가정, 가족의 사랑, 자신의 재능과 기술에 고마워한다면, 불행에 괴로워하거나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포기하거나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에게 찾아오는 행운의 분명한 유형을 알게 되고 더 많은 행운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고 거기에 주력하게 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면 하루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심지어 타인의 배려를 종종 자신의 당연한 권리인 듯 여길까? 데일 카네기는 <<자기 관리론>>에서 “감사는 교양 있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자기 수행의 결실”이라고 정의하며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감사를 기대하지 않을 때 선물처럼 감사가 찾아오는 역설을 강조한다. 애타게 바라면 오히려 멀어지는 행복의 역설처럼. 감사함 역시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기억할 때라야 찾아온다. “나는 신발이 없어 우울했다. 거리에서 발이 없는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잃고 나서 후회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우리가 비범해지는 유일한 길은 매사에 감사하는 것이다. 박노해 시인의 시를 공유한다. "하늘은 나에게 사람들이 탐낼만한/그 어떤 것도 주지 않으셨지만/그 모든 씨앗이 담긴 삶을 다 주셨으니/무력한 사랑 하나 내게 주신 / 삶에 대한 감사를 바칩니다."

삶에 대한 감사/박노해

하늘은 나에게 영웅의 면모를 주지 않으셨다

그만한 키와 그만한 외모처럼

그만한 겸손을 지니고 살으라고

하늘은 나에게 고귀한 집안을 주지 않으셨다

힘없고 가난한 자의 존엄으로

세계의 약자들을 빛내며 살아가라고

하늘은 나에게 신통력을 주지 않으셨다

상처 받고 쓰러지고 깨어지면서

스스로 깨쳐가며 길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위대한 스승도 주지 않으셨다

노동하는 민초들 속에서 지혜를 구하고

최후까지 정진하는 배움의 사람이 되라고

하늘은 나에게 희생과 노력으로 이루어낸

내 작은 성취마저 허물어 버리셨다

낡은 것을 버리고 나날이 새로와지라고

하늘은 나에게 사람들이 탐낼만한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으셨지만

그 모든 씨앗이 담긴 삶을 다 주셨으니

무력한 사랑 하나 내게 주신

내 삶에 대한 감사를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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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읽지 못한 <산풍 고> 괘의 효사들을 읽고 공유한다. 이어지는 글은 블로그에서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우리마을대학협동조합'를 치시면, 그 곳의 출판부에서 볼 수 있다. 아니면, 나의 블로그 https://pakhanpyo.tistory.com 이나 https://blog.naver.com/pakhan-pyo 또는 https://pakhanpyo.blogspot.com 에 있다.

[사진=박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