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원 작가, 독서지도사 [사진=더코리아저널]


[변대원 독서일기] 깊어지세요. 하지만 좁아지진 마세요.

- 결국 깊이 체험한 것만 남는다.

돌아보면 조금이라도 깊이 몰두했던 일들만 남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더 노래를 좋아해서 깊이 빠져들어 들었던 음악들이 내 삶의 배경음악이 됩니다.

책을 좋아해 조금 더 깊이 빠져들어 읽었던 책들이 내 삶의 뼈대가 됩니다.

사람을 좋아해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간들이 삶의 가장 큰 자산이 됩니다.

어쩌면 인간은 늘 몰두할 곳을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에너지가 고갈되면 온통 무기력해지기도 하지만, 결국 저마다 몰두할 거리를 찾습니다.

누군가는 일에, 누군가는 사람에, 누군가는 돈에, 누군가는 종교에, 누군가는 취미에.

그리고 그렇게 깊이 몰두한 것들이 모여 '나'라는 모양이 만들어집니다.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나의 개성이란 그저 내가 타인에 비해 조금 더 집중했던 시간들의 합이 아닐까요.

하여 이왕이면 무얼 해도 가급적 조금 더 깊이 탐구하려 애쓰는 것이 현명하다 믿습니다.

다만, 깊이 있게 몰두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기 쉽습니다.

망치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이는 것처럼.

나만의 깊은 우물에 빠져 동그란 천장만이 하늘의 전부인 줄 알게 됩니다.

깊어지되, 좁아지지 않는 것.

그것이 삶의 지혜가 아닐까요.

독서강의를 할 때 천천히 읽는 방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빨리 읽는 방법부터 가르칩니다.

물론 한 권씩 천천히 깊이 몰두하는 경험이 정말 내가 좋아하는 독서지만, 자칫 그렇게 좁은 분야만 파고들다 보면 지식의 함정 속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선 눈을 들어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지식의 바다를 마음에 담는 게 순서입니다.

그래서 다 읽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부담없이 더 빨리 읽어도 된다고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대충 읽다 보면 오히려 운명적인 책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더 많은 책을 거쳐가다보면 어느 순간 필연적으로 도저히 대충 읽고 넘길 수 없는 문장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 말의 의미를 부정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정말입니다.

그 때가 진정한 독서가 시작되는 첫 순간일지 모릅니다.

나무 한 그루씩만 바라보면 숲을 보지 못합니다.

지금 내가 들어선 숲이 어떤 숲인지, 이 길이 어디로 연결되는 길인지 먼저 알고 난 후에 비로소 지금 내 옆에 있는 울창한 나무와 아름다운 꽃들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습니다.

목적지가 분명하고, 가는 길을 충분히 알면서 걸을 때는 여행이지만,

목적지도 없고, 지금 가는 길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 방랑이 되고 맙니다.

너무 세심하게 나무만 바라보다 길을 잃지 않길.

안목은 더 깊어지되 시야는 더 넓어지길.

[사진=변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