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코리아저널 김세준 기자] LG전자가 초저가 시장에 승부수를 던졌다. 7월 초 중국 스카이워스·오쿠마와 공동개발생산(JDM) 방식으로 제작한 60만원대 냉장고와 세탁기를 유럽 시장에 출시, 유럽 중저가 시장을 공략했다.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에 집중해 온 LG가 초저가 시장에 직접 진입한 것은 단순한 매출 확대가 아니라 글로벌 점유율 지형을 바꾸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보급형 수요 확대가 LG전자의 전략 전환을 이끌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2024년 보급형 제품 비중은 57%로 43%인 프리미엄 제품 비중을 넘어섰다. 유럽·동남아·남미 등 주요 신흥국에서는 100만원 이하 보급형 가전 연평균 성장률이 프리미엄 제품의 두 배 수준으로 나타났다.
JDM은 제조자개발생산(ODM)과 비교하면 품질 관리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리스크가 없는 것은 아니다. ODM은 생산업체가 설계부터 부품 조달까지 전 과정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발주사는 상표만 붙인다. 비용 절감에는 유리하지만, 설계 표준과 품질 유지가 어렵다.
반면 JDM은 발주사가 기획과 설계를 주도해 ODM보다 브랜드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다. 다만 생산 공정을 현지 업체에 맡기는 구조상 공정 표준 유지가 쉽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한 가전 업계 관계자는 “생산국의 품질 관리 수준에 따라 JDM의 성패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JDM은 비용 절감과 브랜드 관리 균형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LG전자의 JDM 방식 선택 역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면서도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려는 절충안으로 관측된다. 기획과 브랜드, 사후관리(AS)는 LG전자가 직접 담당. 생산은 중국 업체에 맡기는 구조로 기존 자체 생산 대비 30~40% 수준으로 중국 초저가 모델과 정면 승부가 가능하다.
LG 관계자는 “JDM 제품도 LG전자의 품질 관리와 사후 서비스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브랜드 신뢰를 유지할 것”이라며 “단순한 저가 시장 진입이 아니라 신흥국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쌓고, 프리미엄으로 소비자를 전환하는 업셀링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경쟁사 전략과 비교해도 LG전자의 선택은 파격적이다. 하이얼과 미디어는 전체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JDM·ODM으로 소화하며 가격 경쟁력을 높였고, 삼성전자는 자사 생산 고효율·스마트 중심의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LG전자가 프리미엄과 보급형을 동시에 공략하는 투트랙 전략을 시도한 것은 상대적으로 이례적 ‘중간 지대’ 전략으로 분석된다.
투트랙 전략은 기회인 동시에 새로운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공급망 리스크도 변수다. 생산을 중국 업체에 맡기는 구조상 미국·유럽의 공급망 규제 강화나 중국 내 환경·노동 규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탄소배출 규제 강화와 탄소국경조정제(CBAM) 확대를 논의 중인 점도 잠재적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기술 유출 우려도 나온다. 하이얼과 스카이워스는 과거 글로벌 브랜드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JDM 파트너로 참여하며 축적한 설계와 부품 조달 노하우를 바탕으로 독자 브랜드 경쟁력을 강화해 왔다. 스카이워스는 LG디스플레이 OLED 패널 조립 경험을 통해 프리미엄 TV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디스플레이 기업 관계자는 “위탁 생산사가 설계와 공정 노하우를 흡수해 장기적으로 독립 경쟁자로 성장하는 ‘브랜드 독립 리스크’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초저가 라인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브랜드 가치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일본 전자기기 제조업체 도시바(Toshiba)는 2010년대 중반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 업체와 ODM·JDM 계약을 확대, 일부 저가형 가전의 경쟁력 저하와 브랜드 관리 한계가 지적되며 프리미엄 이미지가 약화됐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수익성도 과제로 지목된다. 업계에 따르면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 영업이익률은 평균 15~20%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JDM 제품은 한 자릿수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지 못하면 가격 경쟁에 매달리게 되고, 이는 중국 업체와 같은 저가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업계는 LG전자의 JDM 전략이 중장기적으로 기회가 더 클 것으로 본다. 신흥국에서 보급형 제품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확보한 뒤 프리미엄 라인으로 소비자를 전환하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번 JDM 전략 역시 단기 시도로 끝내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업계 관계자는 “LG가 이번 JDM 전략을 단기 실험이 아닌 구조적 전략으로 이어간다면 글로벌 점유율 구도에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보급형에서 브랜드 신뢰를 유지하며 성과를 입증할 때 프리미엄 시장 방어와 확대까지 동시에 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LG전자가 유럽 시장에서 JDM 성과를 입증한다면 투트랙 전략의 실효성이 확인될 것”이라며 “에어컨·건조기 등으로 적용 품목을 확대하고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 등으로 판매 지역까지 넓히면 투트랙 전략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