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때에 순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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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부여 여행에서 만난 책과 나뭇잎이다. 책의 제목은 <<발자국이 쌓여 길이 되었다>>이다. "시인 신동엽의 부여시대"라는 부제를 달고, 신동엽문학관이 2021년에 출간한 것이다. 우리는 문학관을 방문한 후, 우리는 근처에 있는 <만수산자연휴양림>을 찾았다. 거기서 숲 해설가가 소개한 비목나무를 만났다. 기념하기 위해, 나무 한 가지를 꺾어 왔다. 책 위에 올려놓고 찍은 사진이다.

이른 봄에 비목 나무는 새잎이 나오기 전에 생강나무를 닮은 연한 노란빛의 꽃이 잎 겨드랑이에서 피어난다. 작은 우산 모양의 산형 꽃차례로 피어나는 꽃에서 은근한 향이 곱게 묻어난다. 다음 사진과 같다.

[사진=박한표]

[사진=박한표]


한여름애는, 우리가 했던 것처럼, 산행 중에 새파란 잎을 따서 비비면 강하고 상큼한 향기가 물씬 풍겨 피로감도 덜어 준다. 가을의 샛노란 단풍에 초겨울에는 눈부시도록 새빨간 열매가 도드라지게 눈길을 끄는 화려하고 향기롭고 매력적인 나무다. 다른 이름으로는 보얀목, 백목이라고도 하는데 비목나무는 재질이 단단하여 돌처럼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텅 빈 하늘에 새빨간 열매가 매혹적으로 겨울을 맞이하는 비목나무다. 샛노란 단풍이 무르익어가는 잎새 사이로 자잘한 열매가 송알송알 드러나 보이다가 단풍이 지고 나면 새빨간 빛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열매가 드러난다. 비목나무를 처음 접하는 대부분 사람은 우리나라 전통 가곡 ‘비목(碑木)’을 연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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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 <비목>은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치열한 전투 중 떨어진 꽃잎처럼 숨진 이름 없는 병사의 무덤과 목비(木碑), 그것이 노래 속에 살아났다. 가사를 음미하며 이 노래를 들으면 당시 전쟁터의 모습이 그려진다. 가사 첫머리 초연(硝煙)은 '화학연기'란 뜻이다. '세속의 일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초연(超然)이 아니다. 그리고 '비목(碑木)'은 "죽은 이의 신원 따위를 새겨 무덤 앞에 세우는 나무로 만든 비(碑)"를 뜻한다. 비목은 보통 죽은 이의 무덤 앞에 세워 고인의 신상을 기록해 둔다. 하지만 작사자 한명희의 노랫말속에 나오는 비목은 6.25전쟁 당시 산화한 무명용사의 돌무덤 앞에 세워진 것으로 전사자에 대한 기록도 없다. 이 곳을 작사한 한명희(서울대 국악과 출신)는 1960년대 중반 ROTC 육군 소위로 수색중대 DMZ의 초소장으로 근무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잡초 우거진 곳에서 무명용사의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를 발견했다. 제대 후 TBC에서 PD로 근무하던 그는 자기 또래의 젊은이가 조국을 지키다 스러져간 걸 안타까이 여겨 노랫말을 지었고, 가까이 지내던 작곡가 장일남이 이 노랫말에 곡을 붙여 가곡 <비목>이 탄생하게 되었다.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에서 '초동(樵童)'은 '땔나무를 하는 아이'란 뜻이다. 전쟁으로 죽어간 젊은이도 두렵고 고독한 전쟁터에서 어린 시절 나무하러 함께 마을 뒷산에 오르내리던 고향 친구를 그리웠을 것이다. 죽어서도 그리움이 이끼가 되어 목비에 남아있을 만큼 말이다. 궁노루는 사향 노루로 노루의 울음이 인적 없는 어스름 달빛을 타고 산 전체를 감싸는 애잔한 느낌을 묘사하고 있다.

비목(碑木)/작사 : 한명희 작곡 : 장일남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세월로 이름모를

이름모를 비목(碑木)이여

먼 고향 초동(초동)친구 두고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되어 맺혔네

(간주)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척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되어 쌓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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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슬픔을 표현한 가곡 ‘비목(碑木)’의 단어는 ‘나무로 만든 비(碑)’란 뜻이다. 주로 중부 이남에 자라는 꽃도 곱고 향도 강한 비목나무와는 무관한 가곡이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이 맨 처음 ‘비목나무’를 접하면 가곡 ‘비목’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무슨 까닭으로 이 둘을 서로 연관 지어 생각할까를 곰곰 추리해본다. 우선 가곡의 노랫말이 뜻하는 것은 ‘나무로 만든 비(碑)’이므로 목비(木碑)가 되어야 했는데 ‘비목’이라 이름 붙였다. 게다가 비목나무가 한자어가 아닌 한글명인 탓에 한자어로는 비목(碑木)이 아닐까 여겼으리라 싶다. 비목나무라는 한글 기록이 나타난 것은 1920년대에서 1930년대 사이라 한다. 한자어를 그대로 쓴 것이라 하면 비목(碑木)에 또 ‘나무’를 덧붙여 ‘비목나무’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한국식물생태보감 2013>>에 의하면 비목나무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질이 단단하고 강건한 성질과 관련이 있어 비목(碑木)과 무관하지 않은 것도 같다고 한다. 우선 ‘가례집람도설(家禮輯覽圖說)’에 따르면 천자(天子)의 관을 하관(下棺)할 적에 사용하는 풍비(豊碑)에 이용되었던 재질이 단단한 막대기를 비목(碑木)이라 했는데, 여기에서 유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비목나무의 재질과 느낌이 말 그대로 비석(碑石)을 대신하는 십자가 등 나무 비(碑)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풍비의 비목처럼 단단한 정도가 돌과 같고, 나뭇결의 무늬도 수석(壽石)과 같아서 돌 비석을 대신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풍비의 비목이건, 비석 대신의 비목이건 간에 비목나무의 재질을 익히 알아 그에 걸맞은 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유래를 유추해볼 수 있다는 것이 ‘한국식물생태보감’의 설명이다. 박대문 칼럼니스트의 글에서 얻은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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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80대인 한명희(전 국립국악원장)는 <비목>이 아무에게나 불리워지는 것을 달가워 하지 않고 있다 한다. 다음은 그가 "<비목> 노래를 부르지 말았으면" 하고 선정한 사람들이다.

▪ 숱한 젊음의 희생 위에 호사를 누리면서도 순전히 제 잘난 탓으로 돌려 대는 한심한 사람

▪ 시퍼런 비수는 커녕 어이없는 우격다짐 말 한마디에도 소신마저 못 펴는 무기력인 인텔리

▪ 풀벌레 울어 대는 외로운 골짜기의 이름 없는 비목의 서러움을 모르는 사람

▪ 고향 땅 파도소리가 서러워 차라리 산화한 낭군의 무덤가에 외로운 망부석이 된 백 목련의 통한을 외면하는 사람

▪ 겉으로는 호국영령을 외쳐 대면서도 속으로는 사리사욕에만 눈이 먼 가련한 사람

▪ 국립묘지의 묘비를 얼싸안고 통곡하는 혈육의 정을 모르는 비정한 사람

▪ 숱한 싸움의 희생 아닌 것이 없는 순연한 청춘들의 부토 위에 살면서도 아직껏 호국영령 앞에 민주요, 정의요, 평화의 깃발을 한 번 바쳐보지 못한 이웃들

그는 위와 같은 사람들에게 <비목>을 부르지 말라고 부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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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는 어제에 이어 제17괘인 <택뢰 수>괘의 <대상전>부터 읽고 공유한다. 이 괘의 <<대상전>>은 "象曰(상왈) 澤中有雷(택중유뢰) 隨(수)니 君子(군자) 以(이)하야 嚮晦入宴息(향회입연식)하나니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연못 가운데 우레가 있는 것이 수(隨)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 그믐을 향하여 들어가서 잔치하고 쉰다'가 된다. TMI: 嚮: 향할 향, 晦:그믐 회, 宴:잔치 연, 息:쉴 식. 연못 가운데 우레가 있어 발동하니, 모두가 그 물결에 따라 움직인다. 군자는 이러한 상을 보고 내괘 <진 ☳> 우레로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여 외괘 <태 ☱>, 연못의 저녁이 되기 전 내호괘 <간 ☶> 산으로 일을 마치고, 외호괘 <손 ☴> 바람으로 집(휴식 공간)에 들어가 외괘 <태 ☱> 연못으로 저녁에 즐겁게 잔치하며 쉰다. 따라서 <괘의>는 '즐거운 마음으로 목표달성을 위해 열심히 일한 뒤에는 그동안의 과정을 돌이키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라'는 뜻의 "嚮晦宴息(향회안식)' 이다. 지금까지 읽은 괘들의 괘사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시작한다.

▪ 제1괘 <중천건>: 자강불식(自强不息) -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

▪ 제2괘 <중지곤>: 후덕재물(厚德載物) - 대지가 모든 만물을 싣고 있듯이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라.

▪ 제3괘 <수뢰둔>: 창세경륜(創世經綸) - 우리는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

▪ 제4괘 <산수몽>: 과행육덕(果行育德) - 바름을 기르기 위해 과감히 행하고 덕을 길러라.

▪ 제5괘 <수천수>: 음식연락(飮食宴樂) - 밖에 험한 상황이 있으니 안으로 힘을 기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라.

▪ 제6괘 <천수송>: 작사모시(作事謀始) -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

▪ 제7괘 <지수사>: 용민휵중(容民畜衆) - 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

▪ 제8괘 <수지비>: 건국친후(建國親侯):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

▪ 제9괘 <풍천소축>: 의문축덕(懿文畜德) - 문명과 문화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길러라.

▪ 제10괘 <천택리>: 변정민지(辯定民志) - 밟아 온 이력과 역사를 보아 백성의 뜻을 잘 분별하여 정하라.

▪ 제11괘 <지천태>: 보상천지(輔相天地) -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여 천하가 태평하듯이,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라.

▪ 제12괘 <천지비>: 검덕피난(儉德辟難) - 태평한 시대가 지나가고 어렵고 비색한 때가 오면, 어지러운 세태에 영합하여 부를 누리지 말고 어려움을 피하라.

▪ 제13괘 <천화동인>: 유족변물(類族辨物) - 하늘 아래에 태양이 만물을 비추듯이, 천하가 문명하여 함께 하면서도 각각 저마다의 성질과 특성을 헤아리고 상황을 잘 판단하라.

▪ 제14괘 <화천대유>: 순천휴명(順天休命) -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 천하를 비추듯이 악함을 막고 선함을 드날려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르라.

▪ 제15괘 <지산겸>: 칭물평시(稱物平施) - 후덕한 산이 땅 아래에 있듯이 부유함을 덜어서 가난함에 보태어 사회의 형평을 유지하고, 상황을 잘 판단하여 공평하게 베풀어라.

▪ 제16괘 <뇌지예>: 작악숭덕(作樂崇德) - 인생을 겸손하게 살면서도 예악을 즐기고 덕을 숭상하면서 하느님과 조상에 대한 경배를 잊지 말라.

▪ 제17괘 <택뢰수>: 향회안식(嚮晦宴息) - 즐거운 마음으로 목표달성을 위해 열심히 일한 뒤에는 그동안의 과정을 돌이키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라.

<대상전>에 말했다. 연못 속에 우레가 있는 것("澤中有雷, 택중유뢰")이 "수(隨)"이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어둠을 향해 들어가 휴식을 즐긴다("嚮晦入宴息, 향회입연식"). 외괘 <태괘> 연못은 방위상 지는 서쪽으로 저녁이라 했다. 여기에서 어둠(회)의 상이 나오고, 외호괘 <손괘> 바람은 들어가는 것이다("巽入也, 손입야), 어둠을 향해 들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밤낮 구분 없이 일하는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해가 떨어진다고 모두 집에 들어가 쉬지는 않는다. 그때부터 하루의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겉으로 쓰인 비유에 얽매이는 대신 속뜻을 살피면, '때에 순응하라'는 공자의 말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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