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웅 작가, 독서지도사 [사진=더코리아저널]


[변대웅 독서일기] 나이가 들수록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친구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다 40대 중반에 명퇴하는 주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한 회사에서 10년 이상 많게는 20년 이상을 다니다가 명예퇴직을 하는 40대 중후반의 남자들의 이후 삶에 대한 방향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20대에 짧게 회사생활을 한 이후에는 계속 개인사업형태로 세일즈나 컨설팅, 디자인, 강의 등의 일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확장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퇴직이라는 개념자체를 생각하고 있지 않았고, 함께 만난 친구들도 한 명은 사업가, 한 명은 의사였기 때문에 은퇴에 대한 주제에 대해서는 거의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기에 다소 생소한 주제였다.

그러면서 한 친구가 은퇴 직전의 고위 공무원이었던 지인분을 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은퇴하기 한 달 전쯤에 뵙고, 다음번엔 딱 1년 후쯤에 다시 뵈었는데, 이전에 뵈었을 때의 젊음과 생기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나이 들고 초라해 보이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끝났다고 믿었을까? 무엇이든, 멈춰버리는 순간 우리는 진짜 늙기 시작한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든다. 개인적으로는 나이가 드는 걸 좋게 생각하는 편이다. 워낙 철이 없고, 생각만 많아서 살아가면서 더 많은 경험과 배움이 필요했던 것 같다. 물론 40대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나이만 먹은 철부지라 더 성장하고 성숙해져야겠지만 말이다.

돌아보면 20대도 좋았지만, 30대가 더 좋았다. 그리고 30대보다 지금이 더 좋다. 그리고 50대가 기대된다.

나이듦은 상실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시간을 관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성숙함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듦에 따라 잃어버리는 것들만 생각하지만 나는 잃어버린 게 아니라 교환한 거라고 생각한다. 나이란 본질적으로 살아온 시간의 합이다. 무언가 삶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혹은 명확한 목표가 없더라도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생각한다면, 오직 살아온 시간과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 그러니 나이가 든다는 건 조금 더 내 삶이 나아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겠는가.

결코 잘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크고 작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실수를 하기도 했다. 늘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라 많이 어려웠다. 가족이 아프거나 경제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들 때도 많았다. 지지를 받고 싶은 사람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고, 이루고 싶은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다만 그럼에도 단 한 번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잊은 적인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넘어지고 깨지면서 조금씩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현실감이라고는 없는 이상주의자였지만, 이제는 눈은 하늘을 볼지언정 두 발은 단단히 땅을 딛고 서있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며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성장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느낀다. 힘들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것 같다. 그만큼 철없고 늘 붕붕 떠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사실 나는 30대 후반까지도 내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다 나처럼 생각한다고 믿었다. 누구나 꿈이 있으니까 아무리 작고 막연한 꿈이라고 할지라도 그걸 마음속에 품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기 위한 발걸음을 옮겨나가는 게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알게 된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이가 들고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둘씩 잃어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냥 늙어가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더 멋있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걸 봤기 때문이다. 단순히 외모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 등이 더 세련되고 성숙해지는 모습이 멋진 거다.

어린아이들은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어릴 때의 그 싱그러움을 '아름답다'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름다움은 젊음만으로도 채울 수 없는 가치라서다. 젊음이라는 시간을 바쳐 나다운 삶의 가치를 만들어 냈을 때만 비로소 아름다운 삶이라 부를 수 있다. 새싹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우리가 정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그 새싹이 자라 자신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을 때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죽어가고 있는가

나이가 들수록 성장하고 있는가

어쩌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인생을 사람이 살 수 있는 평균적인 나이로 계산해서 '몇 살이 넘으면 늙은 거고, 몇 살이 넘으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았고'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시간 중심적 사고가 있는가 하면, 한번 주어진 인생동안 무언가 이루기 위해 '몇 살까지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또 몇 살까지는 이런 걸 해보고 싶고'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는 성장 중심적 사고가 있다.

시간 중심적 사고는 ‘몇 살이 넘으면 늙었다’고 규정하지만, 성장 중심적 사고는 ‘몇 살이든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삶이 그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면,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성장할 수 있고, 꽃 피울 수 있고, 열매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

나이듦은 상실이 아닌 교환이다. 나는 젊음을 지불하고 성숙함을 얻었다. 건강을 내어주고 깊이를 배웠다. 누군가는 시간은 잃어가지만, 누군가는 삶을 완성해 간다.

[사진=박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