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감성일기] 니체의 눈으로 본 두 리더의 초상: 김문수 vs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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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은 단지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창조의 방식이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도덕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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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단지 정책의 대결이 아니다. 철학자 니체가 보기에, 정치는 도덕의 형식이자 권력의 미학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대통령 선거를 통해 전혀 다른 두 정치적 인물 — 김문수 후보와 이재명 후보— 를 통해, 니체가 말한 두 종류의 도덕과 리더십을 극명하게 목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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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는 주인의 도덕과 창조의 리더십의 존재자이다. 니체는 '주인의 도덕(Herrenmoral)'으로 자기를 긍정하고, 자기 기준으로 세계를 창조해나가는 힘의 윤리로 보았다. 김문수는 바로 그런 리더다.
그는 1970-80년대, 노동운동의 최전선에서 실존적 투쟁을 선택했고, 이후 부천 3선의원과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면서 파주와 여주 디지털단지, 평택 삼성, 판교 테크노밸리, GTX 노선 등을 주도하며 실질적 결과물을 남겼다. 그의 리더십은 원한이 아닌 책임과 결과, 감정이 아닌 질서와 창조를 지향했다.
그는 결코 '도덕'을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 그는 도덕 자체를 살아낸 인물이다.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권력 너머의 질서를 추구하며, 자신의 존재로 정치를 실현한 사람. 이는 니체가 말한 "자기 자신의 법이 되는 자" — 주인의 윤리를 구현하는 정치인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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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니체가 비판했던 '노예의 도덕(Sklavenmoral)'은 약자의 정서, 반감의 정치, 그리고 원한(ressentiment)에 기반한다.
이재명의 정치적 담론은 끊임없이 ‘적’을 필요로 한다. 검찰, 재벌, 언론, 사법, 기득권, 심지어 당내 동료 정치인들까지도 악의 대리인으로 명명된다. 그의 언어는 분노를 자산화하고, 시민을 ‘약자’로 설정하며, 리더는 그 약자를 대신 복수해주는 영웅으로 서사화된다.
이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원한이 힘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그 자체로 도덕이 된 사회의 붕괴”라고 지적했던 바로 그 현상이다. 그의 리더십은 미래의 구상보다는 과거의 응징, 성과보다는 감정의 확산, 창조보다는 파괴의 서사에 가깝다. 즉, 노예의 도덕이 정치의 방식으로 정착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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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는 자 vs. 반응하는 자
김문수는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 “창조하는 자”에 가깝다. 그는 한 시대의 혼란을 뚫고, 자기 존재를 기반으로 제도를 창조한 사람이다.
반면, 이재명은 니체가 경계했던 “영원한 피해자”의 정치적 화신이다. 그는 약자 서사를 반복하며, 자기 위치를 '부당하게 핍박받는 자'로 설정함으로써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 한다. 그러나 니체는 그것이 가장 비겁한 형태의 권력욕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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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가 작금의 한국 정치에 멘토로 직접 개입했다면 누구를 지지하고 선택했을까? 그는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 도덕을 무기로 삼지 않고 창조의 도구로 삼는 인간, 그리고 감정이 아닌 의지로 세계를 바꾸는 인간을 택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문수는, 니체가 상상한 정치적 ‘초인’에 가장 근접한 실존이다. 그는 분노로 말하지 않았고, 희생으로 보상을 정당화하지 않았으며, 대신 자기 손으로 직접 모순과 부정의 세계를 바꾸려 노력했다. 오늘 우리가 선택해야 할 리더는 피해의 기억을 외치는 자가 아니라, 주인의 도덕으로 창조의 결과로써 말하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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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사는 것이 아니라 얻는 것이다. 민심은 바람과 같아, 어질고 높은 곳에서 낮고 추운 곳으로 향하므로 그들의 마음은 가둘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강물과 같아 머물 곳에 머물고 흐를 때에 흐르며 오래 가두어 쌓이면 노도처럼 변한다. 하나의 마음이 그럴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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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주나.
9.
우리 모두 모여 하나가 되자. 우리 모두 모여 하나가 되자. 흩어지지않게 우리 전진해.
10. 긴 터널 지나 광명의 세상에서 이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