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수 건강아카데미 대표 [사진=더코리아저널]
[조영수 조은세상] 중년의 가치관 전환과 인지언어학적 재편성을 통한 장수학
"나는 살고 싶다!~~"
-인간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DNA를 움직인다- 데니스 노블
중년의 가치관 전환과 인지언어학적 재편성을 통한 장수학
가이드
현대 분자생물학이 제시하는 50대 전후 생식과 생존의 생물학적 전환기(호르몬 변화 포함)에 주목하여, 이 시기에 기존 생식 시대의 가치관과 생존 시대에 필요한 가치관의 충돌이 발생하며, 이에 대한 부적응이 중년의 심리적 고통(신경증 등)의 주요 원인이 된다는 점.
칼 융이 분석했던 중년 귀족 환자들이 겪었던 문제 역시 생존 시대 가치관의 미발달에서 비롯되었으며, 융의 자기 실현과 존 비베의 그림자 기능 개념이 이러한 내면의 과제를 다루고 있음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고가 깊은 은유에 의존하고 있기에 이러한 가치관과 내면의 재구성이 쉽지 않음을 지적하며, 바로 이 지점에서 인지언어학적 세심한 고찰과 의식적인 인지언어학적 재편성이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개념적 은유, 프레임, 내러티브, 개념 구조 등을 재검토하고 재구성하는 이 과정이, 생의 후반부를 건강하고 의미 있게 영위하는 장수학의 근본적인 토대가 된다는 논지를 전개합니다.
중년의 전환, 가치관의 충돌, 그리고 장수학의 토대
▶기(起): 생물학적 전환기, 가치관의 변화 요구
현대 분자생물학은 유기체의 에너지와 자원이 생식과 생존(신체 유지 및 복구) 사이에서 분배되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음을 다양한 연구를 통해 보여주고 있으며, 인간에게서 이 분기점이 대략 50대 전후에 나타남을 시사하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여성의 폐경(Menopause), 남성의 안드로겐 감소(PADAM; Partial Androgen Deficiency in the Aging Male과 같은 연령 관련 남성 호르몬 변화) 등 생식 능력이 저하되고 신체적 노화가 가속화되는 등 생물학적, 호르몬적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결정적인 전환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인간의 뇌는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을 유지하며 스스로 재조직화하고 새로운 연결을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비록 생식 기능은 저하되더라도, 인지적, 심리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적응과 변화가 충분히 가능함을 시사하는 생물학적 기반이 됩니다. 이러한 생물학적 변화는 단순히 신체 기능의 저하를 넘어, 삶의 에너지 방향과 심리적 우선순위의 근본적인 재조정을 요구합니다. 젊은 생식기에 사회적 성공, 경쟁, 확장, 물질적 축적 등 외부 지향적인 가치관이 형성되었다면, 생존기에는 자신의 건강, 내면의 평화, 관계의 깊이, 삶의 의미 탐색 등 내면 지향적인 가치관이 중요해집니다. 그러나 생식 시대에 깊이 뿌리내린 가치관과 생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관은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것들이 많아 필연적으로 내적 충돌을 야기합니다.
▶승(承): 가치관 충돌의 부적응과 심리적 고통
문제는 이러한 생물학적 전환에 수반되는 가치관의 변화가 매끄럽게 일어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생식 시대의 가치관에 계속 묶여 있거나, 생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관을 내면화하지 못할 때, 심리적 부적응과 갈등이 심화되며 신경증이나 심한 경우 정신증과 같은 문제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변화된 상황과 내면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나'를 형성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칼 융이 분석했던 환자들 중 상당수가 바로 이러한 중년의 귀족 계층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은 이미 사회적, 물질적 성공을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이는 생식 시대의 목표 달성 이후 찾아온 허무감과, 생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가치관과 삶의 의미가 발달되지 못했기 때문에 겪는 전형적인 중년의 위기였습니다.
융이 제시한 '자기 실현(Individuation)'이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이론 체계는 바로 이러한 중년기 가치관의 미발달과 내적 분열을 치유하고, 진정한 자신으로 통합되는 새로운 삶의 길을 제시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논리 체계'였습니다.
▶전(轉): 그림자 기능, 생존 가치, 그리고 은유의 어려움
존 비베는, 칼 융의 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특히 '그림자 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림자 기능은 의식적인 자아가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열등하다고 여기며 억압해 온 자신의 심리적 기능이나 성격적 측면들을 포함합니다. 이 그림자 기능이야말로 상당 부분 생존 시대에 필요한 가치관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식 시대에 성공과 경쟁을 위해 극대화했던 특정 기능 외에 소홀히 했거나 억압했던 기능들(예: 감정 표현, 관계 맺기, 내면 성찰 능력)이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생존 시대에는 이러한 '그림자 속 가치'들, 즉 관계의 질, 내면의 의미, 정서적 연결 등이 중요해지며, 이들을 통합하는 것이 심리적 균형과 안녕에 필수적입니다.
그림자는 단순히 어둡거나 부정적인 측면이 아니라, 생의 후반부를 위해 반드시 활성화하고 통합해야 할 '미발달된 생존 가치'들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가치관의 전환과 그림자 속 생존 가치의 통합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 뇌와 사고방식은 오랫동안 익숙해진 은유와 개념 체계에 깊이 의존하여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정의해왔기 때문입니다 (인지언어학의 핵심 통찰).
생식 시대의 가치관을 지탱하는 '삶은 투쟁', '성공은 정복', '성장은 확장'과 같은 무의식적인 은유는 강력한 사고의 틀을 형성하며 변화를 방해합니다. 이 틀을 바꾸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변화가 아니라 존재 방식을 재구성하는 것과 같아서 엄청난 어려움을 수반합니다.
▶결(結): 인지언어학적 세심한 고찰과 장수학의 기본
바로 이 지점에서 인지언어학이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인지언어학은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 도구를 넘어, 우리의 사고방식, 개념 체계, 그리고 세계관을 어떻게 구조화하는지를 연구합니다. 중년 이후 생물학적/심리적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루고 생존 시대에 필요한 가치관을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인지언어학적 세심한 고찰과 의식적인 인지언어학적 재편성이 필수적입니다.
* 개념적 은유 (Conceptual Metaphor): 중년의 위기나 심리적 전환을 묘사할 때 '터널을 지난다', '새로운 장을 시작한다',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와 같은 은유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은유는 심리적 경험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이해하는지를 보여주며, 전환 과정에서의 어려움이나 목표를 드러냅니다.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은유를 인식하고 생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은유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프레임 (Frames): 개인이 자신과 세상을 어떻게 '프레임'을 통해 인식하는지는 가치관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예를 들어, 노화를 '쇠퇴'로 프레임하느냐, 아니면 '지혜와 성장의 기회'로 프레임하느냐에 따라 중년 이후의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분석 과정에서 기존의 프레임을 인식하고 생존 가치에 부합하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재구성하는 데 인지언어학적 분석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 내러티브 (Narrative): 개인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내러티브) 형태로 구성합니다. 중년의 전환은 기존의 삶의 내러티브가 흔들리고 생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축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어떤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며, 어떤 결론에 도달하는지를 인지언어학적으로 분석하고, 의식적으로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심리적 안정과 성장에 필수적입니다.
* 개념 구조 (Conceptual Structure): '자기(Self)', '무의식', '원형', '콤플렉스'와 같은 융 심리학의 핵심 개념들을 포함하여, 우리의 마음속에서 다양한 개념들이 어떻게 연결되고 조직화되어 있는지를 인지언어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 구조를 이해하고 필요한 부분을 재조직하는 것이 내면 통합과 자기 실현 과정에 도움을 줍니다. 이러한 인지언어학적 재편성은 단순한 심리적 문제 해결을 넘어, 오래도록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는 지혜와 실천, 즉 '장수학'의 근본적인 토대가 됩니다.
신체적 건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급변하는 생애 주기에 맞춰 자신의 가치관과 심리 구조를 유연하게 재구성하는 능력이며, 이 능력은 바로 세상을 인식하고 자신을 설명하는 '언어적/인지적 틀'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재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가치관의 성숙과 내면의 통합을 통한 심리적 안녕은 장수 시대에 필수적인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이며, 이는 인지언어학적 작업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 참고: 인지 언어학의 관점
인지 언어학은 언어가 단순히 외부 세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거나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 이상의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언어는 우리의 인지 능력(지각, 기억, 추론 등)과 분리될 수 없으며, 우리가 현실을 개념화하고 사고방식을 구조화하는 방식 자체를 반영하고 또 형성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유에 의존해 살아가는' 방식
특히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와 마크 존슨(Mark Johnson) 같은 인지 언어학자들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수많은 '개념적 은유(Conceptual Metaphor)'에 의해 사고하고 행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은유는 시적인 수사법이 아니라, 우리가 추상적인 개념(예: 시간, 사랑, 생각, 논쟁, 삶)을 더 구체적이고 경험하기 쉬운 개념(예: 돈, 여정, 건물, 전쟁, 사물)에 빗대어 이해하는 근본적인 정신 작용입니다.
예를 들어:
* 시간은 돈이다 (TIME IS MONEY): "시간을 투자하다", "시간을 낭비하다", "시간을 아끼다", "시간을 벌다" 와 같이 우리는 시간을 돈처럼 생각하고 다룹니다.
* 논쟁은 전쟁이다 (ARGUMENT IS WAR): "주장을 방어하다", "상대방의 논리를 공격하다", "논쟁에서 이기거나 지다", "반론을 무력화시키다" 처럼 논쟁을 전쟁의 틀로 이해합니다.
* 삶은 여정이다 (LIFE IS A JOURNEY): "삶의 길", "순탄치 않은 여정", "인생의 갈림길", "목표를 향해 나아가다" 와 같이 삶을 움직임이나 길에 비유합니다.
이러한 개념적 은유는 단순히 언어 표현에 그치지 않습니다. '논쟁은 전쟁이다'라는 은유는 우리가 논쟁에 임할 때 상대를 적으로 보고 승리만을 목표로 삼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은 여정이다'라는 은유는 우리가 현재보다 미래의 목표 달성에 더 집중하게 만들거나, 예상치 못한 방해물을 실패로 여기게 만들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사용하는 은유는 우리의 인식, 추론 과정, 감정 반응, 그리고 행동 방식까지 깊이 구조화합니다. 우리는 말 그대로 이러한 은유적 틀에 '의존하여' 세상을 경험하고 살아갑니다.
▶삶의 전환기와 인지 언어학의 중요성
중년의 가치관 전환 맥락에서 인지 언어학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됩니다.
생식 시대에서 생존 시대로의 전환은 단순히 외부 환경이나 신체 변화뿐만 아니라, 삶과 자신을 이해하는 근본적인 은유적 틀이 바뀌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젊은 시절 성공, 경쟁, 확장을 중시했던 가치관이 '삶은 성장', '삶은 경쟁'과 같은 은유로 지탱되었다면, 중년 이후 내면의 평화, 의미, 관계를 중시하는 가치관은 '삶은 내면 탐험', '삶은 통합'과 같은 새로운 은유를 요구합니다.
기존에 뿌리내린 은유는 매우 강력하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이러한 틀을 바꾸는 것이 어렵고 내적 갈등을 야기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지 언어학적 세심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어떤 은유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인식하고, 그것이 현재 자신의 삶과 목표에 적합한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며, 필요하다면 의식적으로 새로운 은유와 내러티브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결론적으로, 인지 언어학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와 그 이면에 숨겨진 사고방식의 구조를 이해하는 강력한 도구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은유에 의존해 살아가는 삶'을 이해하는 것은 자기 이해의 핵심이며, 특히 삶의 중요한 전환기(예: 중년)를 성공적으로 항해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 됩니다. 이는 곧 풍요롭고 의미 있는 '장수'의 기반이 되는 인지적 유연성과 적응력을 기르는 것과 직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