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렌즈세상]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나의 분신처럼 도와주던 애마 ‘투싼’을 떠나보냈다. 같이 떠나기로 다짐한 차가 보름 전 수명을 다해 아산 폐차장까지 갔으나, 다시 살아나 정동지의 장터 전시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보름 동안 말썽부리지 않고 잘 도와주었으니, 이제 보낼 때가 된 것이다.
지난 27일 차를 넘겨주기 위해 아산으로 내려갔다. 마침 ‘스테이 화요일’에 모이는 김상현씨 ‘뮤아트’팀 MT도 가봐야 하지만, 백암길에 할 일이 많아 겸사겸사 날을 맞춘 것이다.
백암길 작업실에 도착하여 마당의 잡초부터 제거하고 구석구석 청소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반나절이 훌쩍 지나버렸다. 서둘러 ‘화요일’로 달려가 김상현씨 일행을 만날 수 있었는데, 싱그러운 자연에 빠져 음악을 듣다 자정이 넘어서야 빠져나왔다.
다음날은 모처럼 작업실 주변을 돌아보는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무성하게 전봇대를 휘감아 거슬리던 등나무도 보랏빛 꽃을 활짝 피웠다, 봄이면 집 주변에 늘렸던 두릅은 씨를 말려버렸다.
높은 가지는 사정없이 꺾어 놓았는데, 뜻밖에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를 현장에서 만났다. 새로 돋아난 두릅을 따러 왔는지, 들어오다 마주친 것이다, 어물쩍, 마을 행사 이야기를 하며 물러났는데, 산불 감시하는 늙은이였다. 기동력도 있고, 무료하게 시간 보내는 직업이다 보니, 욕심이 생긴 것 같다. 먹는 음식으로 타박하기 싫어 말하지 않았더니, 서둘러 빠져나갔다.
폐차장에서 차를 가져간다는 소리에 갔더니, 이미 레커에 끌려가고 있었다. 미처 작별도 하지 못하고 '투싼'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시야에서 멀어져 가는 차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많은 시간을 차에서 보내다 보니, 애잔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담배를 자유롭게 피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습관이 몸이 베어 방처럼 편안하고, 정동지와 촬영 다니느라 숱한 시간을 보낸 정든 공간이다.
이 차는 삼년 전 190만 원에 구입하여 47,000km나 뛰어주었는데, 총 226,000km를 주행하고 제 목숨을 다한 것이다. 그것도 전시기간 동안 차가 필요한 것을 알았던지, 폐차장에서 살아 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준 고마운 차다. 못 움직이면 조기 폐차비도 못 받는 것을 알았던지, 다시 살아난 것이다.
이제 한동안 방안에 갇혀 꼼짝도 못할 처지가 되어버렸다. 오늘 정동지가 방송팀과의 촬영 약속이 있어 경북 상주장으로 떠났다. 차가 없어 새벽부터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나갔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처럼, 잘할 것으로 믿는다. 아산의 김선우가 중고차 '스포티지'를 봐 두었으나, 보고 못 먹는 장떡에 불과하다. 조기 폐차비가 나와 부족한 부분이 채워질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마치 장가가기 전 새 마누라 기다리는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