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문학박사, 중앙대예술대학원장 [사진=더코리아저널]
[이대영 감성일기] 산다는 것이. 거참.
아아, 세상이 무섭다. 꿈도 무섭다. 어이하여 죽음의 문을 두드리나. 허름한 종갓집 대문이다. 미리 죽을 날을 등록해야 한다고 하기에 그 앞을 서성이다가 깨다. 흙과 겨로 뒤범벅인 작은 개가 무심히 나를 따르고. 잿빛 얼굴의 낯선 사람이 그 집 앞에서 반갑게 아는체를 하기에 웃어주다가 깨다. 그는 들어갔으나 나는 다행히 서성였다. 바보처럼.
깨어나 멍하니 어둔 세상을 내려다보다. 예전에는 어린 별들과 모르스 부호로 도란도란 이야기하곤 했는데 요즘의 밤하늘은 생기를 잃은 꽃처럼 섧다. 베란다에서 마른 한숨을 내쉬며 쭈그리고 앉아 턱을 괴다. 불현듯 떠오르는 지난 사건들이 뇌를 헝클다. 떨치려 걷다. 담배를 물다. 바람이 차다. 경비아저씨가 눈인사를 건네다.
겪은 자와, 본 자와, 들은 자와, 판단한 자와, 상상한 자는 생각이 각기 다르다. 겪지도 않고 출세를 위해 수려한 거짓과 모함으로 위세를 얻는 이들이 많다. 벌받을 짓이다. 바른 길이 아니라 빠른 길을 걷는 사람이 많은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거짓과 궤사가 진실의 눈을 가리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이 시대를 사는 것도 천형이다.
......
봄이 온다더니, 저린 겨울이다. 겨울을 피해 남으로 온 꽃들은 서러운 공장의 불빛에 얼굴을 감추고, 기름 묻은 손으로 새싹을 다시 턴다. 유치된 봄의 비명소리에 놀란 바람이 유령처럼 기웃거리며 어린 꽃을 자꾸 흔들어 깨운다.
꽃은 바람에 뒹굴며 홀로 운다. 꽃이 피는가. 꽃이 지는가. 핏빛 붉은 꽃들아 우리는 유치된 봄 속에 이대로 남아 진짜 봄날을 기다리자. 겨울 극장 속 봄이 아닌 참 자유의 봄날을 기다리자.
하여, 어둠 속에서도 눈물이 보석이 될때까지 정직과 염치와 양심을 모아 달빛에 역사를 새겨야 한다. 거짓과 위선과 온갖 부정으로 살집을 찌운 자들과 맞서 투쟁해야 한다. 유월의 순결한 양심으로 자유의 꽃을 피우자.
[사진=이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