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편집인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흥식 칼럼] 나는 왜 광고인이 되었나
내가 아주 작은 꼬마였을 때, 그때는 나의 꿈이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사실은 바리톤 성악가)였다.
주변의 어른들도 내가 노래를 잘 부른다고 추켜 세웠다. 꼬마의 머릿 속은 노래 잘 부른다는 칭찬을 들을 때면 기분이 으슥해져, 어른이 되면 꼭 가수가 될거라 생각했다.
조금 더 키가 크고 중학생이 되자 내 꿈은 바뀌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 당시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아나운서 스포츠 중계방송이 너무 재밌고 나를 흥분시킨 탓일지 모르겠다. 라디오중계방송이란게 당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열광시켰다.
이때부터 내 머릿속은 나도 라디오 속의 박진감 넘치는 중계방송 아나운서 아저씨처럼 방송인이 되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 희망사항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꿈을 현실로 실현시키기 위해 보다 더 구체적인 목표로 바뀌었다.
방송국 아나운서가 되기위해서는 나의 준비사항 첫째는 서울에 있는 K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진학이 필요했다. 나의 대학 진학 목표는 당시 나의 학업성적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목표는 마음속에 확고 부동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꼭 K대학에 들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고등학교 나의 청소년기는 지나갔다.
지금 돌아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내가 왜 그토록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했는지는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잠깐 이야기가 옆길로 빠져서 고교시절로 돌아가 보겠다. 나의 꿈과 가능성이 예측되는 나의 고등학교 서열과 성적 수준은 많이 미흡했다. 지금도 대학진학 준비에 부딪치는 현실은 비슷하지만 당시에도 대학입학과 진학 성과를 보여주는 전국 고등학교 서열화 랭킹과 대학진학 지원서를 위한 예비고사 성적이 필요했다.
학교의 교내 중간평가 시험이 끝나고 결과를 발표할 때 호랑이 수학교사였던 이무일 선생님은 우리열등반 학생들을 향해 늘 이렇게 야유했다 . “야 이놈들아, 니들은 시험성적을 보니, 여기 지방대는 고사하고 저 독도대학 갈매기과가 적당한 수준이구나, 한심한 넘들아, 공부 더 해야 겠다”
대개 청소년들이 그렇듯이 나의 교교 학창시절도 유난히 힘들었다. 교내 학생들은 몇 개의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대학진학을 중심으로 소위 SKY대 입시반(교내상위성적/우수반)과 서울기타대 와 지방대 입시반(하위성적/열반) 으로 나뉘었고, 입시 준비만 하는 도서관학파와 교내규율과 학교밖에서 힘을 뽐내거나 연애에 관심가지는 막가파그룹으로 나뉘었다.
물론 나는 도서관 학파에 속했다. 내 옆자리에는 김진항이라는 친구였다.
“진항아, 너는 졸업 후에 어떤 직업,사람이 되고 싶어?” 물어본 적이 있다.
진항이는 “나는 육군사관학교에 갈 거야, 그리고 별을 단 장군이 될거야”라고 말했다
진항이가 나에게도 물었다.
“흥식아, 너는 어떤 사람이 될거야?” 나는 주저없이 대답했다.
“나는 10년후 아마 KBS 방콕 특파원이 되어 있을거야” 너 내가 방송하는 중계 잘 들어“
진항과 나는 10년 후 꼭 자신의 꿈을 이루자고 다짐하고 손을 마주 잡았다.
그때 내가 꾼 꿈은 지금도 분명하다.
나는 반드시 KBS 혹은 MBC 방송국 9시뉴스 앵커가 되거나, 해외특파원으로서 마이크 앞에 선 방송기자 혹은 아나운서가 되는 꿈이다.
10년후, 두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 사람이 품었던 청운의 꿈은 한 사람은 현실이 되고, 한 사람은 바뀌었다.
시작은 두 사람 모두 좋았다.
진항은 그의 희망대로 육사에 합격해 입교했다. 이후 진항은 별을 단 장군(육군 제12사단장, 소장)이 되었다
나 역시 꿈에 그리던 K대학 신문방송학과에 합격하고(한번은 떨어지고 1년 재수해서) 기필코 입학했다. 하지만 결과는 빗나갔다. 나는 방송인이 되지 못하고 광고인이 되었다.
이제 대학시절의 이야기를 하겠다.
대학재학 4년, 이기간 동안 방송인이 되고자 나는 오직 한길 앞만 보고 걸었다. 준비는 좋았고 과정도 훌륭했다.
나는 오매불망 한가지 목표 방송인이 되고자 첫관문인 대학입시에 성공하고, 71학번 신입생 환영회에서 장래의 방송국 아나운서로서 나의 역량과 소질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K대학 정경대학 소속 4개 학과(경제과, 정외과, 신방과, 통계과)의 합동 신입생 환영식날 나는 신방과 대표로 학생들 앞에 나가 장기자랑을 뽐냈다. 나의 래파토리는 나의 비장의 무기이자 개인기 이던 입으로 나팔부는 흉내와 원맨쇼 였다,
” 안녕하세요, 학우여러분, 쓰리보이 박흥~ 식입니다. 동남아 순회공연 당시 가장 박수를 받은 종목의 하나로서 입으로 나팔부는 흉내입니다.“ ”레파토리는 시베리우스 몰겐 모찰트는 제외하고, 스트라디 바리우스나 베토벤은 너무 자극적이서 취소를 당하고, 요한 슈트라우스 대신 쇼스타코비치, 차이코프스키 작곡 홍난파 작사 “몽땅죽으라” 부르스는 미안하지만 오늘 생략합니다 . 대신, 내가 애송하는 ‘오~ 대니 보이’ 불러드립니다. “붐바 붐바 부~~~(요건 트럼본 흉내), 치키 치키 쵸~ 치키치키 츄~~,차카차키 치~~(바이올린 흉내), 쳐~어다 보니 하늘 천, 내리고 보~오니 따~아지,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삐빠빠~룰라! 할랠루야~ 할래루~를 찾아가자.” 딩가당 딩가~ ,딩가당 딩가~(요건 거문고 소리)
둥둥 두구둥~둥궁 두구 둥~(요건 북소리) 워~! 크라이져! 여기 실흔 노오옴이이 원, 워크라이저 포오라이져, 원데이 인디언 시크먼스 크라이, 워~ 돈 원리, 비 해피~ 입시랜티 체이호프, 칼 마시 캐시 캐시, 칼마시 캐시 캐시,~~(둥가당 둥, 둥둥. 두가 당가 둥둥)
“닭아 닭아 울지마라, “ 치킨 치킨 돈 트 크라이”, “니가 울면 날이 샌다” “유 크라이 모닝 캄!”, ”우리집 송아지는 미친 송아지, 학교갈 때 노래하면 음매 음매 음매~, 집에 올 때 노래하면 멍, 멍 멍,“ : 우리집 강아지는 미친 강아지, 학교갈 때 노래하면 멍멍멍,”집에올 때 노래하면 음매, 음매, 음매“ ”우리집 고양이는 미친 고양이, 학교“갈 때 노래하면, 야옹, 야옹, 야옹, 집에올 때 노래하면, 멍 멍 멍,“ 딩가 딩가 딩가~(이때) ”틱~~“하는 소리/아, 줄이 나갔구나.(틱소리는 거문고 줄끊어짐 소리)
저 뒤에 서 졸고 있는 학생 불란서 리빠똥 장군을 많이 닮았내요~, 아 미안 리빠똥 장군은 불란서 말로는 듣기 좋지만 한국말로 번역 하면 거꾸로 똥파리 장군입니다. 죄송~~!”
객석과 장내는 이쯤이면 웃음의 도가니다. 저 뒤쪽에서 와 ~! 함성 소리가 들리고, 어디서는 우와 진짜 신방과 신입생다운 넘이 새로 입학해 들어왔다고 수근거렸다. 이날 신방과 재학생 선배이자 교내 방송국 (KUBS/코리아 유니버시티 브로드캐스팅 스테이션) 국장이던 운군일 선배(이분은 나중에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 드라마 연출 PD로 유명 )가 행사를 참관하고 오디션 했다, 나의 장기자랑이 끝나자, 운선배가 스카웃 제의 나는 정식으로 학교 KUBS 방송국원이 되어버렸다.
이날 이후 나는 학교에서 수업 대신 매일 12시 정각 교내방송국 KUBS 마이크 앞에 앉았다.
“여기는 초단파 53.3 메가핼스 로 보내드리는 고려대학교 교육방송국입니다.
본 방송국에서는 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매일 낮 12시부터 오후1시반까지, 오후5시부터 7시반까지 교양과 보도 및 음악프로를 제작 방송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월요일 낮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KUBS, 애이치앨 투비제트~”
“뚜~뚜 뚜 뚜~” (12시시각을 알리는 음향 울리면)
”학우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석탑의 문을 들어선 신입생 입학식이 지난 5일 601 대강당에서 성대히 거행됐습니다. 이날 신입생 입학식에는 김상협 총장, 정재각 대학원장 , 누구 누구를 비롯해 참석한 가운데 무슨 무슨 행사 등 순서로 몇시까지 진행됐습니다. 블라 블라 블라~ ,김상협 총장은 입학생들에게 석탑의 교정에서 갈고 닦아 장래 사회에 진출할 때 지성과 야성을 함께 갖춘 지도자로 성장할 것을 당부 했습니다, 이어서 교내소식으로 블라 블라 블라~~~ “ 등 교내 뉴스 (이하생략) ”를 진행했다.
나의 대학시절 교내는 늘 시국사태로 불안정하고 데모하는 학생들로 혼란스럽고 학업과 공부는 뒤로 밀렸다. 학과 교우들은 시국현안에 아랑곳하지않고 1학년초부터 언론사 입사준비에 몰두했다.
몇몇은 언론사 준비대신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공무원되기를 택했으나 우리 신방과 교우들은 나를 제와한 대다수가 미래 유능한 언론인 특히 신문기자과 되고자 했다. 나는 이들 중에서 별종이었다.
신방과 학급정원 30명중 전체 총인원 29명은 신문전공을 택했으나 오직 예외적 한명인 나는 전공으로 방송을 선택했다.
교내방송국 동아리 활동에는 학내 방송 편성에따른 방송제작과 송출등 이벤트 운영이 대부분 활동이지만, 방학기간동안에는 수습기자 피디 아나운서 성우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워크숍 활동과 학교창립일 기간중 교내축제가 벌어지는 때는 방송국이 더 바빠졌다. 이때 우리는 ‘석탑방송잔치’라는 이밴트를 기획하고 제작하며, 생방송으로 대형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한다.
KUBS 교내 방송국원 대다수는 이런 동아리활동 만으로도 방송실무 교육과 기사작성, 프로그램 기획,연출 역량을 키우고, 워크샵, 현장취재와 제작 활동을 통해 이미 훌륭한 방송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들은 졸업후면 국내 유수의 방송국에 진출해서 프로듀서와 아나운서, , 탈랜트 혹은 방송작가로 진출하고 유명 배우나 감독이 된다.
방송인이 되는 나의 꿈은 학교 졸업때 까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준비되었고 시간은 흘러갔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나의 길을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그 길에는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방송국 선배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나의 신방과 학과 소속 여학생 후배였다.
그 두 사람은 나의 인생에서 마주한 아주 중요한 인연이다‘
이 두 사람을 통해 ’사람의 삶은 사람과의 만남이다‘는 진실을 나는 뼈저리게 확인했다.
운명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 된다.
먼저 여학생 후배와의 만남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내가 재학중 군대에 입대해 3년 복무를 마치고 다시 켐프스로 복귀하고 학교애 왔을 때, 우리 신방과에 낯선 미모의 여학생이 유독 눈에 보였다.
이것은 운명이다.
처음 이 여학생을 보는 순간 ’아 저학생 누구지, 저여학생 남자 친구는 누구지? 그 남자친구 분명 이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넘)이겠군“ 이란 생각이 들었다.(이 사실은 매우 중요)
신방과 다른 후배를 통해 그 이름 모를 여학생 후배를 물어보았다. 이름이 무엇이고, 그 여학생은 무슨 과목을 수강신청했는지, 학번은 어떻고, 고향은 어딘지, 부모님은 누군지 등...
그날 이후 나는 그 여학생을 마음속에 J(줄리엣)이라 부르고, 줄리엣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자 모든 인생 목표를 급회전 시킨다.
복학후 변화돤 나의 나의 일상은 많았지만, 내 인생 모두가 왠지 그 줄리엣 여학생과 연관되어 하루하루가 흘러가는 듯했다.
몇가지 변화된 나의 행동과 태도를 얘기하면 이런 것이다.
나는 일단 그 줄리엣이 수강 신청한 교과목을 나도 같이 수강 신청하기로 했다.
그가 좋아는 것, 취미는 어떤 것인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지금 가지는 관심사는 무엇인지, 그녀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에게도 똑같이 소중했다.
나는 마침내 연결고리를 찾았다. 줄리엣 고향이 나와 같은 대구였다.
당시 신방과 후배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주로 머무는 교내 방송국 에 자주 나타났고 이를테면 방송국에서 존재감 있던 선배자격으로 괜찮은 대화 기회가 몇 번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곤 했다.
그때 내가 학교에 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줄리엣이 교정 어디에 있는지, 언제 나타날지, 그것이 관심의 전부였다.
학교에서 만나면 사실은 내가 찾아 헤메였건만 어쩌다 마주친 것처럼
”후배 장래 희망이 뭐야?, ‘전공책 맥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 읽어봤어“ 후배 혹시 연극 좋아해? “후배 고향이 대구라며, 나도 대구야~!‘
혹시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부탁해~” 등 만나면 말을 걸고 대화를 유도했다. 그때 후배는 대충 얼버무리고 나를 피해갔다.
당시 그 줄리엣 여학생 후배에게 분명 나는 관심밖에 있었다.
지금 새삼 고백하지만 재학중 어느날 저녁 청계3가 근처 삼일로창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공연 티켓을 미리 준비하고 멋진 데이트를 기대하고 한껏 부푼 마음으로 줄리엣을 초대 했건만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줄리엣 후배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낙심했던 순간과 그날의 슬픔, 비참함이 떠오른다.
잠깐, 여기서 예기를 두 번째 운명의 사람으로 돌아가보자.
나의 운명을 바꾼 또 다른 한사람은 학과 선배이자 동아리선배 경태수 형이다.
교내방송국 선배중에 나를 유독 아끼는 같은 신방과 3년 선배이던 경태수 선배가 내가 졸업을 앞둔 1978년 마지막 학기 어느날 나를 호출했다. 당시 선배는 학교 졸업 후에 합동통신사 광고 기획실에서 근무했다.
선배와 약속하고 선배회사를 방문한 날, 나는 그의 회사내 준비중인 광고기획의 브레인스토밍에 깜짝 손님으로 소개되었다.
아마, 당시 빅아이디어가 필요한 광고캠페인에 보다 참신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새로운 생각을 가진 젊은피의 수혈이 필요했던 이유였을 터였다.
당시 선배는 국내 유명 우유회사(S우유)와 화장품광고(P화장품) 캠페인을 준비중이었다.
그는 내가 해당 광고주의 TV-CF와 이벤트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마음껏 말해보라고 부추겼고
나는 개발 새발 내 생각을 떠오르는데로 예기했다.
다행이도 이날 참석자들 반응이 좋았고 참석자들도 만족했다고 느꼈다. 그날 나는 선배 회사 근처 식당에서 푸짐한 저녁회식에 동참하며 경선배는 술도 많이 사주셨다.
그날 이후 몇 번 더 비슷한 회의에 초대받음은 물론이고 선배의 직속 상관이자 임원이던 김모국장에게 내가 졸업하면 자기회사의 신입사원으로 채용될 것을 암시받고 좋은 스카웃 제안을 받게 되었다.
한편, 나는 이때 본래적 희망직업이자 직장인 방송국에서도 졸업후 스카웃 제의를 동시에 받게 되었다.
그곳은 지금은 사라진 언론사 통폐합 당시 종방하며 마감한 삼성기업이 운영하던 TBC 동양방송이었다.
당시 졸업예정자 중에서 교내방송국과 극예술연구회 활동 경력등에 따른 실무와 신문방송전공이력에서 적합판정을 받은 나는 선택받은 사람이었다.
나는 학교 학과장 교수님과 연극동아리(고대극예술연구회) 주임교수로 부터도 TBC방송국의 프로듀서 입사에 따른 스카웃대상 1순위자로 통보 받았다.
나는 두 회사 모두로부터, 내가 결심만 하면 선택 회사에 입사가 가능하고, 신입직원이 될 수 있었다.
나의 꿈을 이룰수 있는 마지막 선택에 순간에 나는 또하나 인생에서 놓칠 수 없는 선택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직장도 갖고 내 반려자도 얻고 싶었다.
직장은 TBC방송국, 나의 반려는 줄리엣(전영순) 이 둘을 함께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이세상 최고의 부러울 것 없는 남자가 될 수 있었다.
몇일후 어느날, 교정 잔디밭에서 줄리엣 여학생 후배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과 자부심 가득하게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전후배, 나 말이야, 방송국과 통신사 두 곳에서 스카웃이래, 나 어느곳을 선택할지 고민이야”
나 PD가 될 수도 있고 언론사 기자도 가능해, 전후배는 어디가 좋아?“
듣고있던 줄리엣 후배는 단호히 얘기했다. ” 방송국 PD 그거 좋은 직업 아니에요, 방송국 pD를 남자 친구로 두면 그 친구 자주 만날 수가 없어요, 만일 친구가 PD 되어보세요, 매일 이쁜 여자들 틈에서 놀텐데,
자기 여친 안중에 두겠어요, 연예인들과 매일 섞어 그 속에서 무엇을 얻겠어요“ 대체로 이런 주장을 피력했다.
이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군, 이 여자는 남친이 PD 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구나, 내가 점수 따려면 줄리엣이 좋아할 통신사를 선택하면 좋겠군“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그래서 였을까, 나의 입에서는 지킬수 없는 거짓말로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나는 합동통신사로 가게 될거야, 그곳이 더 좋을지 모르겠어, 이왕이면 전후배가 좋아하고 편안한 직장이 나의 새직장이 될거야“ 라고 말했다‘
아뿔사, 나의 순간의 실수가 나의 운명의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결국 나는 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내가 거짓 고백했던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에 인턴사원으로 발령받게 되었다.
나는 나의 젊음 청춘 내내 기대했던 꿈과 가능성이 기구한 운명처럼 얄궂은 사랑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던 방송국 선택을 일순간 던져버리고 내 삶의 목표에 없던 광고인이 스스로 선택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란 사람과의 만남이고, 사람과의 만남이 운명을 바꾼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