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고난 속에서도 꽃이 활짝 핀다
오늘 아침 사진은 동네 공원에서 찍은 것이다. 이처럼 '대유(大有)"한 세상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공유한다. 마침 오늘 함께 읽는 <<주역>>의 제14괘인 <화천대유> 괘처럼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유"는 '크게 소유한다'보다 '풍요롭다'이다. 그래 괘사가 "大有(대유)는 元亨(원형)하니라" 이다. '대유는 크고 형통하다'란 뜻이다. 점을 쳐서 이 괘를 만나는 사람은 고난 속에서도 꽃이 활짝 핀다. 어서 우리 나라가 이 괘를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1.
지난 3월 10일에 이어, <화천 대유> 괘의 효사들을 읽고 공유한다. '초구'의 효사는 "初九(초구)는 无交害(무교해)니 匪咎(비구)나 艱則无咎(간즉무구)리라"이다. 번역하면, '초구는 해로운 데에 사귐이 없으니 허물이 아니나, 어렵게 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가 된다. TMI: 交:사귈 교, 害:해로울 해, 匪:아닐 비, 艱:어려울 간. 해로운 자들과 엮이지 않는 것은 허물이 아니다. 함부로 사귀지 않고 조심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부질없는 관계와 일을 정리하라는 거다.
'초구'는 득위했지만 실중한 위치이다. '구사'도 양이니 정응하지 못하고, '구이', '구삼'도 양이니 비(比)의 관계도 없다. 여기서 "무교(無交)"의 상이 나온다. <<주역>>에서 양은 긍정적, 음은 부정적인 속성으로 쓰인다. 억지로 관계를 맺기 위해 아무 하고나 사귀지 말라는 것이다. 동시에 해로운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뜻으로 확장하여 이해할 수도 있다. "간(艱)"은 아무나 관계하지 말고 분별없이 그들의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는 글자이다. "비구(비구)", 즉 '허물이 아니라는 것'은 '초구'가 득위하여 양이 양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득중하지 못해 아직 중도를 행하기에는 어려움이 잇지만, <건괘>에 속해 본래 성정이 바르고 굳건하기 때문이다. 타고난 양의 성정대로 하라는 것이다. 요약하면, 환하게 모든 것을 비추고 있는 "대유"한 세상에 백성에 해당하는 '초구'는 악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해로운 것에 사귐이 없어야 허물이 없다. 그러나 '초구'가 변하면 내괘가 <손풍(巽風, ☴>으로 세간(世間)의 풍문(風聞)을 따라 자기도 모르게 휩쓸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어렵게 하고 조심해야 허물이 없다. <<설괘전>> 제 7장에 "손입야(巽入也-손괘는 들어가는 것이다)"라 했다. 밖으로 드러내는 대신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내적 성장에 충실하는 것이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大有初九(대유초구)는 无交害也(무교해야)라"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대유의 초구는 해로운데 사귐이 없는 것이다' 이다. "대유초구(大有初九)"를 '이미 가진 것이 많은 초구'로 보는 이가 있다. 충분히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필요한 소유에 집착하지 않게 된다.소유의 상대성에 주목할수록 내가 가진 것이 적어 보인다. 그렇기에 더욱 소유를 추구하게 된다. 물질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점점 그것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이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는 자각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자각은 분에 넘치는 일을 도모하지 않도록 만들기에, 과도한 이익을 위해 해로운 자들과 연합하거나 해로운 일에 연계되지 않도록 막아준다.
'초구'가 동하면, 지괘는 제50괘인 <화풍(火風) 정(鼎)> 괘이다. 새로운 시대에 명을 베풀어 새로운 사회적 기틀을 만들어가는 데는 각자의 자리와 역할을 바르게 하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야 한다는 괘이다. <화풍 정> 괘의 <괘사>가 "鼎(정)은 元亨(원형)하니라" 이다. '정(鼎)은 크게 형통하다는 거다. 시작이 얼렵지 막상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무장하고 다시는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꾸준히 행동으로 실천하다 보면, 삶에서 번잡함은 점차 사라지고 정갈한 단순함만 남게 된다. 마치 현란한 인우이적 조명들로는 범접조차 할 수 없는 '햇빛의 맑음'처럼 말이다. 나는 금년의 사자성어로 '치둔입정(治屯立鼎)'을 택했다. 어려운 상황(屯)을 솥처럼 좋은 상태(鼎)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서 택한 것이다. 옛 솥은 발이 세개, 귀가 두 개이다. 세발은 협력과 균형을, 두 귀는 경청을 뜻한다.
2.
'구이'의 효사는 "九二(구이)는 大車以載(대거이재)니 有攸往(유유왕)하야 无咎(무구)리라" 이다. 번역하면, '구이는 큰 수레로써 실으니, 갈 바를 두어 허물이 없을 것이다'가 된다. TMI: 車:수레 거, 載:실을 재, 攸:바 유. 쉽게 말하면, 큰 수레에 가득 싣고 나아가지만 허물이 없을 것이다. 좋은 일이 가득 펼쳐질 것이다. 그러니 힘차게 나아가라. '구이'는 비록 음 자리에 양으로 있으나, 내괘의 중을 얻고 외괘의 육오 인군과 잘 응하고 있다. 내괘 <건천(乾天, ☰>의 중(中)에 있고, '구이'가 변하면 <이화(離火, ☲>가 되니 큰 수레의 상이다. <이(離, ☲>는 속이 비어 있는 상이어서 수레로 통한다. 따라서 "대유"한 세상에서 큰 수레에 지식과 경륜을 가득 실어 '육오' 인군의 명을 받아 천하사를 도모할 수 있으니, 갈 바를 두어 허물이 없는 것이다. "유유왕(有攸往)"은 제2괘인 <중지곤> 괘에서 처음 등장("군자유유왕")한 이후로 <<주역>>에 꾸준히 등장한다. '가는 바가 있다', '가는 바를 둔다'는 말이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大車以載(대거이재)는 積中不敗也(적중불패야)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큰 수레로써 실음은 가운데 쌓아서 패하지 않는 것이다'가 된다. TMI: 積:쌓을 적, 敗:패할 패. 유순한 '구이'는 '육오' 리더와 정응의 관계에 있는 득중한 자리이다. 본래 음의 자리에서 실위했지만 오히려 양으로 강건하니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고 잇는 '육오'의 뜻을 조화롭게 실행할 수 잇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현명한 사람이다. 득중했으니 정도를 지키는 우직함도 있다. 공자는 "적중(적중)"이라는 단어를 통해 지괘인 제30괘 <중화(重火) 리(離)> 괘의 상을 적확하게 시각화 했다. <중화 리> 괘는 큰 수레의 상이기도 하지만 마치 수레를 이중으로 쌓은 것과 같이 짐이 산더미처럼 한가득 실려 있는 수레를 형상(形象) 한다. 이토록 많은 물건을 싣고 나아가도 허물이 없고 짐도 떨어지지 않으니 부가 증가하고 일이 환하게 잘 풀리는 형국이 된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실제로 점을 쳐서 <화천 대유>의 '구이'가 동하는 괘를 얻는 것은 지괘가 <중화 리> 괘가 되기에 일이 <화천 대유> 괘의 '구이' 효사에서 <중화 리> 괘의 괘사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화천 대유>의 '구이'가 매우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잇지만, <중화 리> 괘의 '육이'가 동하여 지괘가 <화천 대유>의 '구이'로 변하는 방식이 실질적인 길함을 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중화 리> 괘의 <괘사>는 "離(리)는 利貞(이정)하니 亨(형)하니 畜牝牛(축빈우)하면 吉(길)하리라" 이다. 번역하면, '이(離)는 바르게 하면 이롭고 형통하다. 암소를 기르면 길할 것이다'가 된다. <중화 리> 괘의 <괘사>를 통해 우리는 <화천 대유> 괘 '구이'의 '허물없음'과 '패하지 않음'의 근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릇된 방법을 써서, 좋은 운을 만나서, 일시적으로 큰 부를 쌓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영혼이 척박하고 천박하면 많은 부도 한때의 회오리바람에 모래처럼 흩어지기 마련이다. 물질이 선사하는 안락과 쾌락에 젖어 살던 사람들에게 물질의 상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다가온다. 일시적인 부를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부질없는 부와 명예를 쌓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추억을 쌓아갈 황금보다 값진 일산의 시간들을 먼지처럼 흩뿌리는 어리석음을 태연히 저지르는 삶, 그런 삶을 벗어나야 한다. 수레에 탑처럼 쌓인 재물도 영원할 리 없다. <<주역>>은 말한다. 세계, 우주에, 인생에 영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3.
'구삼'의 효사는 "九三(구삼)은 公用亨于天子(공용향우천자)니 小人(소인)은 弗克(불극)이니라" 이다. 번역하면, '구삼은 공(公)이 천자에게 바침이니, 소인은 능하지 못한다'가 된다. TMI: 亨:제사드릴 향(享), 弗:아닐 불, 克:능할 극. 쉽게 풀이하면, 제후는 천자에게 바치지만, 소인은 해내지 못할 것이다. '소인의 태도를 버려 자신의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라'는 거다.
여가서 "공(公)"은 제후로 볼 수 있다. "천자(天子)"는 '육오"이다. '구삼'은 지방 제후에 해당하는데, 양이 양자리에 있고 중을 얻지 못하여 지나치게 강한 상태이다. '구아'처럼 '육오'와 정응하는 관계도 아니다. 변방에서 리더의 명에 따라 주어진 영역을 책임지고 다스려야 할 위치에 있다. '구이'와 같이 리더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도 아니다. 늘 견제의 대상으로서 주기적으로 공물을 바치며 충성을 증명해야 하니 괜스레 울화가 치밀기도 한다. 기회만 주어지면 한 번 판을 엎어 버리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한다.
'구삼'의 마음은 호괘에 잘 나타나 있다. 호괘가 <택천 쾌(澤天 夬)> 괘이다. 이 괘의 괘사가 "夬(쾌)는 揚于王庭(양우왕정)이니 孚號有厲(부호유려)니라. 告自邑(고자읍)이오 不利卽戎(불리즉융)이며 利有攸往(이유유왕)하니라" 이다. 이는 '조정에 알려 믿음으로 호소하는 것에는 위태로움이 있다. 도읍으로부터 명령을 하달하여 무력을 쓰는 것은 이롭지 않다. 나아가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란 뜻이다. <택천 태> 괘는 신뢰받지 못하는 불의한 '상육'을 결단하고자 하는 괘이다. 즉, <화천 대유> 괘의 '구삼'에게는 '육오'가 <택천 태> 괘의 '상육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음이 <택천 태> 괘의 상이다.
성군(聖君)이라도 자신에게 적대적인 개인, 집단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리더라도 반대 세력은 그를 깎아내리고 제거할 생각으로 가득하다. 오직 1인자가 되기를 추구하는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다른 제후들은 '육오' 리더를 잘 따르기에 공물을 바친다. 제후가 조정에 와서 공물을 바치던 일을 '내향(來享)'이라고 했다. 설사 자신의 생각을 숨기고 '내향'한다고 해도 천자가 있는 도성에 머무르다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구삼'은 아예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이것이 "소인불극(小人不克)"이다. 공자는 <소상전>에서 이를 "해(害)"로 표현했다. <소상전>은 "象曰(상왈) 公用亨于天子(공용향우천자)는 小人(소인)은 害也(해야)리라"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공이 천자에게 바치는 것은 소인은 해로울 것이다'가 된다. 소인이 '구삼', 즉 지방 제후 자리에 있다면 지나치게 강하여 '육오' 인군의 명을 어기게 되니, 나라를 해칠 뿐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된다는 거다.
그렇지만 '구삼'은 "대유"한 세상에 약한 '육오' 인군의 명을 받아 평화로운 세상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대유"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정책 중의 하나가 지방의 재정(財政)을 공정하게 모아 나라에 보태는 것이다. 그런데 '구삼' 자리가 중을 얻지 못하고 양 자리에 양으로 있어 지나치게 강하니, 만일 이런 자리에 소인이 있다면 유순한 '육오' 인군에게 재정을 보태기는 커녕 반역할 수도 있다. 이런 자리에 유순한 인군을 도와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것은 군자라야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상을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는 <수지 비(水地 比)> 괘 상육효에 “나라를 열고 가문을 이음에 소인은 쓰지 말라(開國承家 小人勿用)”고 하였다. '구삼'이 변하면 양이 음으로 바뀌면서 <화택규(火澤 睽)> 괘가 되니, 이 자리는 자칫 나라의 평화를 어긋나게 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상황이 어긋나 있어 서로가 흘겨본다는 뜻으로 ‘규(睽)’라고 하였다. 불통(不通)과 반목(反目)으로 인해 '구삼'이 어려운 지경에 놓이게 될 것을 암시한다.
4.
<화천 대유> 괘의 '구삼'에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배울 바가 있다. 사업가가 어느 정도 재물을 쌓으면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찾는 사람도 많아지니 자신감이 붙게 된다. 자기를 더 멋지게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커지게 된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발전이 가능한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해가 된다. 이른바 공인의 반열에 오르면 공인으로 서의 공적 역할도 요구 받게 되는데 자칫 자신에 삐끗하면 의도하지 않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되기 쉽다. 돈만 밝히는 사람, 구두쇠, 직원들이나 사회적 약자들에게 갑질 하는 사람 등 행동 하나만 어긋나도 순식간에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유를 흔히 목격하게 된다. 누군가의 사회적 성공 뒤에는 항상 성공의 이익을 공유 받고 싶어하는 자들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에 부응하지 않는 사람에겐 언제든지 적으로 돌변할 수 있는 자들이다. 때로는 자기 스스로의 행보로 인해 권력의 이해 관계에 엮여 인생을 그르치는 데에만 사용하면 되는데 돈을 넘어 명예까지 생기니 명예의 다른 속성인 권력까지 노리다가 삶을 그르쳤다.
그런 의미에서, <화천 대유>의 '구삼'은 사업가로서의 1차 목표를 달성하고 난 후, 소위 '스타'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멈추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돈의 무게에 명예와 권력이 얹어지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된다. 이미 재주와 돈까지 내려준 하늘은 원만해서는 명예와 권력까지 쥐어 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명예를 얻은 자에게는 어지간해서는 큰 돈까지 선물해 주지 않는다. 자신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 현명하게 자각해야 한다. 둘 다 추구하는 '소인'의 태도로는 해낼 수 없고 이길 수도 없다. 이를 "소인불극(小人不克)"이라 말했다.
사주 명리학에서는 인간 욕망의 범주를 '재색명리(財色名利)', 돈과 색 그리고 명예와 돈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 '재다신약(財多身弱)'이란 팔자가 나온다. '재물이 많으면 몸이 약해 진다'는 의미이다. '재다신약' 팔자를 가진 사람이 돈이 들어 오는 운을 만나면 죽는 경우가 있다. 아니면 감방, 부도, 이혼, 암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아니면 두세 개가 동시에 걸리는 수가 생긴다. "재다신약'은 돈 들어오는 해가 가장 겁나는 해라 한다. 그리고 '관고신약(官高身弱)'이란 말도 있다. '벼슬도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돈 많고, 지위가 높다고 부러워 할 일 아니다. 이런 팔자를 가진 사람이 명을 오래 이어가려면, 책과 공부 그리고 '호학지사(好學之士)'를 가까이 하라고 한다. '호학(好學)'이 자기 몸 약한 부분을 보강해 준다.
5.
인생은 비스킷 통이다. 아니 인생은 초콜릿 상자 같은 거다. 상자를 열기 전에는 뭘 집을지 알 수 없다. 어느 쪽이든 인생은 '신이 준 과자 상자'인 셈이다. 상자에 들어 있는 과자를 한 개씩 소중히 맛보는 거다. 기왕이면 '맛의 기준'을 조금 낮추고 과자를 하나씩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까?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 지금은 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어도 언젠가 내가 꽃을 피우면 사람들이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에 대해, 자신이 통과하는 계절에 대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흘러 결실을 맺으면 사람들은 자연히 알게 될 것이므로.
꽃 피어 야만 하는 것은, 꽃핀다/라이너 쿤체
꽃 피어야만 하는 것은, 꽃 핀다.
자갈 무더기 속에서도 돌 더미 속에서도
어떤 눈길이 닿지 않아도
[사진=박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