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사진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조문호 렌즈세상] 소리 없는 아우성

‘광화문미술행동’의 네 번째 깃발행진이 지난 1일 광화문광장 의정부 터에서 열렸다. 언제까지 이 깃발 행진이 이어질 지, 어떤 결과를 얻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바람 자락에 펄럭이는 예술가들의 염원만은 변치 않으리라,

그 날은 날씨마저 따뜻해 봄나들이 같은 깃발 행진이었으나, 하필이면 통풍이 도져 다리를 절룩이며 따라 나서야 했다. 전 날부터 왼쪽 발이 퉁퉁 부어 통풍 증세를 드러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더 심해져 깃발 행진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더구나 행사가 끝난 후 떠나기로 한 단양 여행 일정까지 차질이 생겨버렸는데, 일단 진통제부터 챙겨먹고, 병원 문 열기만 기다리다 다리를 질질 끌며 나간 것이다. 날씨가 추워 그런지 자동차 시동까지 걸리지 않아 애를 먹였는데, 다행히 오른쪽 발은 괜찮아 운전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매년 년 례 행사처럼 치루는 일이라 병원에서 주사 한대 맞고 처방해준 약만 먹으면 통증이 가라앉기에 계획대로 밀어붙인 것이다.

녹번동에 들려 정동지를 태워 나갔는데, 광화문 광장에는 일찍 나온 몇몇 분들이 행진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들 손자 재롱이나 지켜 볼 노인네들이 정신병자 한 사람 때문에 왜 이렇게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

깃발행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왔던 김진하, 김준권, 정복수, Mai Inaba, 이재민, 안상수, 이동환씨를 비롯하여 송 창, 정세학, 장경호, 류연복, 곽대원, 정영신, 채원희, 나종희, 박상희씨 등 많은 분들이 깃발행진에 힘을 실어주었다.

한 쪽에서는 서예가 김성장씨가 “눈이 녹으면 곧 봄이 오리니 내란 세력 청소하고 꽃놀이 가자.”는 거필 퍼포먼스를 벌였다. 류감석, 최문성씨를 비롯한 촛불풍물단이 울리는 농악이 흥을 북돋았고, 기 놀이꾼 여현수씨의 대형 깃발 놀이 또한 보는 이로 하여금 힘을 실어주는 깃발 아우성이 하늘을 휘감았다.

흥겹고 재미있는 볼거리가 날이 갈수록 더해져, 윤석렬 타도에 앞서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시민들의 축제 같았다. 잘 아는 작가들을 어디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만날 수 있겠는가?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치고 게 잡는 일에 다름 아니다. 몸이 아파도 나오는 재미가 바로 이런 데 있는 것이다.

다음 토요일에는 더 많은 분들이 참가하여 광화문 광장을 뒤집었으면 좋겠다. 몸이 불편해 참여하지 못하는 김정헌화백은 후원금을 보내주었고, 전주의 여태명 화백은 작품을 공개 경매에 붙여 그 작품 대금으로 작가들의 뒤풀이 비용을 부담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도 하던 작업을 접어두고 먼 길을 마다 않고 달려오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간절한 마음이야 어찌 모르겠는가 마는 쟁취한 민주주의마저 다시 짓밟힌 지난 정권의 무능을 다시 볼지 모르는 정국이라 마음이 편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권은 많은 국민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비판을 받아왔다. 촛불의 힘으로 당선 시켜, 총선과 지방 선거까지 압도적으로 몰아주었으나 그 어떤 개혁조치 하나 이룬 것 없이 결국 정권까지 넘겨주고 말았다. 다시는 정권을 잡을 수 없을 것 같던 수구 보수 세력을 다시 살려 준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어떤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죽 쑤어 개주는 꼴은 없어야 할 텐데, 신뢰할 만한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걱정이다. 권력에만 눈이 어두운 저질 정치인들이 득실거리지만, 대안이 없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인다. 하기야! 내란 범죄자를 석방하라고 미처 날 뛰는 국민도 있으니, 어찌 그들에게 부화뇌동하는 정치인이 없겠는가? 그런 쓰레기들을 말끔히 청소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빗자루 대신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다.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유치환 시인의 “깃발”이 생각나지만, 이상향에 대한 동경과 좌절이라는 뜻이 담긴 유치환의 ‘깃발’을 뛰어 넘는 희망의 깃발을 날리고 싶다. 그 희망의 깃발이 회오리처럼 강한 바람을 일어 켜 세상을 완전히 뒤집었으면 좋겠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유치환의 '깃발' 중에서)

[사진=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