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리더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1.
올해 처음으로 주말 농장에 갔다. 봄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흙이 헐거워졌다. 봄이 오면,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 봄의 흙이 헐렁해 지는 과정은 아름답다.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이 되면 다시 기온이 떨어져, 이 물기는 다시 언다. 그러나 겨울처럼 꽝꽝 얼어 붙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에 햇살이 다시 내리 쬐이면, 구멍 속의 얼음이 다시 녹는다.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이 조금씩 넓혀진다. 그 넓혀진 구멍들로 햇볕이 조금 더 깊게 스민다. 이런 식으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 봄의 흙은 헐겁다. 오늘 사진처럼 말이다.
[사진=박한표]
지난 2월 28일에 못다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 날 우리는 다음과 같은 6 가지의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볼 좋은 기회이고, 하나의 거울이다. 이제까지 1), 2), 3) 그리고 4)에 대해 이야기했고, 오늘 나머지에 대해 사유를 해본다.
1) 분노 조절을 못해 툭하면 화를 내고,
2) 공감 능력이 없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3) 자기중심적이라 공사 구별을 못하고,
4) 이기적이라 자화자찬 하는 일이 버릇이고,
5) 책임은 남에게 미루고,
6) 도덕 의식이 희박하여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다.
2.
노자가 말하는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톡 쏘는 맛은 없어도 은은하게 오래 맛이 남게 되어 있다. 왜 이렇게 싱겁고 맛없는 '도'가 세상을 평안하고 태평하게 할 수 있을까? 나열해 본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간섭하지 않기에 일반 국민은 무게감을 느끼지 못한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기에 자유롭게 자신의 색깔대로 살 수 있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자신의 공을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않기에 피로감이 적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늘 겸손하게 처신하기에 오히려 다른 사람이 그를 밀어주고 앞에 서게 한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욕망을 통제하기에 전쟁을 벌이지 않는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소박한 삶을 추구하기에 화려한 궁전이나 성을 쌓기 위하여 국민들을 동원하지 않는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지식을 숭상하지 않기에 경쟁하지 않고, 사람들의 뼈를 튼튼히 해주고, 그들의 삶을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어떤 작위나 강요도 하지 않는다.
- '도'를 실천하는 지도자는 겉으로 보기에 그리 멋있어 보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기에 더욱 존재감이 희박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존재감이 오히려 더욱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게 만든다.
그러나 '맛없는 맛'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맛'이 된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리더보다 소위 '보스'가 나와 더럽히고 있다. "보스와 리더는 엄연히 구별된다. 보스는 뒤에서 호령하지만, 리더는 앞에서 이끈다. 보스는 "가라!"고 명령하지만, 리더는 "가자!"라고 말한다. 보스는 겁을 주며 복종을 요구하지만, 리더는 희망으로 힘을 끌어낸다. 보스는 대화와 타협을 거부하지만, 리더는 대화하고 타협한다. 보스는 자기가 내뱉은 말을 쉽게 번복하고 부인하지만, 리더는 자기 말에 책임을 진다.
3.
우리는 성공의 이면에 숨어 있는 피땀과 분투는 보지 않고, 그의 행운만 부러워한다. '착실한 보폭'이 결여된 경지란 항상 우연에 기댈 수밖에 없다. 마치 절제된 행동과 학교 졸업 그리고 생계에 대한 책임을 배우지 않고,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착실한 보폭'만이 일관성과 지속성을 보장한다.
어떤 경지도 일관성과 지속성이 결여된 것은 운이 좋은 것에 불과하다. 품질이 들쭉날쭉 할 수밖에 없다. 순자가 말한 "적토성산(積土成山)"("권학편")이라는 말이 곧바로 머리에 떠오른다. "흙을 쌓아 산을 이루면, 거기에 바람과 비가 일어나고/물을 쌓아 연못을 이루면, 거기에 물고기들이 생겨나고/산을 쌓고 덕을 이루면, 신명이 저절로 얻어져서 성인의 마음이 거기에 갖춰진다."
도가 철학을 좀 아는 사람들은 '무위(無爲)'를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무슨 일이건 그냥 되어가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으로 이해하고는 '착실한 보폭'을 하수의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그건 지적인 게으름일 뿐이다. 어떤 개성도 '착실한 보폭'을 걸은 다음의 것이 아니면 허망하다. 허망하면 설득력이 없고, 높은 차원에서 매력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면 많은 일을 그냥 '감(感)'에 맡겨 해버린다. '착실한 보폭'이 없는 높은 경지란 없다. 꿈을 꾸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꿈을 이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 도덕 의식이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도덕적 압력'이다. 이 도덕 의식이 우리를 '선하게 한다'. 이 말은 프랑스 철학자 엠마뉴엘 레비나스의 '윤리적 주체'가 되라는 말과 같이 사용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윤리적 주체"란 타자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타자 중심적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어쨌든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최고의 덕목은 '선'이다. '선'이란 '나쁜 짓 하지 말고 살아라'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만 생각하고, 나의 욕심에 따라 나 밖의 것을 내 것으로 자기 화하지 말고, 타자에로의 초월로 타자가 보내는 호소에 응답하는 것이 '선'이다.
나쁜 사람은 '나 뿐만' 아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까 사적인 욕망보다 이를 위해 도덕적 양심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양심의 압력을 키워야 한다. 소크라테스가 평생 하고 싶었고, 했던 일도 '우리들의 영혼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는 방법'을 가르치려는 것이었다. 도덕적 압력의 유형이 세계마다 다르다.
▪ 동양(중국문명): 역사에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
▪ 서양(기독교문명): 기독교의 영원 불멸의 세계에서 영생할 수 있다는 사후 세계로의 구원을 위해,
▪ 인도문명: 업(카르마)로 설명한다. 카르마라는 행위에 대한 보상이라는 결과물이 지금의 나이고, 옛날의 업(행위)으로 지금의 내가 존재하니, 다음 생을 위해.
4.
도덕적 행위는 나와 타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시작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나와 타인이 서로 다르며,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는 서로의 본심에 가 닿을 수 없다는 전제가 없다면 선을 행하는 게 어려워진다.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행위를 바라볼 수도 없기 때문에, 사이코페스는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몰라 타자의 관점에서 사유할 수 없다.
사이코패스는 악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처럼 생각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감옥에 갇혀 있을 때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불쌍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이코패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래서 벌어진다.
소시오패스(sociopath), 즉 반(反) 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 외 자신을 잘 위장하며 감정 조절이 뛰어나다. 인생을 이겨야 하는 게임이나 도박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들을 이용할 타깃으로 생각한다. 매우 계산적이다.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사교적으로 보일 수 있다. 어릴 때 비정상적으로 잔인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재미 삼아 한다. 자신의 잘못이 발각되면, 거짓으로 후회, 반성을 하거나 동정심에 호소하면서 자신의 순진함을 강조한다. 거짓말을 하는 데 능숙하다. 일반인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들통날 까 봐 긴장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양심이란 사전 속 단어이기에 일말의 망설임이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5.
거짓말을 하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 거짓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된다. 하나의 거짓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한 방울의 구정물이 1,5리터짜리 큰 병에 담긴 물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 거짓은 그야말로 살아서 꿈틀거린다. 큰 거짓도 작은 거짓들로 이루어지고, 그 작은 거짓은 더 작은 거짓들로 이루어진다.
결국 가장 작은 거짓이 큰 거짓의 출발점이다. 거짓은 사실에 대한 잘못된 진술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인간을 사로잡으려는 모든 음모적 행위가 거짓이다. 무해하고 사소해 보이는 거짓의 겉모습, 거짓을 부추기는 약간의 교만, 거짓이 목표로 삼는 사소한 책임 회피, 이 모든 것으로 인해 거짓의 실체와 위험성이 감추어 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작은 거짓들이 가장 사악한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역시 감추어 진다. 거짓은 세계를 타락시킨다. 그것이 거짓의 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