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성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홍성 산중서재]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길을 만들기 위해 / 박성은
김미옥의 글쓰기 수업, <당신의 삶이 글이 될 때>를 읽고
- 당신의 이야기를 통해 길을 만들기 위해
누군가의 삶이 글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계속 그 물음을 되뇌었다. 우리의 삶이 글이 될 수 있을까? 그 글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한 인생이 글 속에 오롯이 들어온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처음 김미옥 선생이 책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자기 서사가 있는 사람이 모여 글쓰기 수업을 기획한다는 글을 페북에서 보았을 때 나도 거기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자기 서사’라는 말에 주눅이 들어서 하지 못했다. ‘자기 서사’가 있는 인생이란 얼마나 대단해야 하는가. 거기에 비해 나의 인생이란 그저 평범함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듣자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네 권의 작품을 읽고 자기 삶과 연관 지어 의견을 나누는 부분과 여덟 명이 쓴 ‘우리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부분이다.
우선 네 권의 책을 읽고 참여자는 ‘여성이기 때문에 더 깊게 느끼는 상처들’에 눈을 돌려 저마다의 아픈 상처를 바닥까지 드러내는 과정을 거친다. 책을 읽고 책 내용을 리뷰하고 감상을 나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책 읽기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꺼낸다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에르노의 책을 통해 솔직하면서 디테일한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객관적으로 한 발씩 떨어져서 자신을 관찰하는 글쓰기 과정으로 그가 가졌던 아픔이라든가 이런 것에서 벗어나면서 치유가 되고 불안이 사라지는 과정을 자기 이야기를 함으로써 밟아 나간다.
두 번째 책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으로 자기 이야기를 쓸 때 흔히 빠질 수 있는 과거로의 몰입이 아니라 자아와 분리, 과거의 나와 분리하는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자기 이야기를 쓸 때 박완서 작가처럼 현명하고 우아하고 교활하게 자기 이야기를 내 얘기가 아닌 것처럼 쓰는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와 자신과 연관된 부분과 연결 짓고 있다. 여덟 명의 여자들은 자신의 삶에서 맞닥뜨린 여성으로 살아낸 부조리하고 상처받은 삶의 내용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독서 감상과 나눔이 앞으로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내 삶과 동떨어진 그저 책의 내용에 대한 감상 나눔이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이끌어 낸 경험과 연관하여 깊이 있게 자신을, 주변을 돌아보는 것 말이다.
세 번째 책은 근대 여성 소설가인 김명순의 <사랑은 무한대이외다>였다. 사실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의 삶은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저항하는 기록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오로지 자신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운 여자이며 투쟁의 수단으로 글을 써서 존재를 열망한 사람들이다. 뼛속까지 가부장적인 한국 문단에서 김명순의 아픈 기록은 현대에도 그리 달라지지 않은 현실과 일치한다. 그를 통해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아야 역설적으로 자기 상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음을 나눈다.
네 번째 나혜석의 <여자도 사람이외다>를 통해 그 시대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여성의 글을 통해 시대를 거스르며 자기 얘기를 쓸 수 있는 ‘용기’에 대해 언급한다. 세상은 앞서가는 여성들에 대해 싸잡아 위험하다는 딱지를 붙여 매도했지만, 불편 부당한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나혜석의 글을 통해 고백의 제도에 의해 발견된 진정한 자기를 찾으려는 노력이 문학의 한 양상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네 편의 글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우리 시대 여성의 삶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건 겉보기일 뿐 실제로 안으로 들어가면 아직도 가부장적 사고의 그늘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네 권의 책을 읽고 깨닫게 된 것은 그럼에도 용기 있게 자신의 삶과 의지에 대해 쓸수록 그 그늘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의지와 용기를 장착하게 되는 법을 내면화하는 과정처럼.
결국 네 권의 책은 그 글의 작가가 가졌던 글쓰기의 방향성에 대한 탐구라고 생각되었다. 자기 이야기를 바닥까지 드러내되 분리하고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용기있게 쓰는 법을 알기 위한.
책의 후반부는 네 권의 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를 쓴 여덟 편의 글이다. 에세이의 형식이나 자전적 소설의 형식으로 쓴 각자의 이야기가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무언가로 머리를 치는 듯한 둔중함과 함께 다가왔다. 내가 알고 있던, 또는 몰랐던 여성의 삶이 펼쳐지는 자전적 이야기를 읽으며 뜬금없이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도 왜 세상은 변화하지 않고 여성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가 계속 쓰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도대체 언제쯤 길이 열릴 것인가.
이 답을 나는 한 분의 글에서 읽은 듯하다.
‘비틀비틀 넘어지고 쓰러지며 우리가 갔던 그 좁은 비탈은 이제 길이 된 것인가. 넓고 평평한 길이 된 것인가.’ (p326)
그랬다. 세상이 아직 변화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좁은 비탈길을 걸으며 써야 한다. 언젠가 도래할 넓고 평평한 길을 만나기 위해.
우리의 삶이 글이 돼야하는 이유이다. (출처 박성은)
#김미옥 #글쓰기수업#당신의 삶이 글이 될 때
[사진=김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