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사진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조문호 렌즈세상] 이젠 모르는 게 약이다.

광화문 깃발 행진에 이어 단양까지 간 강행군의 후유증으로 닷 세 동안 꼼짝도 못하고 낑낑거렸다. 통풍에다 몸살까지 겹쳐 죽는 줄 알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차마저 고장 나 오도 가도 못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가는구나” 생각하니, 죽기 전에 할 일이 있어 마음이 바빠졌다. 간신히 몸을 추스려 못 다한 일에 전념하려니, 시간 뺏어가는 페북부터 끊어야 할 것 같았다. 페북에 공개하는 마지막 소식일지도 모르겠는데, 근황을 알고 싶으면 네이브 블로그 ‘인사동이야기“를 방문해 주시기 바란다.

지난 토요일은 전활철씨와 단양 사는 화가 김재영씨가 운영하는 펜션 ‘소백산 가는 길’에 갔다. 날짜를 잘 못 잡아 광화문에서 열리는 미술행동 깃발행진과 겹친 데다 통풍까지 도져, 아무리 노는 것을 좋아하는 노세 라도 버거웠다.

병원부터 들려 오후 두시 부터 시작한 광화문 깃발행진을 끝내고 나니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웠다. 그 때서야 전활철씨를 태워 단양으로 떠날 수 있었는데, 소백산 목적지에 도착하니 봉화 신동여씨가 김재영씨 내외와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라 어두워 잘 몰랐는데, 아침에 보니 눈이 많이 내려 눈 치우느라 고생 많았겠더라. 일찍 출발했더라면 홍천의 양서욱씨 집에서 묵을 작정이었으나, 다들 이박 삼일은 힘에 부쳐, 양서욱씨 댁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

김재영씨가 준비해 둔 메기탕에다 활철씨가 가져온 홍어로 술상을 차렸으나, 보고 못 먹는 장떡에 불과했다. 금주령에다 통풍까지 도졌으니 어쩌겠는가? 그러나 메기탕 국물 맛은 끝내주었다.

달래가 들어가니, 잡 내가 싹 사라졌다. “진작 달래나 보지..” 엄청 맛있게 먹었으나 내 입 맛은 믿을 수가 없다. 청각은 물론 시각, 후각, 미각까지 다 잃어, 머리만 살아있는 시체에 가깝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술을 마셨으나 나는 술 대신 준비해 온 마구초 삼종을 꺼내 피웠는데, 키운 땅이나 종자가 달라 세 가지 모두 맛과 향이 다르고 약발도 달랐다. 마구초에 일가를 이룬 분들의 평가로는 별로 라지만, 거지 주제에 술처럼 질을 따질 처지는 아니잖은가?

반세기 동안 자급자족한 마구초는 예전에는 기호품이었지만, 이젠 내 몸을 지탱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약이다. 그리고 ‘대마불사주’는 내가 죽으면 문상객에게 내놓기 위해 담아 두었는데, 술 맛도 좋지만 관절에 특효다. 안동 김문연 박사 연구논문을 보고 담았는데, 약보다 술 맛에 반한 것이다. 그러나 금주령에 발목 잡혀 문상객을 위한 접대용으로 아산에 저장해 둔 것이다.

사실, 후배들은 술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귀가 어두워 유심히 지켜봐야 대략의 줄거리를 알아 챌 정도라, 마구초 이야기로 대신한 것이다. 보나 마나 다들 홀 애비를 자처한 궁색한 신세타령이었을 텐데, 건강에 빨간불이 켜져 술을 마시지 말라는 집 사람들의 성화를 어쩌겠는가?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알아 듣지 못해 다행이지, 만약 알아들었더라면, 메주알 고주알 다 까발렸을 것이다. 진즉부터 귀머거리였다면, 등 돌릴 사람도 없었을 텐데... 옛날에는 아는 게 힘이었지만, 이젠 모르는 게 약이다.

[사진=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