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1.
스님들이 식사 전에 드리는 기도를 알게 되었다. <오관게>라 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네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욕심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깨달음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쌀 한 톨이 네 입까지 오늘 과정을 기억하자는 것 같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도 소환한다. '쌀 한 톨에 농부의 땀이 일곱 근이나 들어 있다'는 말이다. 농부만 벼를 키운 게 아니다. 벼가 뿌리 내릴 수 있도록 한 흙, 벼에 수분을 공급해 준 비와 벼가 양분을 만들 수 있도록 내리쬔 햇살이 있었기에 쌀 한 톨이 우리들의 입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거다. 따라서 쌀은 인간과 자연의 합작 품이다. 한 톨의 무게는 큰 것이다. 쌀 미(米) 자를 풀면 숫자가 나온다. 88(八十八). 쌀 한 톨을 거두려면 농부의 손길이 여든 여덟 번이나 가야 한다는 의미다. 쌀이 귀하던 어린 시절, 아버지한테서 귀가 따갑도록 들은 얘기다.
[사진=박한표]
2.
지상의 끼니/이기철
종일 땀 흘리고 돌아와 바라보는
식탁 위 밥 한 그릇
나를 따라오느라 고생한 신발, 올이 닳은 양말
불빛 아래 보이는 저 거룩한 것들
한 종지의 간장, 한 접시의 시금치 무침
한 컵의 물, 한 대접의 콩나물 국
부딪치면 소리내는 한 쟁반의 멸치볶음
저것들이 내 하루를 이끌고 있다
내일도 저것들이 부젓가락 같은 내 몸을 이끌어갈 것이다
꽃나무처럼 몸 전체가 꽃이 될 수 없어
불꽃처럼 온 몸이 불이 될 수 없어
세상의 어둠을 다 밝힐 수 없는 이 한스러움
풀씨처럼 작은 귀로 세상을 들으려고
상처를 달래며 길 위에 서는 날도
밥상 위의 한 잎 배추 잎보다 거룩한 것 없어
긁히고 터진 손발을 달래며
오늘도 돌아와 마주 앉은 식탁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이 세상을 눈부시게 할 수 있는가
이 끼니 말고 무엇이 추운 생을 데울 수 있는가
어느새 神이 되어버린 식탁 위의 밥 한 그릇
3.
불교에서는 주는 행위 일체를 '공양'이라 한다. 밥 먹는 것 또한 몸에 생명력을 주는 것이므로 '공양'이다. 스님들이 식사하는 그릇은 '발우'라고 한다. 나무 그릇인 '발우'는 성불(成佛)을 이루기 위한 약이므로 꼭 필요한 만큼의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말한다. '발우 공양'은 단순한 식사 법이 아니라, 거룩한 의식이자 수행의 한 과정이다. 그래 '발우 공양'을 '법(法) 공양'이라고도 부른다. 스님들은 '발우 공양'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 제자로 살겠다는 서원을 되새긴다. 이 '발우 공양'에는 다음과 같이 크게 5 가지 상상이 담겨 있다.
1. 평등 사상: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모두가 차별 없이 똑같이 나누어 먹는다.
2. 청결 사상: 각자 먹을 음식만 발우에 덜어 먹는다.
3. 청빈 사상: 자신이 받은 음식을 조금도 남겨서는 안 된다. 공양 후에는 그릇 씻은 물까지 마셔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다.
4. 공동체 사상: 대중이 같은 곳에서 같은 때에 한 솥에서 만들어진 음식을 든다.
5. 복덕 사상: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 고생한 분들의 노래에 감사하고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맹세한다.
'발우 공양'을 들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자신이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다. 음식을 씹을 때는 씹기만 하고, 음식을 잡을 때는 잡기만 해야 한다. 한 번에 여러 동작을 해서는 자신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 지 알아차릴 수 없다. 흔히 사람들은 식사 때 허겁지겁 먹기에 바쁘다. 혀 끝에 군침이 고이면 저절로 양손이 분주해진다. 한 번에 한 가지 동작을 해야 음식을 탐하는 마음을 줄일 수 있고, 음식의 고유한 맛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천천히 식사를 해야 건강에도 좋다.
4.
위 그림을 보고, 7 가지 죄악에 대한 사유를 몇 일 동안 해 볼 생각이다. 오늘은 제일 먼저 '식탐'에 대한 사유를 공유한다. 현재 우리 사회를 정의하라면, ‘식탐 공화국'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겠다. 식탐의 조장자는 분명 방송과 SNS 이다. 언제부터 인가 연예인들이 나와 게걸스럽게 먹는 모습을 방영하더니, 이제는 정색을 하고 앉자 음식 품평회를 진행한다. 사적인 사람이라면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는 자신의 냉장고를 열고 만천 하에 공개한다. 심지어는 술을 마시며 벌건 얼굴로 주고받는 농담과 잡담을 온 국민들이 모여 앉아 몰입하여 듣는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의 공허함을 배로 채워줄 음식 배달 서비스가 핸드폰 한 통화에 가능하며, 심지어는 음식과 술로 인사불성이 되어도 내 차를 몰아 집에다 데려줄 대리운전 전화 보호가 라디오와 TV를 통해 항상 들린다. 우리가 스스로 IT 강국이라고 자부하지만, 그 민 낯은 이렇다. 대한민국은 게임, 음식, 대리운전, 음란 콘텐츠 그리고 댓글을 가장 쉽게 달 수 있는 ‘지상 천국'이다. 음주에 취한 '식탐 공화국'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못한 것이 있다. 인간은 절제하지 못해 결국 중독에 빠진다. 동물들은 필요 이상으로 먹는 법이 없다.
사자가 이미 배를 채웠다면, 그 옆에 어린 사슴이 지나가도 본 척도 안 한다. 동물은 약육강식이라는 대 원칙으로 살아가지만, 필요 이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연의 순환하기 위한 형평성을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몫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인간만이 탐닉(耽溺)하고 자신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악행을 자신에게 계속하고 중독(中毒)의 늪에 빠진다. 인간은 자신의 중독된 쾌락을 일깨우는 외부의 조그만 자극에 필요 이상으로 달려간다.
고대 성인들이나 사상가들은 항상 일상 중 ‘식사(食事)의 엄중함'을 경고해왔다. 우리의 일상은 아침, 정심, 그리고 저녁이라는 식사 의례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 구분을 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면, 결국 반복된 식사 습관으로 나는 중독되기 마련이다. 붓다나 예수와 같은 성인은 음식을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음식은 자신들이 가고 싶은 목적지로 가기 위한 비상식량이다.
이들은 모두 일상에서 ‘금식(禁食)을 수련 하라고 조언한다. 인간은 금식할 때, 자신의 몸에 집중한다. 무슬림들이 매년 라마단 한 달 동안 ‘금식(禁食)'을 수련 한다. ‘라마단’이란 단어는 아랍어에서 ‘(몸 안에 있는 찌꺼기를) 제거하다, 태우다’란 의미의 ‘라미다(ramida)'에서 유래했다. 이슬람신앙을 지닌 사람이라면 일생에 한번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메카에 가서 일주일 동안 ‘금식’을 통해 자신을 심오하게 바라 보아야한다. 무슬림들은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세 가지 행위를 금지한다.
먹기, 마시기, 그리고 성행위. 이 세 행위의 특징은 본능적이다. ‘금식’을 아랍어로 ‘짜움’이라고 부른다. '짜움'의 깊은 의미는 ‘습관적인 행위를 관찰하여 하지 않기’ 이다. 무슬림들은 금식을 통해, 음식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음식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한 톨의 쌀이 자신에게 오기까지 햇빛, 비, 공기, 농부의 수고, 가족의 요리를 총체적으로 기억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다. 그 뿐만 아니라, 금식은 ‘자비(慈悲)'를 함양하는 시간이다. 주변에 음식을 먹지 못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기억하여 연민의 정을 마음속에 만들고 그들을 위해 봉사할 것을 스스로에게 약속하는 시간이다. 그들은 결심한다. 자신이 필요이상으로 먹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5.
[사진=박한표]
다음은 위의 그림에 대해 살펴 본다. 위 그림은 '식탐' 대한 그림이다.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가 그린 것이다. 제목은 <일곱 가지 죄악과 네 가지 마지막 것들이 그려진 탁자>(1500년 경)이다. 여기서 '네 가지 마지막 것들'은 임종, 최후의 심판, 천당 그리고 지옥에 대한 묘사이다.
이 그림은 단테의 <<신곡>>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간주한다. 단테에 따르면, "연옥"은 그 둘레를 한 바퀴 둘러싸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일곱 개의 테라스형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그 계단에서는 맨 아래부터 각각 "오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색욕'의 죄악을 저지른 죄인들이 서로 다른 형벌을 받고 있다. 단테는 이 7 가지 죄악의 경중을 순서로 표시했다. 오만을 가장 무거운 죄로, 색욕을 생대적으로 가장 가벼운 죄로 정했다. 보스는 그 경중을 따지는 안 했다. 참고로 단테의 "지옥"에서 언급된 죄악은 8 가지였다. "색욕, 탐식, 탐욕, 분노, 이단, 폭력, 사기, 배신"이었다.
그림의 한 가운데에 묘사된 원은 하느님의 눈의 동공을 상징한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며"(시편 121-4) 모든 것을 살피시는 하느님의 눈동자를 상징한다.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무덤에서 일어나는 장면이 십자가와 함께 그려져 있다. 그는 로마 병사의 창에 맞아 생긴 오른 쪽 옆구리 상처를 오른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 동공 밑에 라틴어로 "Cave Cave Deus Videt(Beware, Beware, The Lord Sees)"라고 쓰여 있는데, "조심하라, 조심하라, 신이 보고 있다"라는 뜻이라 한다.
그리고 이 동공 주위로 7 가지의 큰 죄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죄 명이 적혀 있다.
▪ 식탐(Guka, Gluttony)
맨 위의 그림이 '식탐'이다. 술에 취한 듯한 사람이 술 항아리를 통째로 들고 탐욕스럽게 마시고 있다. 그는 무릎이 다 해진 옷을 입고 있을 만큼 자신을 관리하지 못한다. 그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그를 마시고 있다. 그리고 가운데 식탁에 앉아 있는 뚱뚱한 사람은 왼손에는 닭 다리를, 오른 손에는 술잔을 들고 있다. 그는 그저 먹는 데에만 몰입해 있다. 닭 다리를 뜯고 있는 그를 향해 손을 뻗은 어린아이 역시 뚱뚱하다. 옷은 남루하고 신발은 허름하다. 그의 오른 편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많이 먹는 것이 삶의 목표인 남편을 위해 삶은 닭 한 마리가 통째로 담긴 접시를 들고 온다. 그림 아래에 "굴라(gula)"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다. 이 말은 '음식을 씹지 않고 삼키다'라는 의미의 라틴어 동사 '굴루티레(glutire)'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음식을 음미하지 않고 급하게 목구멍으로 삼키는 행위를 뜻한다. 폭식을 의미하는 영어 '글러트니(gluttony)'는 이 단어에서 나왔을 것 같다.
▪ 태만(Alccidia, sloth)
게으른 한 사람이 한낮인 데도 벽난로 앞 의자에 앉아 졸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도 그만두고 수녀가 오는 것도 전혀 모른 재 졸고만 있다. 그는 너무 게으른 탓에 생업에도 영적인 일에도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이 그 시대에 비해 구식인 것도 그는 얼마나 게으른 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앞쪽에 있는 개마저도 자고 있다.
▪ 색욕(Luxuria, Lust)
잘 차려 입은 두 커플이 화려한 분홍색 텐트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다. 텐트의 분홍색은 홍등가를 상징한다. 그림 오른 쪽에서 광대 두 명이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야릇한 몸짓으로 공연을 벌이고 있다. 광대의 본질도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색욕을 상징한다. 앞쪽에 놓여 있는 악기와 술병도 마찬가지이다.
▪ 오만(Superbia, Pride)
어떤 여인이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안중에 없는 듯 등을 돌린 채 악마가 들고 있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경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녀의 방에는 화려한 가구들과 값비싼 도자기들이 비치 되어 있다.
▪ 분노(Ira, Wrath)
두 농부가 주막집 앞에서 분노에 휩싸인 채 칼을 들고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다. 주막집 주인인 듯한 여인이 오른쪽 농부를 말리고 있다. 왼쪽 농부는 이미 가구로 얻어 맞은 터라 머리에 피를 흘리고 있다.
▪ 시기(Invidia, Envy)
어쩐 부부가 자신의 집 현관에 서서 왼손에 사냥용 매를 올려 놓은 채 짐을 맨 하인을 앞세우고 가는 어떤 부자를 시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집 창가에 있는 그 부부의 딸은 자신에게 장미꽃을 바치며 구애 하는 남자와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의 관심은 온통 그 남자가 허리에 차고 있는 불룩한 전대에만 쏠려 있다.
▪ 탐욕(Avaricia, Greed)
어떤 소송에서 부정직한 판사가 피해자의 말에 짐짓 정성을 다해 귀 기울이는 척하지만, 뒤로는 교활하게 피해자에 의해 소송을 당한 사람에게서 뇌물을 받고 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은 판사가 뇌물을 받는 것을 보고도 본체만 체 한다.
6.
이젠 그림의 구석에 있는 <네 가지 마지막 것들>을 살펴본다.
▪ 죽음
신부가 임종을 앞둔 죄인에게 종부 성사를 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방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죽음(death), 악마, 천사가 문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해골 모습을 한 죽음이 그에게 화살 촉을 향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천사와 악마는 그가 숨을 거두자 마자 그의 혼령을 놓고 한 판 싸움을 벌일 참이다.
▪ 천국
구원을 받은 자가 찬국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 천사가 찬국으로 들어서는 어떤 여인을 끈질기게 유혹하는 악마를 제지하고 있다. 그들은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찬사들과 성인들의 환영을 받는다. 오른쪽에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바로 성인이다. 또한 천국 오른쪽에는 문지기 격인 성 베드로가 서 있다.
▪ 심판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비슷한 최후의 심판의 한 장면이다. 그림 중앙에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 있으며 사방에서 천사가 호른을 부르고 있다. 그러자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깨어 일어난다.
▪ 지옥
지옥에 떨어진 죄인들이 그곳에서 7가지 대죄에 따라 악마 들로부터 각각 다른 형벌을 받고 있다. 가령 그림 맨 아래쪽에서는 악마 하나가 어떤 여인에게 거울을 들어 보이며 그녀가 생전에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여인은 아마 위의 일곱 가지 대죄에 대한 설명에 등장했던 거울을 보며 오만의 범죄를 저지른 바로 그 여인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