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천명을 따르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1.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된다. 겨울은 아직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는지 한기를 뿜어내고 있지만, 봄은 물러설 것 같지 않은 겨울을 헤치고 따스한 빛으로 찾아올 것이다. 이번 주는 <<주역> 함께 읽기를 하지 안 했다. 춥다는 핑계로. 제13괘인 <천화 동인> 괘를 읽을 차례인데 말이다. 대신 이 번주에 제12괘인 <천지 비> 괘의 나머지를 정리하여 공유한다. 오늘은 '구사'의 <효사>부터 읽을 차례이다.

2.

우선 지금까지 읽은 괘들의 괘사를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시작한다.

▪ 제1괘 <중천건>: 자강불식(自强不息) - 천지의 운행이 쉬지 않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노력하라.

▪ 제2괘 <중지곤>: 후덕재물(厚德載物) - 대지가 모든 만물을 싣고 있듯이 두터운 덕으로 만물을 포용하라.

▪ 제3괘 <수뢰둔>: 창세경륜(創世經綸) - 우리는 천지가 열리니 만물을 창조하고 세상을 일으켜 천하를 다스리라.

▪ 제4괘 <산수몽>: 과행육덕(果行育德) - 바름을 기르기 위해 과감히 행하고 덕을 길러라.

▪ 제5괘 <수천수>: 음식연락(飮食宴樂) - 밖에 험한 상황이 있으니 안으로 힘을 기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다리라.

▪ 제6괘 <천수송>: 작사모시(作事謀始) - 상황이 어긋나 분쟁의 기미가 있을 때 전체의 정세를 잘 판단하고 일을 도모하라.

▪ 제7괘 <지수사>: 용민휵중(容民畜衆) - 전쟁 등 큰 일을 수행하기에 앞서 백성을 용납하고 각자의 역할에 맡는 기량을 습득하도록 훈련하라.

▪ 제8괘 <수지비>: 건국친후(建國親侯): 전쟁이라는 고통을 딛고 천하를 평정하여 나라를 세우니 올바른 재상을 등용하고 지방 제후를 친히 하라.

▪ 제9괘 <풍천소축>: 의문축덕(懿文畜德) - 문명과 문화를 아름답게 하고 덕을 길러라.

▪ 제10괘 <천택리>: 변정민지(辯定民志) - 밟아 온 이력과 역사를 보아 백성의 뜻을 잘 분별하여 정하라.

▪ 제11괘 <지천태>: 보상천지(輔相天地) - 천기와 지기가 잘 교류하여 천하가 태평하듯이, 사회 각계각층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하여 국가사회의 평화와 안전을 도모하라.

▪ 제12괘 <천지비>: 검덕피난(儉德辟難) - 태평한 시대가 지나가고 어렵고 비색한 때가 오면, 어지러운 세태에 영합하여 부를 누리지 말고 어려움을 피하라.

3.

'구사'의 <효사>는 '九四(구사)는 有命(유명)이면 无咎(무구)하야 疇(주) 離祉(리지)리라" 이다. 번역하면, '구사는 천명을 두면 허물이 없어서, 동무(무리)가 복에 걸릴 것이다' 이다. TMI 疇:밭두둑 주·무리(동무) 주·같을 주, 離:걸릴 리, 祉:복 지. '천명을 따르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백성들도 하늘의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거다. 때가 왔다. 아랫사람들을 잘 이끌고 윗사람을 잘 보좌하여 뜻을 이루라 한다.

<천지 비> 괘의 외호괘가 <손풍(巽風), ☴>이고 구사가 변해서 외괘가 또 <손풍 ☴>이 되니, 하늘의 명(天命)을 두는 자리이다(<중풍 손(重風巽)> 괘 : "申命行事(신명행사)"). <손(巽) ☴>은 바람(風)이고 바람은 하늘에서 부는 것이니 하늘의 명(命)으로 통한다. 내괘에서 음유(陰柔)한 소인이 세(勢)를 얻었으니, 군자로서 어찌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손하게 때를 기다리면 허물이 없고, 때가 되면 뜻을 같이 하는 무리와 더불어 명을 행하여 복을 받게 된다.

여기서 "주(疇)"는 '밭이랑', '밭두둑'이라는 뜻이다. 내괘인 <곤괘>에서 '밭(田)'의 의미가 나온다. <곤괘> 전체가 밭이니, '초육', '육이', '육삼'은 밭 고랑을 사이에 두고 두둑하게 흙을 쌓아만든 이렁의 상이다. 즉 패거리를 이루어 활개치고 다녔던 소인들의 무리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다름 아닌 백성들이다. 시대를 잘못 만나 정체성을 훼손당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백성들인 것이다.

그리고 <<설괘전> 제11장에서 "리위건괘(離爲建卦)", <리괘>는 건괘가 된다고 했고, <<설괘전) 제7장에 "<리괘>는 걸리는 것(離麗也)"이라고 했다. <리괘>의 물상 중에 태양이 있다. 태양은 하늘에 걸려 있다는 것이다. '구사'부터 <건괘>의 시작이나 <곤괘>의 위에 <건괘>가 걸려 있는 상이다. "지(祉)"는 하늘이 내리는 '복'의 의미이니 직역하면 '백성들에게 하늘의 복이 걸리는 것'이다. '복을 받는 것'이다. 그 까닭은 '육삼'이 "잠깐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육삼'의 각성에도 변화할 줄 모르고 '육삼'을 떠나지 못하도록 옭ㅇ맸던 '초육'과 '육이'에게도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

'육삼'은 '구사'와 상비(相比) 관계에 있다. 혼자 힘으로는 내괘 <곤괘>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는데 '구사'가 이끌어 주니 가능해진다. '초육'과 '육이'도 각각 '구오', '상구'와 정응하게 되어 '육삼'의 걱정을 비로소 이해하고 하늘의 뜻에 동화된다. '구사'가 '육삼'과 만나 섞이기 시작한 덕분이다. '구오' 리더의 뜻을 받드는 '구사'는 딴 세상에 사는 고고한 대신, 간부인 것처럼 행동하지 않고 백성들, 아랫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현명한 사람은 없다. 난세에 먹고 살기 급급한 백성들일수록 돈과 완장에 혹하는 법이다. 먹을 것을 주고 사람 대접까지 해주니 저지르는 짓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우르르 몰려다니며 흉악한 짓을 하게 된다. 하지만 참된 군자를 만나면 각성하게 되는 것이다. 나쁜 짓에 쏟았던 에너지를 좋은 일에 더욱 열심히 쏟아붓게 된다.

'구사'는 '구오'의 뜻을 따른다. '구오'는 하늘을 대리하여 덕으로 땅 위의 백성들을 다스리니 '구오'의 뜻을 따르는 것은 곧 "천명(天命)"을 따르는데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주권자인 국민들이 "천명"을 따르는 한, 잠시도 쉬지 않고 역사의 반동을 꾀하는 악의 무리는 점차 소멸하고, 국민들이 하늘의 복을 받는 아름다운 사태가 서서히 도래할 것이다.

'구사'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有命旡咎(유명무구)는 志行也(지행야)라"이다. '상전에 말하였다. 명을 두어 허물이 없음은 뜻이 행해지는 것이다.로 읽으면 된다. '때가 되면 '구사'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거다. '구사'가 동하면, 지괘는 제20괘인 <풍지 관(觀)> 괘이다. 크게 보고 세상의 동태와 민심의 동향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괘이다. '대관(大觀)'과 통찰의 괘이다. <풍지 관> 괘의 '육사의 효사가 "六四(육사)는 觀國之光(관국지광)이니 利用賓于王(이용빈우왕)하니라" 이다. '육사는 나라의 빛을 보니, 왕에게 손님됨이 이롭다'란 뜻이다. 세상을 크게 잘 헤아리니, 나라의 재상이 되어 백성을 다스릴 수도 있다는 거다. 한 단계 더 상승하여 나라 전체의 빛을 본다. 이 정도로 세상을 보는 경지에 이르면 천상계의 신명(神明)이 손님으로 대접한다는 거다. "나라의 빛을 본다(觀國之光, 관국지광)"는 것은 '나라의 정치를 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터득했다는 의미'이다. 사심 없이 천명을 따르면 세상 이치에 환하게 될 것이고, 하늘의 뜻이 군자를 통해 땅에 구현될 것이다.

4.

'구오'의 효사는 "九五(구오)는 休否(휴비)라. 大人(대인)의 吉(길)이니 其亡其亡(기망기망)이라아 繫于苞桑(계우포상)이리라" 이다. 번역하면, '구오는 비색함을 쉬게 한다. 대인의 길함이니 그 망할까 그 망할까 하여 우묵한 뽕나무에 맬 것이다'이다. TMI 休:쉴 휴․그칠 휴, 繫:맬 계, 苞:더부룩이날 포·밑(뿌리) 포·쌀 포, 桑:뽕나무 상. 막힌 것이 잠시 풀리니 대인에게 길하다. 잊지 않도록 우거진 뽕나무에 매어 두라는 거다. 좀 다르게, '막힌 것이 일시적으로 풀린다. 힘들었던 시절의 마음을 망각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구오'는 외괘에서 중정(中正)한 대인으로 천하의 흐름을 볼 수 있는 자이다. 소인이 득세하고 있는 비색한 세상이니 '구오'는 왕이라 할 수는 없다. 비색한 세상에 중정한 대인이 비록 바른 정치를 행할 수는 없지만, 그 비색한 상황을 사라지게 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비색한 세상이 그칠 때가 왔으니 대인의 길함이 있고, 아울러 세상이 비색해져 망할 듯 하여도 대인은 나라와 민족과 백성의 근본을 단단한 뽕나무에 메어서 다음의 태평한 세상을 이끌어 간다.

외호괘 <손괘>에서 '휴(休)'의 상이 나온다. <손괘>는 '나무이다(巽爲木, 손위목). 음목(陰木)이다. <손괘>는 또 장녀이니, 나무 아래에서 사람이 쉬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손괘>는 '나아가고 물러나는 것(巽爲進退, 손위진퇴)'이 된다. 따라서 "비(否)"의 상황은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니다. 일시적으로 그친 것이다. 막힌 것이 잠시 풀린 것이다.

언제든 다시 "비(否)"의 시절로 퇴보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음을 말하는 표현인 것이다. 그 이유는 아직 '육삼"과 "상구'가 정응하는 시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일 상효가 음이라면 폐색의 기운이 완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다시 자라날 수 있게 된다. 막힌 것이 일시적으로 풀리니 대인에게는 길할 수밖에 없다. 소인들이 날뛰던 세상에서 대인들은 숨죽이며 몸을 낮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其亡其亡(기망기망)"에서 "망(亡)"을 '망하다'로 대부분 해석하는데, '망(망)'으로 읽어 '비(否)의 시절이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는 것으로 보자는 이도 있다. 나도 동의한다. 그 시절의 세상 모습이 얼마나 비극적이었는지 망각하는 것으로 읽자는 거다. 사람은 망각의 도움이다. 변화된 환경에 젖다 보면 이전의 절절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그 마음을 아지 않도록 튼튼한 뽄나무에 잘 묶어 두라고 비유했다. 뽕나무는 뿌리가 단단하고 줄기와 껍질도 매우 질기기 때문이다. '육삼'에서 보았듯이, "계(계)'도 <손괘>의 상에서 나온다. '노끈'의 의미가 <손괘>에 있다. "비(否)"의 세상이 잠시 멈춘 시기, 뽕나무 그늘 아래에서 대인이 '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의 마음을 뽕나무 기둥에 징징 감고 있는 장면이 그려진다.

무엇보다도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현존할 때 망할 것을 잊지 않고, 잘 다스릴 때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 것이 몸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보전하는 지혜일 것이다. <<계사 하전>> 제5장에서 공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위태할까 하는 자는 그 자리를 편안히 하는 것이요, 망할까 하는 자는 그 존함을 보존하는 것이요, 어지러울까 하는 자는 그 다스림을 두는 것이니, 이런 까닭에 군자가 편안하되 위태함을 잊지 않으며, 존하되 망함을 잊지 않으며, 다스리되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이로써 몸이 편안하여 국가를 보존할 수 있으니, 역에 이르길 ‘그 망할까 그 망할까 하여 더부룩한 뽕나무에 맨다’고 하였다.”(子曰 危者는 安其位者也오 亡者는 保其存者也오 亂者는 有其治者也니 是故로 君子 安而不忘危하며 存而不忘亡하며 治而不忘亂이라. 是以身安而國家를 可保也니 易曰 其亡其亡이라야 繫于苞桑이라하니라.) '망할 망(망)'과 '잊을 망(망)'이 함께 쓰이고 있다.

'육오'의 <<소상전>>은 "象曰(상왈) 大人之吉(대인지길)은 位(위) 正當也(정당야)일새라" 이다. 번역하면, '상전에 말하였다. 대인의 길함은 자리가 바르고 정당하기 때문이다'가 된다. 대인에게 길한 이유는 자리가 정당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구오'는 '중정'한 자리이다. '구사'는 '초육'과 정응하고, '구오' 리더는 '육이'와 정응하니 이제 폐색(閉塞)의 기운이 거의 다 줄어들었다. 아래의 백성들이 대인의 뜻에 감화되었기 때문이다.

'구오'가 동하면, 지괘는 제35괘인 <화지(火地) 진(晉)> 괘이다. 땅 위에 해가 솟아오르듯이,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절제 속의 전진을 이야기하는 괘이다. <화지 진> 괘의 '육오' <효사>가 "六五(육오)는 悔 亡(회망)하란대 失得(실득)을 勿恤(물휼)이니 往(왕)애 吉(길)하야 无不利(물불리)리라" 이다. '육오는 뉘우침이 없어질 것인데 잃고 얻음을 근심하지 말 것이니, 감에 길해서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란 뜻이다. 후회가 없을 것이다. 잃고 얻음을 걱정하지 말라. 나아가는 것이 길하다. 이롭지 않음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회망"을 '망각을 뉘우치라, 망각을 스스로 꾸짖으라'로 읽으면 '잊지 말라'는 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이 없듯이, 과거를 망각한 개인에게도 미래는 없다. 생각할수록 통탄 스럽고 부끄럽고 후회 막심해도 모두 지금의 우리, 현재의 나를 만든 소중한 자양분이다. 그 시절을 잊지 말아야 하다.

5.

마지 막 '상구'의 <효사>는 내일 읽는다. 봄을 기다리면서.

봄을 위하여/천상병

겨울만 되면

나는 언제나

봄을 기다리며 산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젠 봄기운이 화사하다.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다"고 했는데

내가 어찌 이 말을 잊으랴?

봄이 오면

생기가 돋아나고

기운이 찬다.

봄이여 빨리 오라.

[사진=박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