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역사학자, 시인, 탐험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기고 윤명철] 왜 인간은 아름다움(美)를 발명하고 누려왔는가?
밤새껏 펑펑 내리던 눈들이 잠시 멈춘 듯해 서둘러 들판으로 나갔습니다. 얼음이 깔린 강물 위로 눈들이 쌓여 묘한 곡선을 이루고, 그 선 사이를 흰 백로, 까마귀 등이 서성이는 중입니다. 청둥오리는 보이질 않고, 기러기들은 살진 몸뚱이로 하양게 쌓인 논에서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군데 군데 버려진 채 녹슬어가는 경운기나 쟁기차들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손가락을 꼽아봤습니다. 얼마나 긴 세월동안 이런 아름다움을 누려왔는가를. 고마운 일입니다. 존재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지요. 오늘도 또 바라보면서 감탄합니다만, 물기 빠진채 축 늘어진 밭에 남겨진 파잎들도 아름답거든요. 만약 인간이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니 인식하고 느끼지 못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겠지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그 중 중요한 것이 아름다움을 느낄줄 알고, 찾아다니고, 만들어 내는 마음과 행위입니다.
저는 그래서 아름다움을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이런 것을 인식하게끔 만든 인류의 역사에 경의와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럼 인간은 언제부터 아름다움 즉 ‘미(beauty)’라는 것을 인식하거나 또는 만들었을까요? 어쩌면, 아니 사실은 제가 생각하고 사용하는 ‘아름다움’과 ‘미’는 아마 다른 점이 많이 있을 겁니다. ‘beauty’와는 더더욱 다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미라는 용어와 beauty라는 용어를 적당하게 섞어 가면서 우리의, 또는 저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고구려의 미를 찾아보려 합니다.
언젠가 말씀드린 것인데, 저는 인간이 미를 발명한 사건은 유인원과 결별한 계기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결별한 후부터 발전된 능력이라고 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류가 언제부터 미의식을 가졌는지는 사실은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미는 사람과 대상의 만남이니까 시대마다, 사람마다 표현양식이 다르지요. 소쉬르(F. Saussure)가 기호학에서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을 들고, ‘시그니피앙(signifiant)’과 ‘시그니피에(sinifie)’를 끌어와 기호를 해석하는 방식에 주의를 준 것처럼 당연히 지금의 기준으로 미를 평가하거나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소위 문명화된 이후에 만들어진 일반적인 평범한 ‘미’의 기준을 적용한다 해도 인간이 ‘미’를 인식한 것은 70만 년 전까지는 올라갑니다.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그 무렵에 이미 신앙과 미의식을 동시에 표현한 조각품들을 제작한 겁니다. 인간을 포함한 자연물을 모방하고, 물론 1차 가공한 정도의 수준이지만 일단 창작과 재현을 시도한 것입니다. 약 7만 년 전에도 이미 색을 입힌 조개목걸이나 장식품들을 만들었던 증거들이 아프리카 남쪽 불롬부스 동굴에서 발견됐습니다. 다들 알다시피 4만 년 전부터는 깜깜한 동굴속 깊은 벽에 찬란한 그림들을 그렸고, 돌멩이나 바위에는 암각화를 새겼습니다. 이어 흙을 빚거나 돌, 나무, 등을 깎아서 다양한 종류의 조각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25000년 전에도 인간은 토기를 빚어 불에 구워 형태가 다양하고 색깔도 다채롭고, 화려하면서도 단단한 예술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이어 본격적인 신석기시대에 이르면 모든 도구들이 발달하고, 불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고, 손가락의 기능도 발달하여 아름답고,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드는 토기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사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산을 다녔고, 대학교 때부터는 산이나 동굴, 강, 그리고 바다에 이르기까지 전문적으로 다녔습니다. 특별한 상황에서 특별한 형식으로 자연을 만나고 겪다보니 자연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지나칠 정도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러다 보니 시인으로서 ‘미’를 주제나 소재로 삼은 시들을 발표했고, 역사학자로서 현장 답사를 자주하며, ‘생태 역사학’, ‘터이론’ 등 역사이론에도 응용을 해 온 편입니다.
저는 여기서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미’에 관한 저의 이론을 말합니다.
미의 창조와 미의식에 영향을 끼친 ‘생태환경 변화’의 역할입니다. 신석기 시대는 지질학적으로 빙하기가 끝나고 간빙기에 들어서는 시점입니다. 온도가 올라가면서 얼음과 눈이 녹고, 대지에 물이 차오르면서 호수와 강이 생겼습니다. 온갖 풀들과 나무들이 새롭게 태어나거나 잘 자라고, 온갖 종류의 동물들이 새로 나타나거나, 많아지고, 형태도 달라졌습니다. 물이 흘러 들어가 바다는 더 넓어지면서 물고기들이 더 생겨나고, 해초들도 더 풍성해졌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은 곳을 돌아 다니게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겠습니까? 여러분들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사고를 할 수 있는 생물학적인 능력도, 예를 들면 ‘뉴런(neuron)’이 더 많이 발달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지요. 빠르게 신장했을 겁니다. 더구나 먹기 위해서 존재하는 상황은 면하고, 한숨 돌리며 쉬고, 때로는 놀이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긴 것이지요. 그 밖에도 신석기 시대로 변하면서 인간이 바라보고 누리는 미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해졌겠습니까? 이제는 비교적 단순하게 자연을 모방하는 정도를 넘어 조금 다른 형태로 변화를 주거나 아예 창작을 하는 수준까지 됐습니다. 고도로 다양한 상징과 부호들이 표현된 장식물을 만들고, 색깔을 인공적으로 만들고, 물건이나 건물 등의 크기도 이제는 자신들을 넘어서는 거대한 규모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미(美, beauty)’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사실 미를 구성하는 요소, 미의 주체와 대상인 요소들은 다양합니다. 행위의 주체는 기질, 능력, 자연환경, 역사 경험을 토대로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개체 요소로서는 선, 색, 형태, 동작, 소리, 위치(장소), 배열 및 배합 등이 있습니다. 미란 무엇인가를 살피려면 우선 미의 본질인 주제(theme)와 동기인 의미(Meaning)가 중요합니다. 미를 낳게하고 존재하게 만드는 문화적인 맥락(cultural context)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연한 것이지만 역사적 사건과의 연관성도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의 창조와 평가는 독자적으로 존재하거나나 생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체와 전체의 유기성처럼 주체와 대상의 관계도 고려해야 합니다.
많은 이론가들은 아름다움, 즉 미를 표현하거나 평가하는 기준으로 몇 가지를 듭니다. 개체의 형태(form), 색상(color), 질감(texture) 등이 각각 미의 생성과 판단의 요소입니다. 그리고 저는 ‘터(place)’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집터, 무덤터를 세심하게 고른 선조들의 영향을 받아서도 그렇습니다. 그 동안도 역사학에서 ‘터이론(field and multi core theory)’을 제기해 왔거든요. 부분들은 만나고 섞여지는 터에 따라서 변질도 생길 수 있고, 섞이는 비율도 달라질 수 있거든요. 진정한 아름다움은 균형을 이루는 즉 ‘배합비율(proportion)’이 적합해야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는 어떤 문화권이든 개별 요소들에 대한 평가는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각 요소들, 즉 전체가 ‘조화(harmony)’를 이루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들은 '황금비율'을 발명해서 인체의 아름다움을 최고의 상태로 구현했고, 건축이나 심지어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에도 활용했습니다. 사실은 인류는 어디서나 언젠가부터는 독자적인 황금비율을 갖고 운영했습니다. 이렇게 미는 전 분야에 적용될 수가 있고, 미는 어떤 존재나 어떤 상황에서도 찾고 느끼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미를 얻기위해 부단히 수 십 만년 동안 노력해왔습니다.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이렇게 보니 미는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각 미들은 서로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미는 때로는 관념적이고, 주관적인 요소가 강하기도 했습니다.
‘미’와 오늘 제가 말하려는 ‘미학’은 결국 고구려의 문제이고, 고구려 미학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전제가 되는 미학의 문제는 아는 만큼만 간략하게 얘기하렵니다. ‘미’와 ‘미학’은 반드시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초기부터도 그랬을 것이지만, 후기 신석기 시대쯤 되면 인류는 예술품 또는 비슷한 존재를 보고 느끼는 모방한 ‘미’ 뿐만 아니라 ‘의미’ ‘논리’ 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미 체험이 필요해졌을 것입니다. 미에 대한 경험은 인간의 감정과 건강, 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역사학자로서 의미가 큰 것은 신석기시대의 이러한 상황들이 미의 성격에 질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인류는 초기부터 자연을 ‘모방(아리스토 텔레스가 말한 ’mimesis‘와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해서 어설프게나마 미의 ‘원형’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역사가 전개되면서 엄청나게, 어쩌면 상상할 수조차 없는 다양하고 복잡한 경험을 했고, 거기서 파생될 수밖에 없는 복잡한 생각들은 ‘미’가 또 다르게 만들어지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겁니다. 아마도 전해진 미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거나 새로 만들기도 했을 겁니다. 거기에 기술력이 발전하면서 표현하거나 제작을 하는 도구와 방법들, 질료들이 다양해지고 풍부해졌고, 미의식은 발전했습니다. 당연히 ‘미’의 가짓수는 더 많아지고, 미의식도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적인 필요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을 겁니다. 그러니까 미는 점점 더 역사와 문화의 산물로 성격이 변해지고, 거기서 미학의 존재 이유가 생겨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아름다움(美)을, 또는 예술을 감성적인 것, 느끼는 것, 현상과 표면적인 것으로만 오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속이 차오르면서 껍질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요? 설사 ‘속’과 ‘껍질’이 생성하는 차례가 바뀌거나 중복된다 하더라도, 일단 중요한 것은 속, 알맹이 즉 본질이지요. 당연히 그 속의 내용을 깊건 얕건 알아야 합니다. 그 깊이와 농도에 따라서 예술인가, 일상의 문화인가가 구분되는 것 아닙니까? 역할이 다르고, 접근하는 자세나 방식, 노력의 정도에 차이는 분명 있습니다.
미학은 자연발생적인, 또는 자연스럽게 변하고 발전하는 결과물이 아닙니다. 시대와 상황마다 의도적으로 세계관, 가치관, 문화, 필요성 등을 고려하여 만들고 창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 쯤은 학문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미학’은 미라는 단순한 대상이나 개인의 독립된 감정을 넘어선 겁니다. 특정한 문화나 사회의 가치와 신념을 반영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오래전, 즉 2014년도에 「광개토태왕비, 美(beauty)·論(logic)·意(meaning) -광개토태왕비에 표방한 미학과 논리-」라는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美’·‘論’·‘意’라고 구분한 것은 미학은 이렇게 3가지 요소가 갖춰져야 한다고 판단한 탓입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입니다.
미학은 왜 필요할까요? 미학은 예술과 자연에서 느끼는 미와 감동을 깊게, 진지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미적인 체험과 느낌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면 일상생활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고, 행복을 증진시키게 됩니다. 또 예술이나 고급문화, 심지어는 고도의 미를 갖춘 자연을 바라볼 때도 감성과 통찰력 뿐만 아니라 분석적이고 논리적이 됩니다. 그러면 인간의 감정과 경험들을 더 깊이있게 탐구하게 해줄 수 있으니 내면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들, 즉 본질에 한 층 더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껍질, 속살, 단물까지 다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작업에 익숙해지다 보면 인간은 창의성을 갖고, 재생산과 적용하는 능력과 태도를 갖게 됩니다. 더 나아가 미를 포함한 문화나 예술이 사회와 맺는 관계, 미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고 논의하게 합니다. 당연히 다양한 문화의 차이들도 조금 더 심도깊게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삶과 사회가 질적으로 성숙하면서 함께 발전하게 될 수가 있지요. 결국 미학은 하나의 현상, 또는 시스템으로 세상이 변하는데 역할을 할 수 있지요. 헤겔이나 칸트 같은 철학자들이 미학을 이야기한 까닭은 이러한 점 때문이지요. 저의 생각이고 바램입니다만, 미학은 나아가 또 다른 미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변화시켜 형상화 시킬 수도 있습니다. 미 또는 문화의 기본틀(시스템) 혹은 메카니즘을 이해하면 어쩌면 사라진 사실들과 망각하고 왜곡된 정체성을 다른 형태로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고구려 미를 찾고 복원을 시도하는 것 처럼요.
미학에 관한 제 얘기가 다소 길었습니다만, 이제 우리의 미학, 특히 고구려 미학을 살펴보려 합니다. 고구려는 저에게는 각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013년도에 「역사를 통해서 본 고구려 미학의 탐구」(『미술문화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었습니다. 그 때도 말했지만 우리 미와 미학은 물론이지만 고구려의 미와 미학 또한 말살되거나 왜곡되었습니다.
다음에는 고구려 미와 미학에 관한 글을 올리겠습니다.
***필자소개 / 윤명철
역사학자. 시인.탐험인.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겸 우즈베키스탄 국립사마르칸드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저서 60여권, 시집 17권,논문 160여편. 고구려와 바다, 유라시아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