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웅 문화평론가,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김대웅 중구난방] 문명의 충돌,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왜 싸울까

정통적인 종교라면 세계의 어느 종교든지 교리에는 사랑과 평화가 담겨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세계 4대 종교들인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오랜 역사를 두고 끊임없이 충돌해 왔다. 더욱이 뿌리가 같은 두 종교가 도대체 왜 싸우는 걸까? 먼저 그 역사적인 근본원인부터 살펴봐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는 한 뿌리에서 탄생했으며, 성경 ‘창세기’ 대홍수로 세상이 사라져 갈 때, ‘노아의 방주’에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이다. 특히 노아의 맏아들인 셈(Shem)의 후손들인 셈족(the Semite)이 창시한 종교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경전에는 아담, 아브라함, 모세, 다윗, 예수가 모두 등장한다. 다만 유대교는 구약성서의 율법을, 기독교는 예수의 가르침 그리고 이슬람교는 마호메트(아랍어로 무하마드)의 계시와 가르침인 『코란』(Coran)이 근본교리로 서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독교와 이슬람은 똑같이 전지전능한 절대적인 존재인 유일신(唯一神)을 믿는다. 역시 서로 하나님(또는 하느님)과 알라의 호칭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들은 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노아의 10대손인 아브라함까지는 차이가 없으며 똑같이 자신들의 조상으로 추앙한다.

그러나 아브라함 이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아브라함은 본처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본처의 여종인 하길을 후처로 맞아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런데 그 뒤에 본처가 아들 이삭을 낳으면서 후처와 후처의 아들 이스마엘을 쫒아냈다.

기독교는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과 이삭의 아들 야곱을 아브라함에 대를 이은 직계조상으로 섬긴다. 야곱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Israel)이다. 하지만 이슬람은 쫒겨난 아브라함의 첫 아들인 이스마엘(Ismael)을 조상으로 섬긴다. 말하자면 히브리(유대)의 조상은 이삭-야곱이고 아랍인들의 조상은 이스마엘이 되면서 서로 갈라서게 된 것이다.

더욱이 예수의 등장이 이들을 완전히 갈라놓는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실존적인 대리자로 하나님과 똑같이 추앙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예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는 그저 하나님(알라)이 보낸 여러 명의 선지자 가운데 한 명일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저주받을 일이라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기독교는 예수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과 부활을 기본교리로 하고 있지만, 이슬람은 예수가 처형당할 때 죽지 않았으니 부활이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 때문에 기독교와 이슬람은 갈등이 크게 증폭되고 마침내 서로 적대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그것은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을 신봉하는 아랍 국가들이 치열하게 대립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들이 마침내 무력충돌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성지(聖地) 때문이었다. 공교롭게도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다 같은 성지였다. 7세기 이슬람교가 탄생하면서 코란이 등장하자 이슬람 신도들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와 조상에 차이가 있고, 예수의 존재가치에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울러 코란에 따라 자신들의 정체성 확립과 함께,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들로써 정통성 문제가 불거지며 노골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됐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기독교 신도들의 성지순례를 막았다.

기독교도 가만있지 않았다. 자신들의 거룩한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 그리하여 십자군 대원정이 시작됐다. 11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200년 동안 8차례의 원정을 감행했던 ‘십자군 전쟁’은 서로 침략과 정복을 되풀이하며 두 종교를 서로 앙숙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 뒤에도 끊임없이 충돌하며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숱한 종교적 기념물이 파괴되고, 성당이 모스크로 바뀌고 모스크가 성당으로 바뀌었다. 또한 이러한 종교적 충돌은 마침내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의 숙명적인 분쟁과 전쟁으로 비약하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왔다.

유대인들은 원래 유목민들이어서 역사적으로 뚜렷한 자신들의 영토가 없었다. 약 4천 년 전,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핍박받던 유대인들을 모세가 이끌고 고난의 대이동을 시작했다(소위 ‘출애굽’出埃及). 그들이 향한 곳이 하나님께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가나안(Canaan) 땅이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을 주시기 위해 조상들을 이집트에서 구해내시고 그들에게 계명과 규정과 율법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부양하시며 이 땅으로 데려와 살게 하셨다....”(느헤미야 9,5-37)

그러나 가나안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카난인(가나안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신약성서에서 말하는 블레셋 사람, 즉 팔레스타인이었다. 유대인들은 오랜 방랑생활을 끝내고 악전고투 끝에 이 땅에 들어와서 여러 곳에 나뉘어 살다가 마침내 통일국가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의 다윗은 유대인이고 골리앗은 블레셋, 즉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지혜가 뛰어난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다. 이것 역시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인(人)들의 정서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스라엘 왕국은 다윗과 솔로몬왕의 뛰어난 통치로 한동안 번성했지만 쉴새없이 전쟁을 치르면서 나라가 둘로 나뉘어 북쪽은 북이스라엘 왕국, 남쪽은 유다왕국이 됐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게, 유다왕국은 바빌로니아에 패하면서 멸망하고 말았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다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리 잡고 살았다.

하지만 이곳은 강력한 통치세력이 없어서 끊임없이 여러 강대국들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영국이 통치했다. 그런데 유럽에 민족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그곳에 흩어져 살던 수백만 명의 유대인들이 멸시당하고 노골적인 탄압을 받게 됐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중동 지역의 수복 혹은 교란을 위해 현지 토착 부족들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 이 계획의 일환으로 아라비아에 파견된 영국군 중위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의 일대기를 그린 대작이 바로 <아라비아의 로렌스>(1962)이다. 데이비드 린 감독에 오마 샤리프와 안소니 퀸이 출연했다.

그러자 뜻있는 유대인들이 앞장서 '시오니즘'을 외치며 그들 조상의 땅이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국가를 세우자는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시온(Zion)’은 예언적이고 종교적인 명칭이지만 일반적으로 유다왕국의 수도였으며 성지인 예루살렘을 뜻한다.

그런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운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면서 유대인 말살이 구체화되고 무려 약 600만 명이 학살당하는 참혹한 비극을 겪게 됐다.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면서 다시 시오니즘이 떠오르고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 유대민족이 국제적으로 동정을 받게 됐다.

그에 따라 이스라엘의 독립과 건국이 국제사회에서 공론화되고 연합국들의 여러 차례에 걸친 협상과 타협 그리고 유엔결의에 의해 마침내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영토였다. 팔레스타인 땅인 가나안 지역을 약 6대 4의 비율로 분할한 것이다. 당시 이 지역에는 건국과 함께 고향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두 배나 더 많았다. 그런데 영토가 이스라엘 6, 팔레스타인 4로 분할되고, 더욱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름진 땅은 대부분 이스라엘 영토에 들어가고, 팔레스타인 영토는 대부분이 산악지대, 사막지대인 척박한 땅이었다.

당연히 대다수가 이슬람인 팔레스타인의 불만이 고조됐으며 이슬람 아랍 국가들이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어렵게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도 물러설 수 없었다. 미국이 적극적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며 국제적 분쟁과 대립이 본격화됐다. 그리하여 숱한 분쟁과 수차례의 중동전쟁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동전쟁은 거의 모두 병력은 적지만 정신력이 강한 이스라엘이 승리하며 자신들의 영토를 지켰을뿐 아니라, 전쟁을 이용해서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를 쟁취하거나 그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다.

중동지역의 그와 같은 정세불안과 분쟁이 지속되면서, 기독교에 강한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하마스(Hamas)' 등 이스라엘을 겨냥한 무장조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72년 뮌헨올림픽에서는 이슬람 무장조직인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습격해서 2명을 죽이고 9명을 납치했다가 그들도 모두 사살해 온 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와 같은 이슬람 무장테러조직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헤즈볼라, 탈레반, 알 카에다, IS(이슬람국가, ISIS)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슬람 무장조직들이 잇따라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 자행한 테러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9.11테러’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 건물인 펜타곤에 대형여객기를 충돌시키는 테러로 약 3천여 명이 숨졌다. 미국 본토가 처음으로 외부의 침입을 당한 것이다. 이 끔찍한 테러는 알려진 바와 같이 오사마 빈 라덴이 지휘하는 이슬람 무장조직 ‘알 카에다’의 소행이었다.

‘이슬람(Islam)’은 '복종‘이라는 뜻이며 이슬람 신도들을 가리키는 ’무슬림(Muslim)'은 ‘복종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들은 알라 신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자신들이 하는 일은 모두 알라신의 뜻이라고 말한다. 또한 알라 신을 위해 ‘지하드(Jihad)’ 즉 성전(聖戰)에 앞장서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한다. 특히 그들은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는 미국과의 투쟁을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은 기독교 신자들이 세운 나라이며 국민의 절대다수가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는 세계 최강대국이다. 이슬람의 이스라엘, 미국을 상대로 한 투쟁은 기독교와 이슬람이 싸우는 양상이 됐으며 이러한 종교전쟁은 끝이 있을 수 없다.

미국의 세계적인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Sammuel P. Huntington)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의 명저 <문명의 충돌>에서 국가 간에 무력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이념차이가 아니라 전통과 문화, 종교적 차이가 그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그것을 ‘문명의 충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세계를 서방(미국과 유럽 등, 주로 기독교 국가), 라틴 아메리카(주로 가톨릭 국가), 이슬람, 힌두교, 불교, 유교, 일본 등, 7~8개의 문명권으로 나누고,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을 대표적인 문명의 충돌로 손꼽았다. 따라서 문명의 차이와 다양성을 서로 수용하고 존중하면서, 끊임없는 교류를 통해 동질성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와 함께 문명권에서 통용될 수 있는 자유와 평등과 같은 가치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동의할만한 견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이슬람권과 비(非)이슬람권의 그러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기독교는 원래 하나였지만 종교개혁 등을 통해 구교와 신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로 나뉘었다. 이들은 종교적 체제와 종교의식에 서로 큰 차이가 있다. 기독교의 유일신에 대해서도 가톨릭에서는 하늘을 뜻하는 ‘하느님’으로 부르고, 개신교에서는 유일한, 하나를 뜻하는 ‘하나님’으로 부른다.

이슬람도 시아(Shia)파와 수니(Sunni)파로 나뉘어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고 있다. 시아파는 이슬람 창시자 마호메트의 후손들만 후계자로 인정하지만 수니파는 마호메트가 후계자를 특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4대 후계자인 마호메트의 사촌동생 칼리프 알리까지는 그럭저럭 하나였지만 서기 661년 칼리프가 암살당하면서 완전히 갈라서서 1400년 가까이 갈등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그처럼 문명의 충돌은 해결하기 어려운 인류의 영원한 난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