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자기가 먼저 갖추고 남에게 요구하라

1.

지금은 외부 일정을 최소화하고 수신(修身)중이다. 조선 후기 문신 이양연의 시다. 백범 김구 선생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숙고했던 시를 다시 읽는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난행):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과 ‘뒷사람의 이정표’를 되새긴다. 이 세상은 나와 이웃이 어우러져 살아간다. <<화엄경>>에서는 모든 생명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물코라고 표현한다. 상호의존 하는 생명의 이치로 우리 모두를 살펴보면, '나는 곧 너의 나이고, 너는 곧 나의 너이다.' 이런 생명의 연결망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나의 생각과 행위가 그대로 이웃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나를, 자신을 바로 세우고 가다듬는 ‘수신(修身)’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2.

수신이라는 말은 <<대학>>의 8 조목에 나온다. 8 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1) 격물치지(格物致知): 사물의 본말과 시종을 파악하여 지혜를 이룬다. 중심(중요한 것)과 주변(사소한 것), 시작과 끝을 잘 알고 일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 물건에는 본말이 있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닦는 것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 근본이 먼저 다스려져야 한다. 중요한 것부터 해야 한다.

2) 성의(誠意) : 생각을 성실하게 하라

▪ 선은 진심으로 좋아하고, 악은 진심으로 미워하라. (호선오악, 好善惡惡, 호선오악, 선을 좋아하고, 악을 멀리한다.)

▪ 자신을 속이지 않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편안해 진다.

3) 정심(正心): 먼저 마음을 바르게 하여야 자신이 닦인다.

4) 수신(修身): 먼저 자신을 닦아야 집안이 가지런해 진다.

5) 제가(齊家): 먼저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나라가 다스려진다.

▪ 군자는 집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에 가르침을 이끈다.

▪ 자기가 먼저 갖추고 남에게 요구하라. 함부로 충고하지 마라.

▪ 집안 식구들이 본받은 뒤에 백성들이 본받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6) 치국, 평천하(治國, 平天下) : 먼저 나라를 다스려야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 먼저 자기를 다스려야, 다른 9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 이와 같이 민족이 튼튼해야 전 세계가 평화롭다.

▪ 나를 잣대로 삼아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라

▪ 군자와 소인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 대동의 정치이다.

▪ 덕이 근본이고, 재화는 말단이다. 돈 보다 사람이 먼저이다.

▪ 혈구지도(絜矩之道)에 능한 이를 등용하라.

▪ 대동세상(大同世上)을 위해 더불어 잘사는 경제정책을 펴야 한다.

3.

그리고 <<중용>>에 의거하면, 수신(修身) 방면으로는 지혜(知), 사랑(仁), 용기(勇)를 “3가지 두루 통하는 덕”이라는 ‘3달덕(三達德)’을 배양하고, 니버의 기도에서 보는 것처럼, 서양인들은 수신(평온함)을 위해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차분함(靜), 바꿀 수 있는 변화의 용기(勇),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智)를 갈고 닦는다.

4.

수신은 평온함이다. 그래 이번 겨울은 고요를 즐긴다. 원래 매년 초마다 다짐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습정양졸이다. '습정양졸(習靜養拙)'은 "고요함을 익히고 고졸함을 기른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靜)'과 '졸(拙)'은 한 통속이다. 졸은 '고졸하다'라고 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 "기교는 없으나 예스럽고 소박한 멋이 있다"는 말이다.

도자기 가게에 가면, 기계에서 찍어 나온 듯 흠잡을 데가 없이 반듯반듯하고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구도를 가진 도자기는 상식적이라 눈길이 안 간다. 뭔가 균형도 잡히지 않은 것 같고, 어딘가 거칠고 투박한 것 같으면서도 구수하고 은근하고 정답고 살아 숨쉬는 듯한 것이 마음에 끌리고 편하게 느껴진다. 그게 내가 '키우고 싶은 '양졸(養拙)' 이다.

5.

그리고 고요함(靜)을 위해, 경계해야 할 것은 '빈곤의 심리'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이 세상 좋은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남이 가져가면 그만큼 내 몫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심리'이다. 그 반대가 '풍요의 심리'이다. '세상에 좋은 것은 많고, 풍요로워서 남이 성공하고 인정받아도 내 몫은 남아 있다'고 보는 심리이다. 이런 '빈곤의 심리'는 배타주의를 낳고, '풍요의 심리'는 포용을 할 줄 알게 된다.

신학자 하비 콕스는 "현대인의 우상은 출세"라 했다. 출세는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치환됨을 알기에 사람들은 출세에 집착한다. 출세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다 보니 고요함을 잃게 된다. 고요함을 습관들이고, 고졸함을 기른다는 '습정양졸'의 정신이 필요하다. <<장자>>에 "감어지수(鑑於止水)"라는 말이 있다. '흐르지 않고 고요한 물에 사람들은 거울 삼아 자신을 비추어 본다'는 말이다. 흐르는 물에 얼굴을 비춰 볼 수 없는 것처럼 고요함이 없는 마음에 우리의 모습은 비쳐지지 않는다.

6.

스토아 철학자들은 자신과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그들은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더 훌륭하게 실천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충고한다. 배 철현 교수는 이런 주장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도 공유한다. "행복한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 곁에서 얼쩡거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타인을 험담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지 않습니다."

다윗이 <시편> 제1편에서 한 말이라 한다. 자신과 가치관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말라는 같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 나의 평정심이 무너지고 가치관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네카(Seneca)도, <평정심에 관하여> 재7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엇보다도, 당신은 사람을 선택하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부여할 만큼 가치가 있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것입니다." 사람 만나기를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나의 부동심(不動心), 즉 정신의 평정(平靜, 아타락시아) 때문이다. 그래 나는 '습정양졸(習靜養拙"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고 실천하려 한다.

7.

또한 그런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는 참석할 모임에 대한 기준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사려가 깊은 사람이나 철학자가 주선한 모임이나 연회가 아니라면, 참석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만일 그런 모임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면 말을 삼가하라고 말한다.

"침묵이 연회에서 당신의 규범이 되게 하십시오. 혹은 필요한 말만 몇 마디 하십시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검투사, 경마, 운동선수들, 마실 것, 먹을 것, 특히 누구를 지나치게 칭찬하거나 욕하거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가능하다면, 당신은 당신을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적당한 대화를 유지하십시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면, 침묵하십시오,

모르는 사람이나 무식한 자가 추천하는 잔치에 가지 마십시오, 만일 가야한다면, 당신은 정신을 차리고 성급한 말과 행동이 나오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에픽테토스 <인생수첩>) 당시 사람들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상관이 없는 타인에 관한 이야기로 시간을 축냈는가 보다. 우리에게 하루는 누구와 만나고 어울리느냐 에 그 가치가 매겨진다. 그보다도 먼저 '나'라는 인격, 나의 개성과 성향을 구체화하고 그것을 온전히 자신의 특징으로 발전시키는 하루 하루가 되도록 수련하는 일이 중요하다.

8.

'습정양졸'은 정약용(丁若鏞·1762~1836)이 이승훈(李承薰·1756~1801)에게 보낸 답장에 나오는 말이다. “요즘 고요함을 익히고 졸렬함을 기르니(習靜養拙), 세간의 천만 가지 즐겁고 득의한 일이 모두 내 몸에 ‘안심하기(安心下氣)’ 네 글자가 있는 것만 못한 줄을 알겠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편안하고, 기운이 차분히 내려가자, 눈앞에 부딪히는 일들이 내 분수에 속한 일이 아님이 없더군요. 분하고 시기하며 강퍅하고 흉포하던 감정도 점점 사그라듭니다. 눈은 이 때문에 밝아지고, 눈썹이 펴지며, 입술에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피가 잘 돌고 사지도 편안하지요. 이른바 여의치 않은 일이 있더라도 모두 기뻐서 즐거워할 만합니다.”

9.

노자는<<도덕경>>제 48장에서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라는 말을 한다. '배움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 도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라는 뜨이다. '도'에 힘쓰는 사람은 날마다 덜어낸다. 여기서 '도'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라면, 나이 들면서 조금씩 버리고 덜어내는 것이 사람 답게 잘 사는 길이라는 말로 들린다.

그 '도'로 비우고 덜어내 텅 빈 고요함에 이르고 싶다. 그러면 물 흐르듯 일상이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뿐 포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를 뿐 자기 주관이나 욕심을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모든 행위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항상 자유롭고 여유로울 것이다.

샘을 자꾸 비워야 맑고 깨끗한 물이 샘 솟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비우지 않고, 가득 채우고 있으면 그 샘은 썩어간다. 그리고 초조해 하지 말고, 조급증을 덜어내고 싶다.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자중하며 일상을 행복하게 향유하고 싶다. 하루 하루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는 것이다.

10.

그러면서 삶의 속도를 줄이고, 내 일상을 좀 더 향유하고 싶다. 언젠가 읽은 김기석 목사의 글이 길잡이다. "분주함이 사회적 신분에 대한 표징으로 인식되는 세상에서 한가로움은 덕이 아니라 게으름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이다. 가속의 시간에 적응하며 사는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예술품 앞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아니, 오래 머물지 못한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에 몰두하는 동안 향유의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향유’(frui)와 ‘사용’(uti)을 구분한다. 사용이 대상을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라면 향유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것이다. 향유는 가장 온전한 사랑함이다. 향유의 능력을 잃어버리는 순간 타자들과 허물없이 순수한 사귐은 불가능 해진다. 사용할 것을 많이 소유하는 것을 성공의 가늠자로 삼을 때 사람은 욕망의 종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늘 공유하는 시처럼, 아름답게 나이 들고 싶다.

아름답게 나이 든다는 것/김한규

그것은 끝없는 내 안의 담금질

꽃은 질 때가 더 아름답다는 순종의 미처럼

곧 떨어질 듯 아름다운 자태를 놓지 않는 노을은

구름에 몸을 살짝 숨겼을 때 더 아름다워

비 내리는 날에도 한 번도 구름을 탓하는 법이 없다

우아하게 나이 든다는 것

그것은 끝없이 내 안의 샘물을 길어 올려

우리들의 갈라진 손마디에 수분이 되어주는 일

빈 두레박은 소리 나지 않게 내려 내 안의 꿈틀거리는 불씨를

조용히 피워내는 불쏘시개가 되는 일.

아름답게 늙어간다는 것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욕망의 가지를 피를 토하는 아픔으로 잘라내는 일

혈관의 동파에도 안으로 조용히 수습하여

갈라진 우리들의 마른 강물에 봄비가 되어주는 일.

살다가 문득 홀로 거닐다 바라본 높은 하늘이 너무 청아해

누군가에게 꼭 하늘을 마주 바라보자는 그 말을 전하고 싶어

문자를 보내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너 혹은 나의 처진 어깨를 펴 주고

가끔은 나를 버려 우리를 사랑하는 일이다

추하지 않게 주름을 보태어 가는 일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낸 날들이 다만 슬펐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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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