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운동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한표 인문일지] '선을 말하기 전에 악을 짓지 말라'

다음 주 긴 설 연휴기간 동안 마음 근육을 키우는 수련(修練)의 시간으로 삼으려 한다. "나에게 흠이 하나 있다면, 내가 얼마나 끝내 주는 사람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모하메드 알리) 난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좀 더 자신을 믿고,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더 자주, 더 우연히 행복을 마주할 수 있다.

답은 자신 안에 있다. 다음과 같이 알아야 할 것이 여럿이다. (1)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2) 스마트 기기의 발전으로 사람들의 집중력이 3초 수준이다. (3) 남들이 뭐 라 하던 자신의 스타일대로 사는 아들은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내는 것을 "자기 수용"이라고 한다. 기시미 이치로가 쓴 <<미움받을 용기>>에 나오는 말이다.

1.

오늘 아침은 "칠불통계게"를 소환한다. 과거 일곱 부처님이 한결같이 당부한 훈계로, 곧 보편적이고 타당한 진리를 의미한다. 보통, 일곱 번째 불(佛)인 석가모니 직전의 여섯 번째 불 가섭불의 게가 일반적이다.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자정기의 시제불교(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악은 저지르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악을 경계하고 선을 권장하는 것은 일반적인 도덕이나,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 게송에서는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구절이 다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든 한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매순간 마음을 맑히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

2.

중생들은 무명(無明), 아니 무지(無知)와 탐욕 또는 탐진치(貪瞋痴)의 삼독(三毒)에 의해 마음의 호수가 항상 흔들리고 혼탁 해져 제법(諸法)의 실상을 바르게 보지 못한다. 하지만 호수가 고요하고 깨끗 해졌을 때, 그 호수에는 호숫가의 꽃이나 나무, 두둥실 떠가는 하늘의 흰구름까지도 그대로 비치듯,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 해졌을 때 일체만의 참모습 또는 우주와 인생의 참다운 진리가 그대로 드러나 깨달음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쉽게 말해, 마음 속의 번뇌(걱정 거리), 미혹(迷惑, 의심) 없는 마음이 라야 우주적 진리, 궁극적 실재를 만날 수 있다. 이것은 아집과 편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마음의 정화를 이루어 끝없이 열려 있는 사람만이 진리에 이르고, 그래야만 선을 행할 수 있다. 그러기 전에 우선 악을 행하지 않도록 힘을 쓰는 실천이 필요하다.

나는 마음의 바다에 풍랑이 치면,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에 나오는 '월인천강(月印千江)' 이미지를 기억하며 마음의 청정을 회복한다. '월인천강'은 '하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춘다'는 의미로, '부처의 자비가 달빛처럼 모든 중생에게 비춘다'는 거다. 그러나 나 자신의 마음의 호수를 잔잔하게 '월인천강'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3.

'무엇보다도 악행을 먼저 하지 말고, 선행을 하되, 그것이 끝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청정하게 하라'는 것은 깨달음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는 거다. 중국의 한 선사(도림)는 '칠불통계'에 대해 "세 살 짜리도 아는 말이지만 팔십 먹은 늙은이도 실천하기 어렵다"고 말하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것은 사람들이 못 배워 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 란다. 사람이 차마 해서는 안 될 일을 버젓이 행하는 것도 많이 배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못 배워서 란다. 역대 일곱 부처님들이 깨닫고 실천한 가르침의 핵심이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마음을 청정하게 가꾸라"이다.

이를 우리는 '칠불통계(七佛通戒)'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선을 말하기 전에 악을 짓지 말라'는 말을 먼저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선행을 많이 하지 못해서 아름답고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이 힘들고 혼란스러운 것은 개인과 집단이 서로에게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도 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논어>>의 구절이 생각난다.

4.

인터넷에서 게송의 의미를 찾다가 만난 거다. 마음에 들어 공유한다.

"건강이 으뜸 가는 이익이요,

만족이 으뜸가는 재산인데.

신뢰가 으뜸가는 친척이요.

닙바나[Nibbana, 미래 괴로움(고통)을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을 제거함이 으뜸가는 행복이네.

감사하자 감사한 일이 생긴다.

웃자. 웃을 일이 생긴다.

춤추자. 춤출 일이 생긴다."

5.

그리고 '행불(행복과 불행)의 노래'도 알게 되었다. 공유한다.

"나는 내가 창조합니다. 지금 이 모습도 나의 작품일 뿐!

내 작품이라고 확신해야 내가 바꿀 수 있네.

남의 탓을 하는 순간, 남의 작품이 되는 것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겠습니다.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겠습니다.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모든 생명이 행복해지기를!"

나는 이 노래에서 "~해주세요'가 아니라, "~하겠습니다'라는 능동적인 발원(發願, 간절한 바람)이 마음에 든다. 불교의 가르침이다. 불교의 핵심 교리는 '사랑과 지혜',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비와 깨달음'이다. 그러니까 불교의 핵심 메시지인 지혜(깨달음)와 자비(사랑)에서 지혜는 자비의 안내자라고 한다.

그런데 자비 또한 곧 지혜이다. 이제서야 나는 '사랑의 지혜'라는 말을 알고 있다. "악행을 하면 누구나 나쁜 과보를 받고, 보시하고 선행하면 누구나 좋은 과보를 받게 된다.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 다만 행위를 묻는다." (<<법구경>>) 그러니까 자비는 이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더 잘 실천한다.

6.

자비는 모두 다 더불어 평등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깊은 지혜의 실천이다. 깨달어 지혜를 얻으면, "이것이 말미암아 저것이 있다"는 연기법의 이치에 따라 참살이를 할 수 있다. 참살이는 돈과 명예와 권위, 아니면 지식이 많다고 자기 속에 갇혀 경직된 표정으로 살기보다는 세상 속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바른 안목과 자애로움으로 웃음을 주고 겸손과 평정심으로 회향할 줄 아는 삶이다.

요약하면, 모든 존재는 여러 원인과 조건(因緣, 인연)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연기의 세계에 있으며, 이 세계는 만들지 않으면 본래 없는 것이라는 공(空)의 세계이다. 불교의 사실판단이다. 여기에 가치판단을 하려면, 세상의 법칙이 이러니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여야 한다.

그러니까 깨달음은 사실 판단이며, 자비는 가치판단이다. 깨달음은 지혜이고, 가치의 판단은 자비(사랑)이다. 그러니까 모든 길은 사랑으로 통하고 사랑으로 만난다. 진정한 사랑은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사물과 생명에게 편견과 차별을 거두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랑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끌어안고 같이 기뻐하거나 아파하는 것이다.

7.

먼저 깨달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공부를 해야 한다. 사실이나 현실보다 진실을 찾는 것이 공부이다. 다음과 깉은 것들이다. 우선 "고-집-멸-도'라는 말을 공부한다. '고-집-멸-도(苦-集-滅-道)'는 불교의 근본 원리를 설명하는 말로, '사제(四諦)'를 이르는 말이다.

▪ '고'는 인생에 있어서의 모든 고통인 `사고팔고(四苦八苦)'를 뜻하는 말이고,

▪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집적(集積),

▪ `멸'은 그 번뇌를 멸하여 없게 한 열반(涅槃)을 뜻하며,

▪ `도'는 열반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팔정도(八正道)를 뜻함. 석가(釋迦)는 이를 깨달아서 성불(成佛)하였음.

'고집멸도(苦集滅道)' 라는 말은, <<아함경>>에 나오는 말로 불교의 기본 교리 중의 하나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최초 법문이기도 하다. 고집멸도를 '사성제(四聖제)'라고도 하며 이는 불교의 네 가지 높은 깨우침이란 뜻이다. 좀 자세하게 정리해 본다.

▪ 고 (苦). 인간의 현실적 존재는 곧 괴로움이다. 고(苦)에는 사람이 겪는 생고(生苦)와 노고(老苦) 병고(病苦) 사고(死苦)의 괴로움인 생로병사의 4고(四苦)와,

1) 미워하는 것을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의 괴로움과

2) 사랑하는 것과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의 괴로움과

3) 구하는 바를 다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의 괴로움과

4)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 에 집착하는 육체적인 본능에 의한 오음성고(五陰盛苦)의 괴로움인 4고 (四苦)가 있다.

▪ 집(集). 탐욕과 욕망과 갈애와 열망이 결합하여 일어나는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을 말한다.

▪ 멸(滅). 번뇌와 고통이 모두 없어진 해탈 및 열반의 경지 즉 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해탈하고 생사를 초월하여 불생불멸의 진리를 체득한 경지를 말한다.

▪ 도(道).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말하며, 이는 곧 종교의 생명이며 실천 수행 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 도(道)의 구체적인 항목으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길, 즉 8정도(八正道)가 있다.

1) 정견(正見). 편견 없이 실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유무의 편견을 벗어난 올바른 견해를 말하며, 이는 올바른 삶의 시작이며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한다.

2) - 정사유(正思惟). 올바른 생각을 하여야 한다.

3) - 정어(正語). 도리에 어긋나는 일체의 말은 하지 않아야 하며 바른 말만 하여야 한다. 거짓말이나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질 시키는 말, 상대를 화나게 하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4) -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만 하여야 한다. 즉 살생이나 도둑질 등 악한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한다.

5) - 정명(正命). 생각이나 언행으로 악업을 짓지 말아야 한다. 바른 생활, 바른 직업 등 정당한 방법으로 의식주를 해결하여야 한다.

6) - 정정진(正精進). 올바르게 노력하여야 한다. 즉 옳은 일에는 물러남이 없는 정열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7) - 정념(正念). 바른 마음으로 수행하여야 한다. 올바른 정신과 생각으로 사념이나 잡념을 버리고 수행해야 하며 바른 기억을 하여야 한다.

8) - 정정(正定). 번뇌로 인한 어지러운 생각을 버리고 바른 집중을 하여 삼매에 들어가야 한다

8.

존재의 실상, 법의 참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삼법인(三法印)이라는 가르침도 있다. 이 이야기는 내일로 넘긴다. '삼법인'은 '세 가지 진실한 가르침'이란 뜻으로, '도장 인(印)'자를 쓴 것은 도장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찍히듯이 이 3가지 가르침도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으며 똑같다는 뜻이다. 바꾸어 말하면 삼법인은 불교의 핵심을 보여 주는 인감도장인 셈이다.

삼법인은 사법인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초기불교시대에는 삼법인으로, 대승불교시대에는 사법인으로 정형화되었다. 사법인은

1) 모든 것이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

2) 모든 변하는 것에는 자아(自我)라는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

3)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을 낳는다는 일체개고(一切皆苦),

4) 모든 괴로움을 없앤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말한다.

삼법인일 경우 '열반적정'이나 '일체개고' 중 어느 하나가 제외된다. 다시 말해서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혹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삼법인이라 일컫는 것이다.

9.

다시 한 번 더 정리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은 '세상 모든 것은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는 뜻이다. 중생은 모든 것은 변함에도(生滅變化, 생멸변화) 명예와 재물 등이 영속할 것으로 착각한다. 모든 것이 영원한 것으로 보는 그릇된 생각을 떨치기 위해 무상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생기고 없어진 것이므로 독립적인 실체(實體)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참다운 나(自我, 자아)의 실체가 없다. 중생은 ‘나’에 집착하는 그릇된 견해를 갖고 있다. 이를 없애기 위한 ‘무아’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아집의 허망함을 알려준다. '일체개고(一切皆苦)'는 존재하는 모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기쁨과 즐거움도 일시적일 뿐, 여기에 집착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시간적으로 덧없고 공간적으로 실체가 없는 일체의 존재, 그 가운데 포함된 인간의 현실이 결국 ‘고’ 라는 것이다. 그러나 삼법인은 경전에 따라 '일체개고' 대신 '열반은 고요함'이라는 ‘열반적정(涅槃寂靜)’을 넣기도 한다. 열반적정은 무상과 무아의 진리를 완전히 구현해 모든 번뇌와 욕망, 대립과 고통이 사라진 고요한 평화의 상태다.

우리는 때론 ‘나’와 ‘내 것’에 집착하곤 한다. '삼법인'은 모든 존재의 속성을 파악하게 해 집착과 미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최상의 평화와 자유를 맛보고 싶은 자라면 '삼법인'의 가르침을 생활화하기 위해 부지런히 정진해야 할 것이다.

10.

해가 바뀌어 2025년이 되었지만 1월에는 여전히 2024년이라고 잘못 적는 버릇이 있다. 올해도 잘못 적은 숫자를 고치다가 친구가 시간이 30대는 시속 30km, 50대는 50km로 빨리 간다던 푸념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가속도가 느껴지는 건 느낌만의 문제일까? 어릴 때는 새로운 정보를 많이 경험하고 학습하기 때문에 어른에 비해 뇌는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처리한 정보량만큼 시간도 느리게 흐른다. 어른들도 새로운 정보를 접하는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을 더 길게 느낀다. 여행지의 일주일은 익숙한 일상에서 보낸 일주일보다 훨씬 길게 느낀다. 그래 기차 타고 여행 가고 싶다.

기차 타고 싶은 날/김재진

이제는 낡아 빛 바랜

가방 하나 둘러메고 길을 나선다.

반짝거리는 레일이 햇빛과 만나고

빵처럼 데워진 돌들 밟는

단벌의 구두 위로 마음을 내맡긴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떠나는 친구 하나 배웅하고 싶은

내 마음의 간이역

한번쯤

이별을 몸짓할 사람 없어도 내 시선은

습관에 목이 묶여 뒤돌아본다.

객실 맨 뒤 칸에 몸을 놓은

젊은 여인 하나

하염없는 표정으로 창 밖을 보고

머무르지 못해 안타까운 세월이 문득

꺼낸 손수건 따라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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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