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호 사진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조문호 렌즈세상] 쪽방촌도 살다 보니 정 들었다
구원의 대상이었던 쪽방촌도 살다 보니 정 들었다. 무엇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 줄 세워 물건 나눠주는 일인데, 오랜 싸움 끝에 필요한 물건을 골라가는 ‘온기창고’로 바뀌었다.
세탁, 목욕, 식사 등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한 것들은 서울시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결 되었으나, 동자동 재개발만 요원하다. 그 또한 시기가 문제지 언젠 가는 해결되리라 믿는다.
재개발은 쪽방 주민 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시와 건물주도 절실한 현안이기 때문이다 제일 큰 문제는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공간에서 살다 보니, 폐쇄적으로 변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꺼린다는 것이다.
‘동자동 사랑방’과 여러 교회 도움으로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사람보다 술을 친구로 삼는 이도 많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인데,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마지막 낙마저 끊고 살겠는가? 나 역시 갈 날이 멀지 않지만, 술버릇 고치느라 끊었더니 사람 사는 재미가 없더라.
그동안 동자동 쪽방에 사는 분들이 수 없이 돌아가셨다. 병들어 세상을 떠났지만, 대개 술이 죽음을 재촉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들 간다는 말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졌는데, 저승에서나마 행복하시길 바란다.
나는 걷기도 힘든 병신이지만, 자동차 덕분에 어디든 다닌다. 차에서 지낸 오랜 습관이 몸이 베어 운전석이 방처럼 편안하다. 지금 타는 차는 2년 전에 아산의 김선우가 백구십 만원에 사준 ‘투산’인데, 추운 날 시동이 걸리지 않아 애를 먹기도 하지만, 큰 고장 없이 잘 버텨주었다.
운명을 함께 하기로 다짐한 차도 여러 대 있었지만, 다 먼저 가버리고 나만 살아남았다. 기초생활수급비의 대부분이 차에 들어가지만, 휠체어나 마찬가지니 어쩌겠는가? 다행히 장애인 등록증이 있어 고속도로 통행료는 물론 과태료, 주차비 활인 등 다양한 혜택을 본다.
요즘은 겨울철이라 아산 갈 일이 없어 주말마다 녹번동에서 지내다 월요일 아침 일찍 돌아오는데, 지난 6일은 차 댈 곳이 없었다. 네 칸뿐인 무료 주차 공간이 만차였다. 빈자리가 생길 때 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어, 여기 저기 돌아다닌 것이다. 커피 가게 앞은 일찍 출근한 직장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매점에 소주 사러 나온 손씨도, 담배 사러 가는 김씨도 만났다.
'동자동사랑방'에서는 거리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청소하는 사람 따로 있다. 옛날 보다 많이 개선되었으나, 외지인들이 버리는 쓰레기도 만만찮다. 문제는 거리가 금연 구역으로 지정되어도 수많은 직장인들의 담배 피울 곳이 없는 것이다. 나 역시 자유롭게 피울 수 있는 곳은 차 안이나 방안 뿐이다.
내가 사는 방은 구 년 동안 한 번도 옮기지 않았다. 4층이라 오르내리기도 힘들고 방도 좁지만, 더 좋은 곳이 나와도 가기 싫었다. 여름철엔 옥상의 열기로 찜질방을 방불케 하지만, 겨울 지내기는 무난하다. 코구멍한 방이지만 살다 보니 정도 들었고, 바람 통하는 창문도 있다. 창문으로 찬바람이 들어와도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 누워 피우는 담배 맛을 알랑가 모르겠다. 군불을 지펴 바닥만 따뜻하고, 방이 넓어 찬바람이 돌던 정선 만지산 집을 빼 닮았다.
그동안 몸이 편치 않아 인사동이나 전시장 나들이도 가급적 삼가해 왔다. 방에서도 앉아 있는 시간보다 누워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무기력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토요일 윤석열 탄핵 집회 때마다 몸을 추스려 나가니 힘이 생기더라.
기어이 단죄 해야 한다는 욕망이 힘을 북돋는 것 같았다. 욕망을 버리면 모든 걱정은 사라지지만 삶의 의욕까지 잃어 욕망을 버리는 것만이 최선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속절 없이 떠나 보낸 한 해의 아쉬움 보다 희망 찬 한 해를 기약하려, 내일 윤석렬 탄핵 집회에 사용할 현수막 깃발 만들러 나간다.
[사진=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