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혜영 문학산책] 다시 오르막길에 서다

문혜영 승인 2025.01.11 16:05 의견 0
문혜영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문혜영 문학산책] 다시 오르막길에 서다

2022년 6월부터

3주마다 매번 새벽 여섯시에 출발하여 서울대병원 암센터로 온다심전도, 채혈, 엑스레이 등 몇가지 검사를 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은 평균 두시간이다. 물론 항암주사는 검사결과에 따라 그날 오후에 준비되는 대로 투여한다.

지하 카페에서 간단히 요기하고 올라와도 아직 전광판에 뜨지 않는 내 임시번호. 지루함보다 더 힘든 건 두려움이다. 지난해는 검사결과가 좋지않아 몇번 항암주사를 거른 적 있다. 임상시험 중인데, 멈추면 갈 방향을 잃는 거다

이십년 전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소금광산 여행 중에 미끄럼틀을 타다가 마지막 착지 전에 중심을 잃고 엎어졌다. 딸아이 가족이랑 여러 관광객이 내 볼상사나운 모습을 순간 다 보아버렸다 암투병의 마지막이 그리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우스꽝스럽고 연민을 느끼지만, 아무도 거들 수 없는 내리막의 착지 모습.

지난해는 내 인생에 내리막길로

거의 바닥을 치는 시간들이었다

뇌하수체 종양, 어지럼증 악화,

1번요추 압박골절에 이어, 다시 4번요추 압박골절,

연말을 맞아 골다공증 수치도 더 나빠졌다.

몸도 마음도 집요하게 바닥의 삶으로 무너지며, 할슈타트 소금광산의 미끄럼틀 악몽이 되살아났다.

이제 곧 맞이하게 될 내리막길의 착지를 어찌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않고 우아하게 끝낼 수 있을까? 그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지배했다.

그런데 12월,

어둡고 시린 달을 다 보내기 전에

또다시 귀인이 내게로 왔다.

절망에 떨고 있는 내게 손을 내민다.

투병 이십년의 세월, 가장 취약했던 것이 먹는 것이었다. 죽지않을 만큼만, 그래도 감사하니까, 생각했는데 원명순선생이 우리 집에 오신다. 일주일에 다섯차례나.

그의 정성어린 손길로 만든 밥상을 받을 때마다 환자와 보호자는 음식으로 인간대접을 받는 느낌이다.

원주기독병원 내분비내과 임정수교수님. 내가 만난 의사 중에 단연코 베스트 3에 꼽을 수 있는 분, 환자에 대한 배려와 친절은 단연 베스트다.

덕분에 조골세포를 돕는 이베니티 주사를 맞게 되었다. 물론 자비부담이지만, 행운이다.

희망이란 것이 얼마나 대단한 마술인지,

오래도록 내리막길로 굳어져 있던 내 투병의 시간을 오르막길로 방향 전환을 시킨다

윤종신은 노래한다.

~이제부터 힘들어질거야~

그래도 괜찮다, 25년부터 나는 다시 오르막길이니까,

또 한번 나는 일어설 모양이다

서울대 병원, 진료시간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사진=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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