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표 인문일지]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오늘은 공식적인 일정이 없다. 하루 종일 내면의 힘을 키우는 일에 바칠 생각이다. 사진은 어제 페북에 만난 거다. 허락 없이 가져왔다. 시대가 요구하는 푯말이라고 생각했다.
1.
오늘 아침에 소환했던 사자성어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유소작위(有所作爲)"였다. "빛을 감추고 어둠(그믐) 속에서 실력을 길러라! 그러면서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도광양회'를 말 그대로 하면, '칼날의 빛을 칼집에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는 말이다. '도광'이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거다. '약자가 모욕을 참고 견디면서 힘을 갈고 닦음 또는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도광양회'는 <<삼국지>>에 나오는 말이다. 유비가 조조의 식객 노릇을 할 때 살아 남기 위해 일부러 몸을 낮추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여 경계심을 풀도록 만들었던 계책이었다. 또 제갈량이 천하 '삼분지계(三分之計)'를 써서 유비로 하여금 촉나라를 취한 다음 힘을 기르도록 하며 위, 오 나라와 균형을 꾀하게 한 전략이기도 하다. 제갈공명이 유비를 설득한 원칙이 바로 '도광양회'였다. 촉나라 땅으로 들어가 때를 기다리며 위나라와 오나라를 능가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질 때까지는 빛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키운 실력이 진짜 실력이 된다.
이 말은 등소평이 1978년 이후 개혁 개방을 시작하면서 외쳤던 중국의 화두였기도 하다. “빛을 숨기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길러라!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오로지 내실을 채우고 실력을 닦아야 할 때다!” 실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잠간 칼을 칼집에 넣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길러서 때가 되면 그 칼을 빼낸다는 것이다. 어떤 날을 위해 경계심과 절제가 필요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유소작위(有所作爲)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뜻으로, 2004년 이후 중국이 취하고 있는 대외정책"으로 "해야 할 일은 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도광양회, 유소작위"란 "빛을 감추고 어둠(그믐) 속에서 실력을 길러라! 그러면서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자신의 명성이나 재능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면서 기다리며 힘쓸 곳에서는 힘을 쓴다는 거다.
2.
이 때 필요한 것이 '난득호도(難得糊塗)'이다. 이 말은 '바보가 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란 뜻이다. '자기를 낮추고 남에게 모자란 듯 보이는 것이 결국 현명한 처세가 된다'는 거다. 총명한 사람이 똑똑함을 감추고 바보처럼 사는 건 참 어렵다. 바보가 바보처럼 살면 그냥 바보이지만, 똑똑한 사람이, 때로는 자기를 낮추고, 똑똑함을 감추어 바보처럼 처신하는 것이 진짜 똑똑한 사람이다. 자신의 날카로운 빛을 감추고 겸손한 태도를 보인다. 최근의 우리 사회의 문제는 자신의 똑똑함 만을 내세워 사람 들끼리의 불협화음이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어서 갈등이 심하다. 헛똑똑이들의 세상이다. 지거나 물러 서기를 싫어한다. 손해보는 것은 죽기 보다 싫어한다.더 갖고 더 가지려 다가 한꺼번에 모두 잃는다. 세상살이는 총명 그 자체가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3.
"물어뜯지 못할 거면 짓지도 마라." 이남훈의 <<좋은 사람 되려다 쉬운 사람 되지 마라>>라는 책에서 만난 문장이다. 니체는 정육점 앞에 있는 개를 보면서 인간이 가진 욕망의 이중성을 통찰했다는 거다. 당장 들어가 고기를 뜯어 먹고 싶지만, 주인의 손에 들린 칼에 다칠까 봐 그저 주변을 서성대며 짖기만 하고 있는 개가 있다. 하고는 싶지만, 두려운 마음, 원하기는 하지만 주저하는 마음, 많은 사람들이 빠져 있는 안타까운 마음의 굴레일 수 있다. 두 번째 개는 짖기만 하는 개와는 달리 과감하게 정육점 안으로 돌진해서 물어 뜯는다. 이 두 번째 개는 상처를 입을 수는 있어도 고기를 먹었다는 만족감과 자신도 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더 나아가 이 개는 앞으로도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진할 수 있다. 이 두 마리 개의 차이는 크다. 주도권을 쥐고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일도 이것과 비슷하다. 처음에는 주저하게 되고,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할 수 있지만, 그 전략을 알고 하나씩 실천해 본다면 어느덧 '고기 맛'을 알게 되고 그것을 향해 돌진하는 흥분감은 짜릿한 스릴이 된다는 거다. 언제까지 주인공을 빛내게 하는 조연으로 살아갈 것인가? '내 역할에 충실했어'라는 소소한 자기 위안보다 '내 삶에 충실했어'라는 충만한 자존감을 위해 무서운 사냥개처럼 돌진해 보자는 거다.
4.
그래 나는 틈 나는 대로 거의 하루 종일 공부를 한다. 나는 살아가는 이유가 공부이다. 공부를 통해 아는 깨달의 환희가 크다. 나는 '타우마제인'이라는 말을 고 이어령 교수한테 배운 적이 있다. 그는 평생을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서 재미나게 살아 오셨다 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자기 다움'은 실제로 나만의 물음표와 느낌표를 이어주는 여정에서 출발한다. 하나의 회의는(물음은) 하나의 기쁨을 낳고, 또 하나의 기쁨은 새로운 의문을 낳는다. 이렇게 순환한다. 고 이어령 교수에 의하면, 깨달을 때의 환희를 '타우마제인'이라 했다. 그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쓴 적이 없다고 했다. 자신을 향해 썼고, 자신이 발견한 '타우마제인'이 벅차서 쓴 거라 했다.
5.
'타우마제인'이란 그리스어로 '경이로움', '놀라움'을 뜻한다. 그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에 대한 관찰과 숙고와 함께, 우리가 인간의 지성을 무엇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나도 매일 아침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기>를 쓰게 하는 동력이기도 하다. 독자가 같이 읽고 공감해주면 신이 난다. 우리는 '타우마제인'이 생기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그래 매일 글을 쓰며 발산하고, 그 발산한 만큼 수렴을 하고 싶게 만들어, 또 책을 읽고, 주변을 관찰하게 된다. 발산과 수렴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거다. 그래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
6.
앵거스 플레처에 의하면, 그리스 극작가들은 경이, 즉 '타우마제인'의 더 큰 가능성을 전달하고 어떤 발명품을 고안했는데, 그게 '플롯 반전(plot twist)'이라는 거다. '플롯 반전'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라, 뒤틀리지 않은 일련의 사건들을 연결하는 마지막 고리이다. 그 마지막 고리가 너무나 충격적이라 방향이 확 꺾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다. 결국 이야기의 흐름이 뒤집어져 우리를 뜻밖의 장소로 인도한다. 이때 우리는 '타우마이젠'을 선물 받는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플롯 반전'의 밑바닥에 "확장(stretch)"이라는 문학 발명품이 하나 더 있다. '스트레치'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이 단어의 뜻은 '가지개를 켜며 몸을 뻗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정신과 감각도 스트레칭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어쨌든 공부의 시작은 우리를 가두고 있는 완고한 인식들을 망치로 깨뜨리는 것, 곧 ‘깨달음’이다. 깨져야(깨다) 시작할 수 있었고, 알 수 있다(알음). 그 다음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7.
오늘 공유하려는 시는 허형만의 <뒷굽>이다. 수선공은 물건의 질병을 고쳐주는 전문의사다. 문짝에 ‘구두 병원'이라고 적혀 있는 구두 수선집도 있다. 치과의사가 어떤 자리에서건 무의식 중에 상대의 입 속을 보게 되듯 구두 수선공 눈에는 구두가 우선 보일 테다. 구두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자부하는 베테랑도 있을 테다. 구두 굽이 고르게 닳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구두 굽이 닳은 형태는 구두 주인의 걸음걸이 습관, 삶의 자세를 드러낸다.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지, 왼쪽이나 오른쪽,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걷는지. 구두 수선집에서 “참 오래도 신으셨네 요”라는 말을 들으면 삐딱하게 ‘남이야 오래 신든 말든! 굽이나 갈아 주소!’ 생각할 수도 있는데 화자는 참 성정이 곱다. 그렇지만 무르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구두 굽이 왼쪽으로 닳으면 ‘좌 빨'이라고, 오른쪽으로 닳으면 ‘우 빨'이라고 할까 겁난다는, 이 뼈 있는 농담!
화자는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색안경을 쓰고 보면서 과장되거나 엉뚱한 갖다 붙이기를 하는 세태를 꼬집는다. 구두 뒷굽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과학적 이유를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화자는 그 물리적 흔적에서 ‘영혼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정신적인 흔적을 찾으려 한다. 세상의 평탄한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 모퉁이만 기우뚱 밟아 온 게 아닌가, 제 삶의 행로를 돌이켜도 본다. 일상의 사물에서 영혼을 찾으려는 시인의 자세! 이 시를 소개한 황인숙 시인의 멋진 해설이다.
뒷굽/허형만
구두 뒷굽이 닳아 그믐달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수선집 주인이 뒷굽을 뜯어내며
참 오래도 신으셨네요 하는 말이
참 오래도 사시네요 하는 말로 들렸다가
참 오래도 기울어지셨네요 하는 말로 바뀌어 들렸다
수선집 주인이 좌빨이네요 할까 봐 겁났고
우빨이네요 할까 봐 더 겁났다
구두 뒷굽을 새로 갈 때마다 나는
돌고 도는 지구의 모퉁이만 밟고 살아가는 게 아닌지
순수의 영혼이 한쪽으로만 쏠리고 있는 건 아닌지
한사코 한쪽으로만 비스듬히 닳아 기울어가는
그 이유가 그지없이 궁금했다
8.
이젠 사회를 대개혁 하여야 한다. 경쟁에 바탕을 둔 탐욕의 사회에서 공존(공존)을 꿈꾸는 공감의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최재천 교수에 의하면, 공감은 길러지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라 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충분한 공감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 공감 능력이 우리 호모 사피언스를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 주는 데 기여했다. 이 타고난 습성이 무너지지 않도록 사회 개개혁을 시작해야 할 때이다. 공정하고 조화로운 사회적 가치를 바탕에 두어야 한다. 프란스 드발은, 자신의 책 <<공감의 시대>>에서 "인간 본성을 단순히 경쟁과 탐욕으로만 보는 시각을 넘어, 그 밑바탕에 있는 협력과 유대, 이타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탐욕의 시대를 넘어서 공감과 연대가 중심이 되는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는 통찰"을 제시하였다. 책을 떠나 연초에 인간 "키세스"가 된 젊은 여성들에게서 그 가능성을 나는 읽었다.
9.
내 공간, 내 시간, 내 취향이 중요해진 시대이지만 사랑은 내가 아닌 '너'를 위해, '나'를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역설이다. 생전 먹지 않던 음식을, 고치지 않던 습관을 바꾸게 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헌신을 통해 내 변화를 목격하고, 내가 가진 한계를 확장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의 가장 큰 역설이다. 승자독식으로 갈등과 탐욕이 가득한 사회에서 우리가 희망을 품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은 곳곳에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힘든 이들과 나누며 사는 선한 이웃들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이웃의 어려움과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는 측은지심,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나눔이 차이의 경계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끈이 되고 있다. 사람이 희망이라면, 그 희망은 오직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꽃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사랑하여야만 한 사람의 삶의 열매가 맺는다. 그것은 자기 것을 나누면서부터 시작된다. 나눔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내리는 특혜가 아니다. 우리는 차별과 억압으로 불안과 고통에 있는 사람들을 회복시켜 주고자 나눔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근원에서 발원하는 연민과 사랑의 실천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형을 이루는 일이다. 꼭 '돈'만으로 나누는 것은 아니다.
10.
세네카는 동일한 인간이 선왕이 될 수도 있고 폭군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인간이 자신에 주어진 이상인 ‘명예로운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안녕을 위해 몸을 다스린다면, 그는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는 왕이 된다. 그러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 탐욕에 눈이 먼 사람, 그리고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은 스스로를 폭군으로 만든다. 폭군은 누가 봐도 끔찍한 악취가 나 혐오스럽다. 고대 히브리어에 ‘선’이란 단어는 ‘토브’טוֹב인데 그 본래 의미는 ‘향기 나는’이란 의미다. 반면에 히브리어로 ‘악’이란 단어는 ‘라’인데, 그 의미는 ‘악취가 나는’이다. '토브'는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고, 냄새가 좋고, 맛이 좋고, 촉감이 좋은' 상태를 말한다. 향기와 맛처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토브'의 선(善)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어떤 것이다. 선이란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끼기에 좋은 것이다. 그 기준이 절대적으로 상대방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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