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칼럼] 소유에서 공유의 시대로
우리는 개인의 소유권을 신성불가침의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으므로, 사적 소유권에 대한 개념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가 힘든다.
칼 마르크스는 역사발전의 단계를, 원시공동체사회(수렵채취사회) - 노예사회 - 봉건제사회- 자본주의 사회- 공산주의 사회로 다섯가지로 구분한다.
수렵과 천렵, 나무열매 채취등의 생산활동을 하기때문에 그렇게 힘들고 집약적인 노동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이런 시대에는 사적 소유의 개념이 없었다.
소유욕은 이해(利害)와 정비례하는 이유는, 소유에 바탕을 둔 이해관계 때문이다.
보다 많은 자기네 몫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인간의 역사는 어떻게 보면 소유사(所有史)처럼 느껴진다.
루소는 공동체 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사유물이라는 소유의 개념이 도입되면서 인간 사회에 불평등이 생기기 시작했고, 인간이 소유에 종속됐음을 지적한다.
“옛날 원시상태의 인간은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며 건강하고 튼튼하게 살고 있었다.
필요한 양식을 자연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인간은 각자 원하는 곳으로 가서 자유롭게 먹고 즐기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누구를 구속하지도 않고 누구로부터 구속받지도 않았으며,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았다.
그런데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자연재해가 닥치고,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먹이 다툼을 벌이는 일들이 생기면서 점차 인간 사이의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공동체가 형성되어갔다.
공동체 속에서 각 개인은 남을 의식하게 되었고, 그 존재가 상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부터 좋고 나쁨이 생겨나고 선악이 나타나며 불평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힘이 있거나 재주가 있거나 말 잘하는 사람이 돋보이면서 다른 사람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기에게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게 되었고, 드디어 사유물을 남보다 많이 지니게 되었다. ” -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공유'라는 것이 결국 구성원들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해서 '공유지의 비극'은 산업혁명이 시작될 당시 영국의 초지에서 일어났으며, 해결책은 땅을 작게 쪼개서 각자의 경계를 따라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다. (이 울타리를 넓히는 것이 바로 엔클로저 운동이다.)
이 과정들을 통해 지주와 농업 자본가는 부를 축적하고, 쫓겨났던 농민들은 노동자로 일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가 성립하게 되었다.
공유는 이제 우리의 생각으로도 가닥을 뻗치고 있기에 생각을 똑같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견을 공유한다는 것이며, 입장과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 의견을 지지하고 연대할 때 생각의 공유는 힘을 발휘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생각을 품고있기만 할 때와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생각을 알리고 타인과 나누려고 할 때 늘 분쟁이 일어났었다.
간디는 “내게는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 라고 했다.
그가 무엇인가를 갖는다면 같은 물건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똑같이 가질 수 있을 때 한한다는 것이지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자기 소유에 대해서 범죄처럼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은 능력을 지니고, 더 나은 가치를 지니고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 같은 욕망은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애정이 결핍되었을 때 나타나는 결과이다.
우리를 이 같은 광기(狂氣)와 상스러운 무지(無知)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절제라는 태도이다.
소유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소유할 때 우리에게 요구되는 적절한 마음가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물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한번쯤 생각해 볼 교훈이다.
법정스님의 무소유(無所有)의 설법은 “우리는 언젠가는 자신의 육신마저 버리고 홀홀히 빈손으로 떠나갈 것인데, 인간의 괴로움과 번뇌는 어떤 것에 집착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소유욕에서 비롯되므로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차지하게 된다”는 뜻이다.
즉 자연의 가치 이해와 물질의 가치 편중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자신의 행복관도 바뀔 수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오늘날의 과학문명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자 개인이 이룰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는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촉발된 3차산업혁명의 종결판이며, 인공지능과 3D프린터, 자율주행차, 드론 등, 이들 하나하나가 현실화 되기 시작한다면 우리가 소비의 필요성을 느끼는 순간부터 기획되고 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데 걸리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감소하여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질 것이기에 이때 다시 등장하는 것이 공유의 개념이다.
공유경제의 기본 개념은 우리 조상들이 과거로부터 행해오고 있는 ‘품앗이’나 ‘두레’와 같은 개념이다.
다만 농경사회였던 과거에는 주로 곡식과 노동력이 협력의 매개가 됐다면 자본주의가 발달하고 재화의 가치가 생기면서 공유의 대가가 금전으로 변화했다는 점이다.
미국 전문 리서치 기관인 Statista에서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특정 물품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자신이 소유한 물건을 공유하는 것’에 대해 아시아-태평양 78%, 라틴아메리카 70%, 중동-아프리카 68%, 북아메리카 52%, 유럽 54%가 참여 의향을 보였으며, 전 세계 평균은 68%으로 나타났다.
공유경제의 권위자 아룬 순다라라잔 교수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공유 경제》에서
‘소유’가 사라진다. ‘고용’이 사라진다. ‘대기업’이 사라진다.
지금까지 소유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공유하며 살게 된다.
한 기업에 정규직으로 고용되기보다 독립적 근로자로 다양한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핵심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경제에 대한 참여 의향이 높은 만큼, 앞으로 공유경제 시장이 얼마나 확대될지도 궁금한데, Statista에서는 전 세계 공유경제 시장규모를 다음과 같이 예측하였다.
2014년의 전 세계 공유경제 시장규모는 140억 달러였는데. 그로부터 11년 후인 2025년에는 무려 약 24배가 증가한 금액인 3,350억 달러로. 공유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공유의 시대로 가고 있지만, 개인의 소유 욕구는 어떻게 변모해 갈 것 인지가 계속 의문으로 남을 뿐이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