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준 종횡무진] 도량발호(跳梁跋扈)
2024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9일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2024년 ‘올해의 사자성어’를 설문조사한 결과과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는 의미의 ‘도량발호(跳梁跋扈)’가 41.4% 선택으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교수신문은 “권력자는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데 권력을 선용해야 함에도,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며 “권력을 가진 자가 제멋대로 행동하며, 주변 사람들을 함부로 밟고, 자기 패거리를 이끌고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여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을 포기하는 상황을 고려해서인지 교수들이 선택한 다른 사자성어도 비슷한 의미가 많았다.
2위로는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의미의 ‘후안무치(厚顔無恥)’(28.3%)가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말을 교묘하게 꾸미면서도 끝내 수치를 모르는 세태를 비판한다”며 “지금 사회는 형벌로 질서를 겨우 유지해나가고 있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이다.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3위는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 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의 ‘석서위려(碩鼠危旅)’(18.5%)가 꼽혔다. 교수신문은 “올 한 해 온 나라가 자신이 똑똑하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지도자들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이 배여 있는 표현”이라고 소개했다.
4위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의미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7.1%)로 “의정 갈등으로 인해 무고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이 있다”며 “의료개혁의 방향은 공공의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은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생명이 경시되는 사회 분위기가 국민들에게는 가혹하게 느껴질 것 같다“고 소개했다.
5위는 “본이 서야 길이 생긴다”는 의미의 ‘본립도생(本立道生)’(4.7%)이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부동산 광풍과 불평등 심화 등이 공존하는 혼란의 한국 사회에서 ‘공정’과 같은 근본에 더욱 치중하자는 의미”라며 “봉준호 감독, BTS, ‘오징어게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열풍이 불지만 과연 지속가능할지 의문”이라고 소개했다.
도량발호(跳梁跋扈)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교수(심리학과)는 “삐뚤어진 권력자,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12월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느닷없이 강타한 비상계엄령을 언급하고 “명분은 반대 세력으로부터 자유민주주의와 국민을 지키겠다는 것인데, 대부분 국민의 눈에는 최상위 권력자들이 자기의 불리한 처지를 타계하고자 자행한 불법적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이런 무도한 발상과 야만적 행위가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참담하다”고 했다.
도량발호를 선택한 교수들은 대통령 부부의 국정농단 의혹과 친인척 보호, 정부·기관 장의 권력 남용, 검찰독재, 굴욕적인 외교, 경제에 대한 몰이해와 국민의 삶에 대한 무관심, 명태균·도술인 등 사인에 의한 나라의 분열 등을 추천 사유로 꼽았다.
특히 비상계엄 선포 사태는 올 한해 보여 주었던 권력의 사적 남용의 결정판으로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6시간만에 해제된 사태는 도량발호를 더욱 주목하게 한다. 도량발호를 선정한 교수들은 대부분 권력을 자신과 가족 그리고 비호 세력만을 위해 사적으로 남용하고 이권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리더십과 통치 능력의 측면에서 함량 미달이라거나 자기 객관화를 통해 개선하려는 모습이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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