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 칼럼] 大巧若拙(대교약졸)
道德經(도덕경) 45장에 大巧若拙(대교약졸)이라는 귀절이 나온다.
크게 완성된 것은 마치 부족한 듯하고(大成若缺), 크게 가득찬 것은 마치 비어있는 듯 하고(大盈若沖)
크게 바른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大直若屈), 크게 솜씨가 좋은 것은 마치 서툰 듯하다 (大巧若拙),
대교약졸이란 보기엔 서툴고 졸렬한 것 같지만 실은 대단한 고차원의 솜씨를 의미한다.
소박하고 졸렬한 듯 하지만 기교가 최대한 배제된 무위자연의 졸박미(拙樸美)야말로 최고의 기교라는 것이다.
운보화백의 작품을 보면 유흥준교수가 완당평전에서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大巧若拙(대교약졸)이라 표현하였는데 특히 바보산수나 바보정물등 그의 작품을 보면 그 말이 생각난다.
원시시대의 예술은 대부분 소박함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삶 자체가 단순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사회가 발달하고 문화가 발달할수록 미적 안목이나 미적 기교도 점차 발달한다.
미적 기교의 일차적인 발현은 주로 화려함으로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예술의 변천은 단순미에서 복잡한 미적 추구에 이르렀다.
심미안에는 등급이 있다.
처음에는 조잡한 화려함에서 출발하지만 기교가 성숙될수록 세련된 화려함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기교가 극에 달하면 다시 자연스러운 소박함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주의 섭리이다.
누구나 어릴 때는 원래 기교를 전혀 모르므로 어린이들의 그림을 보면 천진함이 베어있다.
그래서 순수하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기교를 알게 되면서 기교를 마음껏 부리기 시작한다.
나이가 들어서 의도하는 미의 표현에는 천진함도 순수함도 없다.
추사(秋史) 김정희가 평생 수백여 개의 호를 썼지만 그를 대표하는 호를 든다면 단연 추사(秋史)와 완당(阮堂)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정희하면 그만의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가장 쉽게 떠올릴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독보적인 서체를 인정 받기까지의 과정이 있다
첫째는 수(守)로서 스승의 가르침이나 기본에 충실하는 단계이다.
그리고 둘째는 파(破)로서 그러한 기본을 벗어나 새로운 응용을 해보는 단계다.
마지막 단계인 리(離)는 자신만의 독창세계를 만들어 기존의 방식이나 고정관념과 결별하는 단계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은 역시 秋史 김정희의 ‘판전(板殿)’이다.
판전은 봉은사에서 화엄경전 목판을 봉안할 때 추사가 죽기 3일 전에 썼다고 하는데,
언뜻 보면 서예의 대가가 쓴 글씨 같지가 않고 서당에서 갓 한자를 배운 학동이 쓴 것 같다.
- 합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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