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원 독서강의] 저기요, 그렇게 읽으면 독서가 전혀 안 늘어요
- 한 시간을 읽어도 독서력 확 올라가는 방법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3달 넘게 일주일에 3회 이상 헬스장에 가서 고강도 근력운동을 하는데요. 한달 전부터는 4회로 늘었고, 차츰 주 5회 정도로 늘려가 볼 생각입니다.
만약 처음부터 매일 운동하려고 했다면, 이렇게 자주 가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최대한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노력한 결과 이제는 힘들게 운동하고 땀을 쫙 흘린 뒤에 샤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상쾌한 기분을 느끼는 게 참 좋습니다.
왜 갑자기 운동이야기를 하냐고요.
오늘의 주제인 독서가 운동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제가 평소에 출퇴근하는 길에 걷는 30분 정도를 운동이라고 하고, 헬스장에 가서도 고강도 운동이 아닌 가벼운 몸풀기나 유산소만 잠깐 하고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1년 운동하면 몸짱이 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말도 안 된다고 느끼실 겁니다. 그게 무슨 운동이냐고 말하면서 말이죠.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책을 읽을 때도 운동과 비슷하게, 일정 시간 동안에는 최대한 몰입해서 책 내용을 깊이 이해하면서 내 사고를 확장하는 밀도 높은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런 경험이 반복될 때만 독서실력이 늡니다.
그냥 걷는다고 다 운동이 아니듯이, 매일 몇 장씩 기계적으로 읽는다고 해서 독서력이 올라가긴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강도 높게 읽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지금 내 수준에 맞게 책을 읽되, 그 수준에서 최대치를 넘어서는 경험을 많이 해보라는 것입니다.
다시 운동으로 돌아와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제가 2달 전에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는 아주 평범한 기구 몇 가지로 PT를 받았는데요. 이틀 동안 거의 걷지도 못할 만큼 심한 근육통을 겪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맞아요. 제 체력 수준이 얼마나 낮은지 모른 채 일반적인 기구에 저를 맞췄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저질체력을 인정하고 최대한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처음에는 아주 낮은 강도부터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도 힘들었죠. 그런데 한 달 정도 꾸준히 운동하니까 이제 처음에 했던 무게는 제법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도를 조금씩 높여갔죠. 하지만 무리가 되지는 않을 만큼 천천히 말이죠.
그렇게 2달이 지난 지금은 처음 근육통을 겪었던 날보다 훨씬 강도 높은 운동을 했는데도 가벼운 근육통만 느끼고 지나가는 상황이 오더군요. 이런 경험을 통해서 제가 독서를 강의할 때도 똑같은 원리를 적용하고 있었다는 걸 문득 알게 되었습니다.
속독(빠른 독서)을 강의할 때는 평소보다 최대한 많은 양의 책을 펼쳐보게 만들고, 숙독(깊은 독서)을 강의할 때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고, 낭독하고, 손으로 적으면서 이미 읽었다고 생각한 책이라도 훨씬 더 깊숙이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독서 트레이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어떤 책을 어느 정도의 속도로 어떻게 읽어야 할지 감을 못 잡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개별적인 상황에 맞게 책을 선정하고, 읽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스스로 독서에 대한 자기만의 감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셈입니다.
큰 틀에서 다시 정리해 보자면, 독서력을 높이는 방법은 이렇게 갈무리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실제로 독서력이 향상되어 가는 과정>
1.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에 부합하는 책을 고른다.
2. 처음부터 잘 읽으려고 하기보다는 최대한 책과 친해지면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추천도서라고 해서 흥미 없는 책을 억지로 읽거나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괜히 어려운 책을 골라선 안됨)
3. 나를 책에 맞추지 말고, 책을 나에게 맞추면서 최대한 내가 성장하는 재미를 느끼는 게 포커스를 맞춘다.
4. 그렇게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점점 해당 분야에 지식이 늘고, 비슷한 책들을 읽으면서 아는 내용들이 많아지는 시기가 온다.
5. 그때부터는 관련 도서들을 조금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도서관이나 서점에 방문해서 시간을 정해놓고 여러 권을 책을 다양하게 읽어보는 경험을 한다.
6. 모든 글자를 다 읽으려고 애쓰지 말고, 책의 전반적인 맥락과 방향성을 이해하면서 읽으려고 애쓴다.
7. 이런 식으로 같은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면 점점 배경지식(스키마)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더 빨리 읽으면서도 이전보다 더 깊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8. 그 정도 수준에 이르면 그동안 읽은 여러 책 중에서 나와 잘 맞는 좋은 책을 1-2권 엄선할 수 있게 된다.
9. 엄선한 책을 다시 천천히 읽으면서 더 깊이 있게 나에게 필요한 내용들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메모해 나간다. 책을 읽는 행위보다는 책을 통해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예를 들어 시간관리에 대한 방법을 읽었다면, 단순히 그 방법을 읽으면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내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그 방법을 어떻게 적용할지 찾고, 나를 위한 플랜을 세우고, 직접 행동해 본다.)
10. 이런 경험을 통해 한 분야의 지식을 책을 통해 배우고 흡수하고 소화시키는 과정을 체험하게 되면 지금 읽은 것과 연결점이 있는 다른 분야의 지식을 그런 식으로 확장해 나간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지식의 확산과 수렴"의 과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하면 그 책 속에 내 생각이 갇히게 되고, 책을 읽는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책에 나를 맞추면 독서가 힘들어집니다. 반대로 내가 원하는 무언가에 책을 맞추면 재미있어집니다.
저는 독서를 잘하고 싶어서 독서 관련 책을 많이 읽었는데요. 책마다 비슷한 부분도 많았지만, 제시하는 방법이나 방향이 제각각인 경우도 많았습니다. 만약 제가 책에 저를 맞췄다면 무척 혼란스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제 기준에 맞춰서 책의 내용을 가려 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십 권의 책을 읽으면서 제각기 다른 부분이 아닌 공통적을 언급하는 부분이 단단한 뿌리가 되고, 실제 내가 경험하면서 알게 되는 사실들은 줄기가 되면서 나만의 잎사귀를 뻗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책을 읽을 때 이 사실을 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책에서 중요한 내용이 있고,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있고요. 나아가 나한테 중요한 내용이 있고, 크게 상관없는 내용도 있습니다. 책을 잘 읽으려면 지금 나한테 중요한 내용에 집중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다면, 그만큼 현재의 자신이 우선순위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반증합니다.
책을 잘 읽으려면 책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늘 말씀드리는데요. 같은 맥락입니다.
책의 모든 내용이 다 중요할 것 같아서 꼼꼼히 읽다 보면 정작 나한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반대로 책의 모든 내용을 가볍게 읽어나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순간에 나에게 꼭 필요한 문장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독서가 더 재미있고, 기분 좋은 경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겠죠.
우선은 책에서 자유로워지세요. 그리고 당신의 우선순위를 찾으세요.
책에 당신을 맞추지 말고, 당신에게 책을 맞추세요.
책은 대충 읽어도 괜찮고, 다 안 읽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나랑 맞지 않는 책은 과감히 덮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대신 나랑 잘 맞는 책을 만나게 된다면 그 책은 한 번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좋은 책은 더 이상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낄 때까지 반복해서 읽어보세요.
아마 머지않아 당신은 책과 진정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만큼 세상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책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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