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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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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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메타포] 밝아지면 사라질까봐
-조각가 박상희
새벽에 깼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상이 나를 주시하듯 하여 '저것이 뭐지?'
자세히 보니 커다란 얼굴 같았다.
어두웠으나 사라지기 전,
그리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 사싸싹 싹~ 싹 싹~ 쓱 쓱~ 쓱~~ 풀 베는 소리만 들렸다.
볼펜과 손의 희미한 움직임이 빠르게 사선과 수직으로 움직였다.
잘 보이지도 않는 희미한 크록키 북 위로 차가운 바람 소리가 낙엽처럼 쌓였다.
조금씩 표정이~ 얼굴이 분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
보통 얼굴이 아니었다.
누구일까?
손님일까?
선물일까?
창문의 빛이 밝아지며 얼굴처럼 보였던 것은 전날 밤 여행가방을 열어놓은 채,
의자에 걸쳐놓은 나의 셔츠였다.
침묵 같은 어둠 속에서만 보이는 얼굴.
밝아지며 사라지는 얼굴.
잠깐의 예시였을까?
나는 불교신자도 기독교 신자도 아니다.
그저
부처와 예수의 사이를 오가는 방랑자,
유목민처럼,
형상으로 기록하는,
무게 있는 질료로 일기 쓰는 조각가일 뿐.
전시하러 왔다가
도쿄의 호텔에서
2024년 1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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