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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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0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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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영 감성일기] 삶의 반성과 성찰
198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니, 내년이면 극작가 데뷔 40년이다. 십 년 뒤, 50주년 행사를 위해 더 건강해야겠지. "만만한 인생"과 "우정만리" 2부 3부도 써야하고. "스탠드 오아 다이" 등 밀린 작품이 많다. "박무근 일가"부터 희곡집 10권으로 묶어야지.
그나저나 연기도 다시 해볼까. 다들 웃겠지. 그니까 허름한 지방 소극장에서의 모노드라마는 괜찮겠지. 문학, 연극, 드라마, 영화, 게임 등 스토리텔링의 세상을 두루 겪었으니 내 인생을 연기하는 거야, 도선동 산14번지 달동네 추억과 대학시절 벌집촌과 뚝섬유치장 등 내 삶을 현대사에 녹여 넣으면 제법 괜찮을 거야. 첫 배역 아쏠리노 추기경과 마지막 배역 카리아예프, 그 청춘시절보다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삶의 반성과 성찰 그리고 그 깊이와 무게를 아니까.
아니다.
아서라.
참아라.
......
월요일 내러티브 중간고사. 저녁 중앙대 및 각급 부속학교 재직동문회 장학금 수여 및 멘토링 간담회. 야심한 밤에 뱀파이어처럼 일어나, 한국극작가협회 K극문학 관련 기조발제문 송고, 저작권 위반 및 명예훼손 관련 수원지검에 보낼 의견서 작성, 서사창작 대학원 과제 평가, 논문 읽고. 연구실에서 뻗다.
화요일 오전 11시 시은이 논문지도, 오, 잘썼다. 피곤이 싹 가시네. 기쁨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렇게 쭈욱 가자. 시은이와 콩나물국에 예쁜 수다를 풀어 맛난 점심. 이산호 부총과 휴식같은 꿀맛 회의. 에스프레소와 진도 이야기 그리고 예대원 이야기.
오후 수업 3시간 풀강. 불도저같은 폭풍열강의 비결은 강단에 서면 폭포처럼 쏟아지는 도파민 효과 때문. 그러나 강의실 나서는 순간 태초의 피로감이 몸을 감싸고. 한 발 한 발 계단을 내려가면서 크로마뇽인으로 변신. 끝내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되어 대학원 건물 바닥에 도착함. 꾸부정한 자세로 실연당한 사내처럼 기운없이 원장실로 돌아와 의자에 몸을 던지고. 우주 유영하듯 느린 동작으로 휘저어 교수회의 자료 주섬주섬 챙기고, 중간고사 파바박 채점 후 귀가. 오가며 밀린 통화 중 안회장의 반가운 목소리.
ㅡ비가 와서 막걸리 한 잔 하니 형 생각이 나네.
ㅡ아숩다. 나 집에 거의 다 왔다. 근데 그 누구지? 그 선배, 블라블라...
빗소리 들리면 떠 오르는 모습. 패시미스트처럼 음정박자 틀리게 옹알거리며 비극의 주인공처럼 기어오른 문 앞. 생일선물로 배달된 서로 다른 모양의 상자가 대문을 가로막고. 고마운 사람들. 그리고 따뜻한 저녁식사. 내가 좋아하는 LA갈비.
ㅡ별 일 없었죠?
아내가 며칠전 꿈이라며, 조개를 보았는데 조갯살이 볼록해서 혹시 진주가 들었나 해서, 상처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꺼내어보니 오팔이더라.
ㅡ아아. 좋은 꿈이네.
나의 또 하루가 박제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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