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산 시담] 모기가 쏜 메일

박미산 승인 2024.10.02 17:59 의견 1
박미산 시인, 작가 [사진=더코리아저널]


[박미산 시담] 모기가 쏜 메일 / 박미산

사촌오빠가 죽었어요

이북을 몇 차례나 들락거렸대요

이쪽에서 죽였는지 저쪽에서 죽였는지

유디티는 국경을 여러 번 넘나들수록 목이 짧아진다네요

목숨이라는 말, 스무 살엔 실감나지 않았어요

오빠가 죽었다니까

아무렇지 않게 몸을 얻고 싶었어요

글썽이던 내 무릎이 그의 무릎에 겹쳐지고

무덤뿐인 곳에서 땀을 흘리는데

모기들이 노려보고 있어요

준비 땅!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

우리 몸통을 향해 따발총을 쏘아댔죠

이봐요, 살아있나요?

부풀어 올라 커진 엉덩이

급하게 지퍼를 올려 감추었죠

그와 나의 본능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고

운명을 쏴 갈긴

스무 살의 모기

이봐요,

살아있나요?

......

나보다 네 살 위인 고종사촌 오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쩌다 고모님 댁으로 다니러 온 오빠를 보면 난 공연히 온몸이 오그라들었다.

오빠의 눈은 굉장히 강렬해서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보통 남자들보다 크지 않지만,

다부진 몸에 까맣게 그을린 얼굴에서 살기가 뿜어 나왔기 때문이다.

오빠는 1971년 8월 23일 실미도 사건을 일으킨 공군 소속 684부대가 아니고

UDT 특수 부대원이었다.

오빠는 북파공작원으로 북을 13번이나 다녀왔다고 했다.

그 정도 횟수이면 남과 북 모두에게 간첩 혐의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어느 여름날, 오빠의 전사 통지서가 뒤늦게 날아왔다.

고모님 댁은 위로금 몇 푼 받고 그 사건을 묻었다.

그 소식을 듣고 난 목숨이란 것이 하찮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첫사랑인 B는 침울해진 나를 매일 만나 위로해 주었다.

그를 만난 어느 날 우리는 무조건 율도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두 개의 봉분이 있는 무덤가에 앉았다.

평소 나는 순결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오빠의 죽음으로 목숨조차 하찮게 여기던 나는 순결 자체에도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무덤 앞에서 사랑을 나누려고 했다.

그런데 사방에서 모기가 달려들었다.

청평사에서 돌아온 날 아무 일 없이 밤을 꼬박 새우고

첫새벽 기차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왔듯이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왔다.

내 스무 살의 운명을 쏴 갈긴 모기에게

지금 메일을 보낸다.

이봐요, 살아있나요?

***필자소개 /박미산

시인.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시 전공. 문학박사.

문화공간 (백석, 흰 당나귀 )운영.

1993년 <문학과 의식>수필 등단

2006년 <유심> 시 등단

2008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등단

시집 『루낭의 지도』, 『태양의 혀』, 『흰 당나귀를 만나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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